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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1947년③ 북촌 삐라 사건

◀ANC▶

4.3 무장 봉기 1년 전
제주 상황을 짚어보는 '1947년 제주',
오늘은 세번째 순서로
경찰이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북촌 삐라 사건'을 살펴봅니다.

1947년 여름
제주 전역에서는
미군정의 하곡수집에 반발해
전단지인 이른바 '삐라'를 뿌리는
저항이 절정에 달했는데,
경찰이 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북촌리에서 발생했습니다.

김찬년 기자입니다.

◀END▶
◀VCR▶

1947년 당시
제주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이재훈 할아버지.

학교에 가기 위해
함덕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경찰에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됐습니다.

북촌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인천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INT▶이재훈/북촌삐라 사건 재판 수형인
"'너 고향 어디냐?' '북촌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죠. 북촌이라니까 무조건 잡아가는 거예요. (전단 붙인) 사실은 없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더 두들겨 맞는 거야. 차라리 했다고 하면 죄명을 할 건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니까 그냥 막 패는 거야."

(CG)
"이재훈 할아버지의 1947년 당시 판결문.

학생연맹을 조직해 불온 전단지를 뿌리고
8월 13일 버스정류장에서는
경찰관을 감시하다 발각되자 달아났다는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광복절 비상근무 중
북촌리에서 전단지를 붙이는 소년을 발견해
뒤쫓으며 총기를 난사했고,
밭에서 일하던 소녀 등 무고한 주민 3명이
총상을 입었습니다.

(신문CG)
마을주민 200여 명이
함덕지서를 찾아가 항의 시위를 하자
경찰은 전단지 살포와 관련없는 주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40여 명을 검거해
삐라 살포 혐의 등을 적용해
절반 이상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INT▶양조훈/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경찰이 주민을 향해 발포를 하는 그런 단계까지 온 거예요. 삐라(전단) 붙이면 쫓아가서 잡아야지 어떻게 총을 발사해요? 그것도 난사를 했어요. 그만큼 제주도가 험악한 분위기고, 경찰이 아주 강도 높은 주민 탄압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주민들의 저항에
경찰이 총기를 난사하고
명확한 증거나 적법한 절차 없이
무차별적으로 검거한
1947년 8월 북촌 삐라 사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지만,
미군정은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한 달 뒤 서북청년단을 발족하며
탄압의 강도를 더욱 높히기 시작했습니다.

MBC뉴스 김찬년입니다.
김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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