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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당시 군사재판으로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은 사람들은
부모 얼굴조차 모른 채 평생을 그리워하며
힘겨운 삶을 견뎌왔는데요.
가족관계마저 뒤엉켜
부모 제사를 함께 모시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찬년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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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살때인 1949년 아버지가 사라진
김을생 할머니.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홀로 남겨진 김할머니는 유년시절을
밭일만 하면서 보냈습니다.
열살이 넘어서야 외가를 찾아
아버지와 어머니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SYN▶김을생/故 김평수 딸
"외가의 이모가 사는 곳을 말만 들어서 찾아갔어요. 찾아가니까. (이모가) 아이고 얘야 하면서 막 (반기는 거야) 그거는 너무 생생하게 생각이 나요."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주정공장에 수용됐다
불법 군사재판으로 7년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5촌 아저씨의 딸로 호적에 올려야만
했습니다.
이미 남의 가족이 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제사도 지내지 못했습니다.
◀SYN▶김을생/故 김평수 딸
"아이고 어머니를 찾아다 놔야 할 건데, 어머니를 이렇게 두면 안될 건데... 그런 마음만 먹었는데..."
결국 보다 못한 남편이 나서
가족 공동묘지에 쌍묘를 만들었고
장인과 장모의 제사까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SYN▶한규숙/김을생 남편
"오죽해야 그런 말을 나한테 하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사정을 해서라도 내가 한 번 찾아와야겠다."
고 김평수씨는 지난해 11월
직권재심에서 7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할머니가 된 딸은 조용히 판결문을
아버지의 헛묘 앞에 올려놓았습니다.
◀SYN▶김을생/故 김평수 딸
"이제는 너무 옛날 생각하지 말고 좋은 생각 가지고, 이제는 꿈나라로 가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세요. 고맙습니다."
MBC뉴스 김찬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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