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4.3에 대해 사과를 한지
20년 째 되는 날입니다.
대통령 사과는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게
아니라 수십년 싸워온 제주도민들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대통령 사과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그 이후의 과제들을 박주연 기자가
보도합니다.
◀ st-up ▶ 20년 전 오늘 이 곳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4.3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55년 만에 이뤄진 대통령의 사과,
강요된 침묵 속에 끈질기게 싸워왔던
제주도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 st-up ▶
2천 3년 10월 31일. 오전 10시.
도민과의 대화 자리에 나선
대통령은 천186자로 짜여진
'제주4.3사건 관련 말씀‘을 읽어내려갔습니다.
SYN> 노무현 전 대통령 (2003년 10월 31일)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4.3이 일어나고 55년이 지나
마침내 이뤄진 정부의 사과.
유족들은 눈물과 환호로 화답했습니다.
당시 63살였던 이재후 할아버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INT> 이재후 당시 북촌리유족회장
“(당시에) '고맙수다' 외치면서 기립박수를 쳤어요. 얼마나 우리가 기다렸던 단어냐...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한다는 게 유족에게는 감개가 무량한 거예요.\"\t
대통령의 사과가 있기까지,
제주도민들의 처절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1960년 4.19혁명 직후,
제주대학교 학생 7명을 중심으로
4.3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5.16 쿠데타 이후 감옥이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INT> 이문교 전 4.3평화재단 이사장
“(당시 제주4.3을) 한라산 무장대에 의한 폭동이라고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폭동이면 왜 군.경이 양민들을 학살했을까 이런 것에 대한 의심이 생겼고 그에 대해서 진상규명을 해야겠다.\"
군사 정권 하에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으로
논의 자체가 금지됐던 제주4.3은
1978년 소설 ‘순이삼춘’이
발표되면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INT> 현기영 <순이삼춘> 작가
“30년 동안 비밀로 가둬져 있는 제주4.3의 이야기를 발설한다는 거 자체가 무서운 일이었죠. 그런데 4.3 이야기를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강박관념이 오고...(4.3에 대해) 온 국민들이 알아야겠다. 알아야한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제주도 출신 대학생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의
4.3진상규명 운동이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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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제주4.3연구소가
문을 열었고, 4.3추모행사가 처음 열렸습니다.
1992년 4.3의 실체를 고스란히 세상에
알린 다랑쉬 굴이 공개됐고
이듬해 제주도의회에는 4.3특위가 구성돼
희생자 신고 접수가 시작됐습니다.
1999년 국가기록원에서 4.3 수형인 명부가
발견됐고 그해 12월 26일 4.3특별법이
국회 본의회를 통과하면서
4.3진상규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INT> 고희범 / 당시 제주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추진 범국민위원회 상임운영위원장
“특별법을 만들어서 법에 의해서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그것에 따라서 진행돼야 명예회복도 구체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 그런 판단 때문에 특별법에 총력을 기울였던 거죠.”
그리고 마침내 2천3년 10월 15일 진통 끝에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되면서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사과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
색깔론과 이념의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INT> 기춘 /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
“진상보고서를 채택하는데 있어서 군과 경찰측을 대변하는 위원들께서 아주 강력하게 반대를 했었고, 밖에서도 이분들과 함께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죠. 당연히 대통령의 사과도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법에 의해 2천7년부터 시작된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부근의 발굴에서는
382명의 희생자 유해가 확인돼 다시 한번
4.3의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평화재단 기금 출연이 좌절됐고
박근혜 정부 당시 4월 3일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긴 했지만 대통령의
추념일 참석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기간 3번
추념일에 참석하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보수 정권이 출범할때마다
4.3을 폄훼하고 색깔론으로 퇴색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만해도 4.3 추념식에
극우단체들이 집회를 열면서
유족들과 물리적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SYN> 고경호 /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 (지난 4월 3일)
“서북청년단들이 옛날 우리 조상님들 칼로 죽창으로 다, 우리 할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우린 절대로 이걸 용납을 못해요.”
남은 과제들도 여전합니다.
작년부터 진행 중인 추가진상조사보고서.
4·3 시기 미국·미군정 역할,
미국의 책임 등에 대한 내용으로
내년 말에 발간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추가진상보고서 채택여부를 결정하는
4.3중앙위원회의 신임 위원 위촉에 대해
논란이 일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INT> 김동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공동대표*(지난 8월 1일)
\"이승만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포진해 있다고 하는 것은 추가 진상조사 보고서 채택 과정에서 상당한 난항이 예상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진상조사 보고서 자체가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특히 행안부는 그동안 공개돼왔던 4.3
중앙위원 명단도 비공개해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 st-up ▶ 제주4.3은
아직 이름을 찾지 못한 채
백비가 이렇게 누워있습니다.
3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남긴
비극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지 20년 전 대통령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INT ▶ 노무현 전 대통령 (2003년 10월 31일)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비단 그 희생자와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MBC 뉴스 박주연입니다.◀ st-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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