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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4·3 생존 수형인.. 출장 재심에서 '무죄'

◀ 앵 커 ▶
제주4.3 희생자 신고조차 하지 않은
고령의 생존 수형인이 확인돼
재판부가 부산까지 찾아가
대학 모의 법정을 빌려
출장 재심을 열었습니다.
직권재심을 기록하고 있는 제주MBC가
부산에서 열린 재심을
단독으로 촬영했는데요.
70년 넘게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할아버지는 무죄 선고에도 이름만큼은
끝내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하은 기자입니다.
◀ 리포트 ▶
부산 동아대학교의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 안.

고령의 할아버지가
부축을 받으며 피고인 석에 앉습니다.

1949년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15년 형을 선고받은 생존 수형입니다.

◀ SYNC ▶생존 수형인(96세)
\"이 멀고 불편하고 거친 곳에 재판을 열어줘서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야가 멀어서 눈이 잘 안 보이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미안합니다.\"

결국 변호인이 할아버지가 겪었던 일을
대신 말해줍니다.

◀ INT ▶ 반희성 / 변호인
\"어떤 이유로 데려가는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넘겨진 이후에는 많이 두들겨 맞았고 기절하면 무릎을 꿇는 가혹 행위도 당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할아버지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전국 형무소를 전전하다 형이 감형돼
1956년 출소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향 제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혹여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70년 넘게 타지에서
고향을 숨긴 채 숨어 살았고,
4·3 희생자 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SYNC ▶오매향/생존 수형인 딸
\"(아버지가) 여생을 여기서 무죄 판결을 받으시고 고향도 가고 '제주도 사람이다' 다른 사람한테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떳떳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을 숨어 살았던 할아버지는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수형인 명부를 조사하다 어렵게 찾아냈고,
재심을 청구해
첫 출장 재판이 열리게 됐습니다.

◀ SYNC ▶
강건 / 제주지방법원 4·3사건 전담재판부
\"부산에 정착한 이후 차마 떠올리기 싫은 나쁜 기억 때문에 한번도 제주도를 찾을 수 없었다.
유죄로 인정할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이 저희 법원의 판단입니다.\"

아직도 빨갱이라는 손가락질과
감시가 무서운 할아버지는
무죄가 선고되는 법정에서도
사회에 대한 이바지와 헌신을 약속했습니다.

◀ SYNC ▶ 4·3 생존 수형인(96세)
\"좋은 판결을 내려주신 데 대해서 감사하고‥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따르고 여러 제도에 대해서 따르고 헌신할 생각입니다.\"

75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할아버지.

전과자라는 빨간줄을 지워졌지만
평생동안 마음에 남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MBC 뉴스 김하은입니다.
◀ END ▶
김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