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삐라로 불리는 전단지가
심리전의 주요 무기로 활용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영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는
제주4.3 학술세미나에서
해방 후 4.3사건까지
300여 건의 전단지가 뿌려졌고,
4.3의 발단이 된 3.1 발포 사건 이전까지는
3.9%에 불과하지만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우익진영의 경우는 귀순 권고가,
좌익 진영은 저항 유도와 투쟁 촉구 삐라가
주를 이뤘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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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년 mbcjej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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