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 커 ▶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진압 공로 서훈을 취소하고
국가 폭력 범죄에는 민형사상 시효를 없애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는데요.
당시 진압 작전 책임자들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4.3 78주년을 맞아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조명하는
기획뉴스, 오늘은 첫 순서로
집단 학살의 지휘자 함병선의 행적을
조인호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리포트 ▶
바닷가 조그만
평화로운 마을인 북촌리.
1949년 1월 17일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주민들을 초등학교로 집합시켰습니다.
10살 소녀였던 고완순 할머니는
7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 INT ▶고완순/북촌리 학살사건 생존자 (87세)
"막 몸부림치다가 다리 사이에 머리 들어간 사람, 허벅지가 뜯어진 사람, 밭담 위에 걸쳐진 사람‥시신이 더미에요. 그리고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이니까 땅 위에 피가 고였어요. 비 오면 물 고이듯이"
북촌리에서 숨진 사람은 300여 명
가해자는 국군 2연대였습니다.
남로당 무장대의 기습으로
국군 2명이 숨지자
애꿎은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한 것입니다.
◀ INT ▶고완순/북촌리 학살사건 생존자 (87세)
"그 사람들 눈은 사람 눈이 아니에요.백정 눈이에요. 사람 죽이는 백정들 눈. 눈이 빛이 번쩍번쩍하고 살이 끼고 사람 죽이는 것이 취미인 것 같이 너무너무 무서운 사람들이죠."
당시 2연대장은 함병선 중령.
일본 육군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한 뒤
중일전쟁에서 훈장을 네 번이나 받았고
태평양전쟁에는 공수부대로 참전했습니다.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제주에 투입된 함병선은 1949년 1월부터 반년 동안
최후의 섬멸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신분이나 무기 소지 여부를 가리지 않고
폭도 지역에서 발견된 모든 사람은 사살하라는 가혹한 작전이었습니다.
과격한 반공주의자인
서북청년단원들로 구성된 대대가
북촌리 학살에 투입됐습니다.
◀ INT ▶ 김동현 / 시사평론가
"북촌리 학살사건 그리고 의귀리 학살사건, 도평 함정토벌, 그리고 봉개 용강리 토벌작전들이 벌어지죠. 함병선은 명백하게 4.3 당시의 대규모 학살의 지휘체계의 최고 책임자였습니다. 제주도에서"
함병선은 북촌리 학살 보름 뒤
대령으로 진급했고
6·25전쟁에서 무공훈장을 받고
중장으로 전역했습니다.
5·16 쿠데타 이후에는
공기업 사장과 대기업 고문을 지냈고
말년에는 6·25 참전 동지회장을 지냈습니다.
◀ INT ▶ 함병선 (1989년 육군 노도부대 방문)
"노도부대는 항상 용감무쌍하고 무적의 부대라고 저는 볼 수 있고 전쟁을 통해서 항상 승리할뿐입니다."
◀ st-up ▶
"북촌리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지도 77년이 지났습니다.
이 곳에서 죽어갔던 어린 아이는
보잘 것 없는 애기 무덤에 묻혀있습니다.
이 아이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가해자는
단 한마디 사과 없이 국가 유공자가 되어
지금도 국립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MBC뉴스 조인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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