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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획]② "마을이 불에 탔어요"‥초토화 작전의 설계자

조인호 기자 입력 2026-03-31 19:20:00 조회수 54

◀ 앵 커 ▶
제주 4·3사건 당시 민간인들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결정적인 원인은 
중산간 마을을 통째로 불태워버린
국군의 초토화 작전이었습니다.

4.3 78주년을 맞아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조명하는
기획뉴스, 오늘은 
초토화 작전의 설계자 송요찬의 행적을 
조인호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리포트 ▶
제주시 도심 한복판에
유난히 텅 빈 공간이 눈에 띕니다.

인적이 드문 농로길 한 쪽에는 
큼직한 표석이 세워져있습니다.

제주 4.3사건으로 사라진 
마을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리는 
잃어버린 마을 표석입니다.

◀ st-up ▶ 
마을에 집이 있던 자리는 모두 
불에 타면서 지금은 대나무숲만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이 곳이 잃어버린 마을이 
된 것은 1948년 10월 국군이 초토화 작전을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잃어버린 마을에 살았던 
이규집 할아버지는
집이 불타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 INT ▶ 이규집 / 어우늘 마을 생존자 (88세) 
"군인들이 촌에 가면 대로 만든 빗자루가 있어요. 거기에 불을 붙여가지고 (집의) 네 귀퉁이로 다니면서 불을 붙여버리더라고. 군인들이"

마을이 사라진 뒤 
아버지도 경찰에 끌려가 
행방불명되고 말았습니다.

◀ INT ▶ 이규집 / 어우늘 마을 생존자 (88세) 
"아버지 시체를 찾으려고 막 헤매도 찾지 못했어요. 그때 어머니한테 들은 말에 의하면 (군경이) 바다에 가서 수장시켜버렸다."

초토화 작전을 명령한 
국군 9연대장 송요찬 소령

일본 육군 상사 출신으로 
저돌적인 성격 탓에 
타이거 송 또는 석두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송요찬은 
해안선에서 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산악지대의 통행을 금지하고 위반하면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948년 10월부터 5개월 동안 진행된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134개가 모두 불에 탔습니다. 

4.3 희생자의 3분의 2인 
9천700명이 초토화 작전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 INT ▶ 양조훈 /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비무장 민간인들을 현장에서 처형하는 것은 불법이죠. 송요찬이 발표한 포고령은 국내법이든 국제법이든 전부 법을 어긴 위법사항이었다."

6.25전쟁 당시 헌병사령관이었던
송요찬은 전국의 형무소에 수감된
4.3 수형인들을 처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낸 뒤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군사정권의 
내각수반으로 임명됐습니다.

◀ SYNC ▶ 송요찬 / 내각수반 (1961년 7월3일)
"반공태세를 강화하고 구악과 부패를 일소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아 국토통일을 위한 실력배양에 진력할 것이며 국가경제 부흥에 총력을 경주하여"

송요찬은 6.25 전쟁영웅으로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국립묘지가 아닌 고향인 충남 청양군에 묻혔고 
청양군이 추진하던 기념사업은
4.3 유족들의 반발로 중단됐습니다.

mbc 뉴스 조인호입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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