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 신청곡
대문없이 잠긴 제주 바다
두 분 잘 지내시지요?
가끔 방송은 들으면서도 사연 올리는 것은 좀 뜸해져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아이디나 비번을 잊고 허둥댑니다. 그런 제가 오늘은 자정 넘은 시간에 조용히 글을 올려봅니다.
지난 4월 1일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며 올 2월에 함께 졸업을 한 방송대 학우님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바닷가 식당에서 우럭조림으로 점심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헤어져 돌아올 때,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구경할 겸 드라이브 삼아 천천히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바닷가를 바라보니 마침 썰물인지라 함께 오던 동기생 언니와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맞춤한 곳에 차를 세우고 비닐과 바구니를 들고 내렸습니다. 바닷가에서 보말이라도 잡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닷가 정자에 마을 해녀 두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가가서 “잠시 보말 좀 잡아도 됩니까?” 하고 여쭈었지요. 그런데 한 분은 보말만 잡는다면 허락하겠다고 말하는데 나이 드신 해녀 한 분은 당최 안 된다고 손을 홰홰 내저으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데로 가봐! 여긴 안 되어!” 라며 마치 자신의 사유지인양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허탈하게 웃으며 조금더 운전하고 오던 중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바닷가에 다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여긴 들어가도 괜찮은데로 구나 하며 바구니와 비닐봉지를 들고 내렸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호루라기를 부는소리와 사람들이 욕하는 수준의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빨리들 나가라고 닥달하는 해녀들의 외침이었어요.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운전하고 오다가 아무도 없는 한적한 바닷가에 내려 보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5분 쯤이나 되었을까요. 근처 밭에서 일하다 온 듯한 70대 할머니가 "빨리덜 나옵써! 무사덜 영 나 밭일도 못허게 바당에 들어왕 난리우꽈!" 소리치며 팔을 휘두르면서 큰일 난 듯한 행동을 펼쳤습니다.
우리는 또 허겁지겁 나와서 조금 더 운전하고 오다가 이번에야말로 단속하지 않을 만큼 근처 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평화로운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내렸습니다. 일명 가문동바다라는 곳이었는데, 안심하고 내려서 10분정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위에 붙은 보말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디 숨었다 왔는지 갑자기 세 사람의 해녀가 달려와서 “나옵써! 빨리!”라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친구에게 가다가 “아니 저기서 낚시하는 친구에게 가는 것도 안 됩니까?”라고 하자 그 세 해녀 중 한 사람이“그러면 아저씨는 갑써!” 라는 겁니다.
그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해녀들을 향해서 “도대체 내가 제주도 사람이고 여기 사는 사람인데 왜 바다에 들고 나는 것 까지 당신들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들이 언제 여기 와서 청소 한 번 한 적 있어요?”라며 해녀 셋이서 험악하게 말을 되받았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도 화가 치밀었는지 육두문자를 쓰며 대응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들이 여기 전세 냈어? 뭐 때문에 바닷가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 까지 그 난리를 치면서 막는 거야?”
그러면서 한 동안 막말에 가까운 소리를 주고받으며 싸우다가 해녀들은 지쳤는지 곁에 서 있는 그 아저씨 아내를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아니 남편이 저렇게 욕을 하면 부인이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그 말이 끝나자 지적당한 그 부인도 기다렸다는 듯“여보세요. 우리도 일 년에 몇 번씩 해안정화운동 다닙니다. 그리고 청소 좀 했다고 이 바다가 다 당신들 겁니까? 거기다 보말 잡는 사람들 까지 못 잡게 할 권한까지 있습니까?”라며 응수 하더군요.
그 말에 전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말이야 바른말이지요. 바닷가 사람들은 해마다 오름이나 곶자왈에 가서 청소를 하면서 고사리 꺾으러 다닐까요? 그러한 논리대로 라면 내 집 담장 옆은 매일 내가 청소하니까 내 차만 주차해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해야 하는데 매번 주차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저희 방송통신대 학생들도 해안정화작업 일 년에 한번은 나갔습니다. 제주 모든 바닷가는 아니지만요.' 라고 말이지요.
어쨌든 그 부인의 말에 약간 수그러진 해녀들은 “우리가 왜 보말 잡는 것까지 하지 못하게 했습니까?”라고 하더군요. 방금 전까지 단호하게 소리치며 나오라고 해 놓고서 말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소라나 전복을 종패했다고 하나 그것은 바다 속에 한 것이지 바닷가 돌밭까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제주 인들의 공동소유인 제주바다가 이렇게 일부지역 해녀들의 사유지로 변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유서 깊은 전통과 기술을 보유한 만큼, 세계에 드러내 놓고 자랑해도 될 만한 직업이 해녀라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에 따른 의식수준은 세계적이지 않은 것이 지금 일부 제주지역 해녀들의 현실입니다.
그날 같이 갔던 언니의 어머니나 제 어머니도 해녀였고, 저희도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지금도 가끔 고향 바닷가에서 보말을 잡곤 하는데, 그곳 해녀들은 단속하긴 해도 보말을 잡는 사람들의 바구니 속 내용물을 살펴보며 혹여 소라나 전복 종자가 있는지만 살펴보는 수준입니다. 그렇게 전면 폐쇄를 고집하며 바다를 사유화 하진 않고 있지요.
이 문제는 정말 꼭 짚고 넘어가야겠기에 제가 자정을 넘기면서 까지 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제주 각 마을 어촌계에서는 바다에 들어가 잠수를 하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바닷가에서 보말 채취 정도는 이해와 양보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구엄과 신엄, 하귀경계 바다에 이르기 까지 철통같은 방어를 펼치며 마을사람들의 어장으로 사유화 한 제주바다의 현실이 너무 황당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마 이 지역 뿐만은 아닐겁니다. 다른 곳까지 그 지역적 집단 이기심이 널리 퍼졌을 것으로 압니다. 가끔 해안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아예 경고문처럼 팻말을 써붙여 놓고 종패지임을 내세워 접근하지 말라고 하는 곳도 여러군데 있었습니다. 제주 바다가 전시사태지역 이상의 강화된 출입금지 지역임을 선포하는 이 진상을 우리 제주도민들은 어떻게 참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정 마음이 안 놓인다면 썰물 때 어촌계원들이 바닷가에 서서 나오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수준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지요.
누구의 권한으로 어느 날부터 이렇게 바닷가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게 대문도 없이 잠겨 져 버렸는지 참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기만 합니다.
4월 1일 구엄과 신엄리 바닷가에서 겪은 그 정월 칼바람보다 무서운 해녀들의 기세가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요. 이러한 어촌마을 해녀들의 권한이 제주도지사의 권한으로 주어진 것인지, 아니면 마을단위 자치구역의 권한으로 이루어진 모종의 합의사항인지 확실한 자격부여의 출처를 방송국에서 알아내 주었으면 합니다. 아니면 이 문제를 이슈화해서 뉴스거리로 취재해 보면 어떨까요. 늦은 밤 두서없이 쓰다 보니 용어를 적절하게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 분 환절기에 건강 잘 챙기세요. 제가 4월 1일에 그렇게 기를 쓰며 잡아온 보말로 몸보신 하라고 국을 끓여 먹였건만 제 남편은 벌써 한달째 기침과 콧물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노래도 한 곡 부탁드립니다. 즐겁고 유쾌한 노래로요.
(MB:010-765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