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 신청곡
게릴라 가드닝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철이라지만 저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끝나고 집에가면 10시쯤 집에나 들어가니 더운지 추운지 모르고 지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아라스위첸에서 서쪽으로 다리 하나 건너서 새로 조성된 빌라촌에 삽니다.
베란다 문을 열면 한라산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성큼 다가와있고 특히 저녁이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해닐녘 한라산 방향으로 사진을 찍으면 스위스풍경 같아요.
공원도 잘 조성이 되어 있어서 네모난 정자에는 남자 주민들이 나와서 담배도 피우고 캔맥주도 한잔씩 하고
나무그늘 아래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요즘은 자리물회가 맛있느니 누구네 며느리 이 더운날 손주낳아서 사골 끓이다가
손을 데였느니 하는 얘기들을 나눕니다.
오후엔 동네사람들이 애완견들을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하는 나름 신흥부촌의 느낌이 나는 동네입니다.
그런데 잔디로 잘 구성된 공원에 노란 민들레, 클로버 풀등이 잔디를 숨막히게 해서 제가 보이는대로 뽑기 시작하다가
저 사진속의 바위 아래는 예쁜 꽃잔디밭이 조성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워낙 풀들이 잇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꽃잔디가 심어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갓 심겨진 꽃잔디에 클로버풀들이 넓게 이불처럼 덮고 있더라구요. 처음에는 큰 풀부터 여기저기 뽑기 시작했는데 며칠 출장 갔다오면 또 다시 풀이 덮이고
또 요즘 비가 내리니 이제는 온갖 풀들이 다 솟아났더라구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우선 꽃잔디밧 다섯군데중 한군데만이라도 꽃밭을 찾아보자 싶어서
정말 밤 11시에 나가서 어떨땐 새벽 2시까지 풀을 뽑았습니다.
그렇게 3일을 뽑았더니 예쁜 꽃잔디밭이 형태를 드러냈습니다.
어느날 일찍 퇴근한 저는 풀을 뽑으러 공원으로 나갔지요.
"아고게 누게가 이렇게 아름다운 맘씨를 부렸나 했더니 아주망이 이 검질 다 맸수꽈?
아고 난 여기 몇년째 살아도 여기 꽃 심어준줄 몰랐주게.
꽃도 곱고 참말도 검질매는 이도 곱수다게.
어떵 이렇게 날마다 풀매졈수꽈게?"
"아 네. 저 그냥 마음 닦는다 생각하고 뽑으니까 신경 안써도 되요.
이렇게 꽃밭이 드러나니까 사람들이 담배꽁초도 안버리고
맥주캔도 안 날아다니고 좋네요.
이거 다 꽃잔디인데 잡초에 녹아 나서 풀을 안맨대는 다 죽었어요."
"게멘 마씨. 아고 이거 시에서 관리를 잘 해줘야주~~ 공원만 만들어 놓으면 어떨할꺼라."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에서 주기적으로 잔디도 깍고 청소도 하잖아요.
이렇게 세심한 관리는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하면 더 좋죠.
제가 다 하는건 좀 무리인것 같고 이렇게 꽃이 예쁘게 피면 누구라도 한사람씩 동참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은 들어요."
"아고게 아고게. 동참 하고말고마씨. 내가 지금 허리 다쳐부난 병원 다녀서 못거들주 나도 허리만 나수면
하나 맡으쿠다게. 아고 잘도 부지런헌 어멍여게.
이런거 가꾸는거 좋아하면 너 저 빌라 주인인데 상추랑 해갑써."
이렇게 동네 아주머니를 한분 사귀었습니다.
오늘 아침 나가봤더니 풀을 매준 꽃밭에는 저렇게 예쁜 꽃이 피었네요.
우리딸이 누가 미친사람인줄 알고 신고할줄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밤에 몰래 공유지를 가꾸는 일을 게릴라 가드닝이라고 한답니다.
인터넷에 뒤져보니 뭐 비슷하긴 합니다만....
게릴라 가드닝이고 뭐고
저는 제가 풀을 매줘서 당당하게 저 바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피는 꽃들을 지켜봅니다.
아란1길 주민중 꽃밭의 주인공이 되실분들 빨리 찜하세요.
재활용쓰레기장 맞은편 하트모양은 꽃밭은 가 먼저 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