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2022년3월28일(월) <로스쿨> 주거침입죄,25년만에 바뀐 초원복집 대법원 판례 (최호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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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매주 월요일에 만나는 시간. 생활밀착형 라디오 법률서비스 <로스쿨>!
오늘은 최호웅 변호사와 함께 하는 시간인데요,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최> 네. 안녕하세요. 최호웅 변호사입니다.
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까요.
최> 오늘은 최근에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25년 만에 바뀌어서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윤> 주거침입죄 관련해서는 로스쿨 시간에 저희가 다루기도 했었던 것 같아서 더 관심이 가는데요. 먼저 ‘초원복집’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니 이 사건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좀 해주시죠.
최> 네. 초원복집 사건은 제14대 대선을 1주일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접전이 이루어지던 1992년 12월에 발생했는데요. 김기춘 당시 법무부장관 등 정부측 인사들이 부산에 있는 주요 기관장들과 함께 초원복집이라는 복국집에 모여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이 도청을 통해 드러난 사건입니다.
윤>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김영삼 후보를 밀어주자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 것으로 전해지죠.
최> 그렇습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면서 “우리가 남이가” 이런 취지의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김영삼 후보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당시 상대방 진영에서 미리 이 회동을 알고 도청을 해서 언론에 폭로를 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 그렇습니다. 당시 발언을 지지율 3위였던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이 도청을 통해 언론에 폭로했는데요. 이에 관여한 관계자들이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윤> 집권당의 정치세력들이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특정 후보를 밀어주자는 식의 모의를 했다면 “공권력의 선거개입” 이런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졌어야 할 것 같은데 큰 효과가 없었던 것 같네요.
최> 공권력의 선거개입이나 의도적인 지역감정 유발을 통한 정치공작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짜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여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당시 주류 언론들은 이들 대화의 내용이 아닌 “불법도청”에 포커스를 맞췄고, 김영삼 후보 또한 자신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등 예상과는 다르게 여당에 유리한 프레임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결국 해당 사건을 폭로했던 정주영 쪽이 오히려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은 지지율이 급등하며 무난하게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윤> 당시 대법원의 입장은 다들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 그렇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고 하더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출입한 것은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라고 판단해서 주거침입죄의 성립을 인정했습니다.
윤> 그런데 작년부터 주거침입죄와 관련해서 대법원의 입장이 바뀐 판례들이 나오고 있지요.
최> 그렇습니다. 남편 몰래 내연녀의 집에 성관계를 할 목적으로 들어간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두고 기존 판례를 변경하고 무죄를 확정했고요.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고 한 달 정도 집을 나갔다가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집을 보고 있던 처제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거절하자 현관문 걸쇠를 부수고 집에 들어간 사건에서도 주거침입죄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윤> 두 사건에 대해서 다뤘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주거침입죄와 관련해서 대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이 변경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번에 무죄가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어떤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최> 네. 전남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는데요. 전남의 한 기업 부사장인 A씨와 관리팀장인 B씨는 한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회사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쓰자 이 기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부적절한 요구 등을 하는 장면을 녹음·녹화하기 위해 식당 주인 몰래 음식점에 관련 장치를 설치·제거하려고 들어간 혐의를 받았습니다.
윤> 기자가 회사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쓰니까 그 기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기 위해 불법적인 장면을 녹음·녹화를 하려고 한 것이군요.
최> 그렇습니다. 회사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내용은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수입이 금지된 ‘왕겨펠릿’이라는 바이오연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연료가 화력발전소에 납품되던 중 압류되어 철도 운송시설에 보관 중에 있고 이 연료가 썩은 채 방치되어 먼지가 날린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A씨 등이 소속된 운송업체가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윤> 수입이 금지된 연료가 썩은 채 방치되고 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한 보도는 아주 필요한 공익적인 보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주거침입과 관련해서 보면 식당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제거하기 위해 들어간 것 자체에 대해서 혐의가 인정되어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죠.
최> 그렇습니다. 수사기관은 A씨 등이 식당 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식당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해 기소를 했습니다. 초원복집 사건하고 거의 사실관계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재판과정은 어땠나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하급심에서도 판단이 엇갈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 그렇습니다. 1심은 기존의 대법원 판례 입장에 따라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갔다면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윤> 어떻게 보면 기존 대법원 판례 입장이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에는 더 부합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고 하더라도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할 목적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음식점의 원래 사용 목적과 다르게 들어간 것이잖아요. 영업주의 의사에 반해서 들어간 것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최> 그렇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상식에 부합해야 하는 것인데 주거침입죄와 관련해서는 과연 이렇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것인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지속될 것 같습니다. 상간녀의 집에 남편 몰래 들어가서 바람을 피우는 것도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어쨌든 1심에서는 기존 대법원 판례 입장에 따라서 유죄가 선고되었는데요.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습니다.
윤> 항소심에서부터 무죄가 선고됐던 것이군요.
최> 그렇습니다. 항소심은 A씨 등이 불법으로 녹음·녹화한 것은 아니므로 주거침입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상 허용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 간의 대화인데 A씨 등은 자신들과 이야기를 나눈 C씨와의 대화를 녹음했을 뿐이라는 것인데요. 이처럼 불법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식당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윤> 통신비밀보호법 상 불법 녹음·녹화는 아니었다는 판단이었군요. 말이 나왔으니 이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녹음할 때 어떤 경우는 허용이 되고 어떤 경우는 허용이 안 되는 건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최> 네.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를 보면 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규정에 의하면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법조항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것만 금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타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녹음을 해도 문제가 없고요. 내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도 타인간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녹음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타인간의 대화라고 하더라도 공개된 것이라면 녹음이 가능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A씨 등이 도청용 송신기를 설치했지만 자신들이 직접 대화 당사자가 되어서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지 않는다. 즉, 불법녹음을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판단을 한 것입니다.
윤>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만 위법행위이고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대법원에서도 주거침입죄에 대해서 무죄를 확정했는데 대법원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좀 알려주시죠.
최> 네. 대법원은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려면 출입 당시의 행위가 객관적·외형적으로 어땠는지, 주거이 형태와 용도는 무엇인지, 외부인에 대한 출입 통제 및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는지, 출입 경위와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거주자의 평온 상태’가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따져 주거침입죄의 성립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었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 상간녀 집 주거침입 사건의 결론과 유사하죠.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A씨 등은 녹음 장치를 설치하러 들어가는 과정에서 식당과 그 주인의 평온을 깨뜨린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식당 주인이 녹음 장치 설치를 위한 출입은 허락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평온이 침해되지 않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윤> ‘거주자의 평온 상태’ 주거침입죄와 관련해서는 이 부분이 핵심인 것 같네요. 주인이 동의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평온을 깨뜨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 평온하게 잘 들어갔다가 나왔다. 뭐 이런 판단인 것 같습니다.
최> 그렇습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실제 겉으로 드러나게 평온을 깨뜨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인의 명시적, 묵시적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되면 사실상 평온을 깨뜨린 것으로 봤거든요. 그러니까 평온 상태가 깨졌는지 여부에 대해서 주인의 의사를 중점적으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기준을 갖고 있었다면 바뀐 전원합의체 판결은 주인의 의사는 상관없이 실제 객관적으로 평온 상태가 깨진 모습이 있는지 이런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윤> 주관적인 기준을 갖고 판단을 했었는데 이제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판단하겠다 이런 취지의 판례 변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전원합의체 판결로 대법원의 판례 입장이 변경된 것인데 반대의견은 전혀 없었나요.
최> 반대의견도 있었습니다. 김재형, 안철상 대법관은 실질적으로 평온을 침해한 모습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해석하기 어렵다며 별개의견을 냈습니다. 다만 이들 대법관들 역시 A씨에게 주거침입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에는 의견을 같이 했지만 거주자의 의사를 중요한 요소로 삼아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전원합의체 판결로 판례를 변경하기로 결정한 것이라서 이제 ‘초원복집’ 사건은 의미가 없는 판결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요.
최>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고요. 과거 우리 대법원은 주거침입죄와 관련해서 거주자의 의사를 중요한 요소로 삼아 판단을 했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단기준은 거주자의 의사보다는 사실상의 평온상태 침해가 있었는지 여부이고 그 기준에 따르면 초원복집 사건의 경우 무죄로 결론이 변경되었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라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다시 결론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앞으로 이 판례의 태도가 얼마나 유지될지도 지켜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 그렇군요. 오늘은 주거침입죄와 관련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