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 신청곡
어머니와 세탁기
친정집에 있는
30여년이 훨씬 지난 세탁기를
많이 망설이다
오늘 드디어 개비했답니다.
주로 손빨래를 하셨고
부피있는 빨래감은
내가 직접 처리했었기에
세탁조와 탈수기가 구분되어있는
천연기념물인 낡은 세탁기도
그냥저냥 유지할 수 있었고
이제 구순이신데 뭐 굳이 필요할까 싶어서
미루고 미루었었는데
진작 해드릴껄 후회막급입니다.
깔끔한 세탁기 하나의 효과가
욕실만 밝게 해주는게 아니라
어머니께 청춘을 돌려드린 느낌이었네요.
그 주변만 맴돌면서
너무너무 좋아라 하시는 겁니다.
'아니다~아니다~'라는 어르신 용어는
절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면
안된다는걸 다시금 절감했답니다.
과연 얼마나 사용하실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물품을 구입했다는
그 사실 하나에서 생겨난 엔돌핀의 가격은
정말이지
세탁기 가격을 충분히 상회하고도
남음이 있다는걸 이제 알았답니다.
"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다시는 옷도 그만 사오렴~
화장품도 필요 없고
암것도 필요없다~"
늘상 하시는 말씀을 무시하고
얼마 안남은 4월5일 구순 생신 때는
고운 옷 한벌 사드려야겠어요.
칠십대에는 하루에 절반은 아프고
팔십대엔 하루종일 아프고
구십대엔 종일 아프다가
자식얼굴 볼때만
잠깐 덜 아픈게 정상이라는데..
제발 조금만 덜 아프시고
백세까지 오래오래 곁에 계셔줬으면
축복일듯 합니다.
오늘 세탁기를 보면서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정말정말 뿌듯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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