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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영의 즐거운 오후2시

임서영의 즐거운 오후2시

14시 05분

사연 · 신청곡

귀신이 왔다갔다고 전해주시오


  해마다 흐리고 찬바람이 도는 이맘때면  떠오르는 이야기 한 자락이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지 십 수 년이 되시는 큰어머니께서 제주에서도 아주 벽촌이었던 한경면 판포리 마을에 살았던 1970년대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촌오빠내외가 직장문제로 시내로 나가 살게 되자, 홀몸으로 사시며 적적해하셨던 큰어머니께서는 올케언니의 동생인 사돈처녀와 함께 3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흐리고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어느 가을날이었지요. 큰어머니께서는 다소 먼 곳으로 외출 하시며 사돈처녀에게 당부를 했답니다.

 “문 꽉 좀강 이시라 이. 만일 누게가 오민 창문만 욜아 봥 아는 사름 아니민 그냥 보내 부러사헌다.” 라고 말이죠.

 착하고 순진한 사돈처녀를 혼자 두고 가기가 사뭇 걱정이 되셔서 위험하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는 어투라 다소 엄하고 무섭게 말했겠지요.

 어쨌든 그렇게 외출했다가 저녁 무렵에 귀가하신 큰어머니께서는 새파랗게 질려 방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돈처녀를 보고 겁이 덜컥 나셨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사돈처녀는 겁에 잔뜩 질린 채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답니다.

 “귀… 귀신이 왔다가 가…갔수다!”

  그러면서 덧붙여 "아맹 허여도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라 밤인 줄 알고 귀신이 집에 왔당 간거 닮수다.

 그 말을 들은 큰어머니께서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건 또 무슨 말이니, 잘 고르라보저."라고 했고, 사돈처녀는 여전히 떨리는 음성으로 더듬더듬 말했답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여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형부이름을 대면서 그 모친을 만나래 왔댄 헙디다. 그 어른은 지금 집에 안계시댄 허난 양, 게민 저녁에 다시 초자오켄 허멍 허는 말이 귀신이 왔당 갔댄 전허랜 헙디다.”

 그 말을 들은 큰어머니께서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이고 세상이 변허난 이젠 체시(저승사자)도 한복이아니라 검은 양복 입엉 사름 데리래 왐구나.”라며 저녁도 안 드시고 밤중까지 혼 줄을 놓은 채 드러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또다시 찾아 왔던 겁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밤늦은 시각에 말이죠.

 “삼춘 계십니까? 서울에서 온 유신이가 인사차 들렀습니다.”라며.

 큰어머니께선 그제 서야 서울에 사는 사촌 시아주버님의 아들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와 문안 인사차 왔다가 안 계시다는 말을 듣고 “유신이가 왔다 갔다고 전해주시오” 했는데, 사돈처녀가 귀신으로 잘 못 들어 “귀신이 왔다 갔다고 전해주시오” 로 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오십 대에 저승 문을 밟게 되었다며 상심이 크셨던 큰어머니께서는 액땜을 하셨는지 무려 30여 년을 더 사시다 십 수 년 전에 돌아가셨고, 사돈처녀는 결혼하여 지금은 장성한 자식과 손자까지 둔 할머니가 되었답니다.

 열다섯 즈음에 들었던 그 70년대의 흑백필름 같은 에피소드는 오늘처럼 하늘 한 귀퉁이가 낮게 드리워져 추위가 느껴지는 날이면 왜 자동 생성되며 나를 웃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채택된다면 두 분의 구수한 입담으로 실감나게 읽어 주세요.) 혹여 준비된다면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 노래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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