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 신청곡
텔레비전이 있던자리
시어머니께 가전제품 몇 가지를 사드렸었다.
그 중에 티비도 있었다. 작은 것이긴 해도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같이 하며 기쁨을 주었고 어머니께서 무척 아끼던 것이다.
시어머니 돌아가신 후 그 티비는 내 화장대 위에 놓여졌다.
남편이 가져다 놓아 준 것이다. 티비 시청에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지만
잠들기 전이나 한두 개 연속극과 월요일저녁 '우리말겨루기'는 보려고 기를 쓴다.식사가 끝나기 전 연속극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어서며 ‘나 연속극’하면 남편은 한심한얼굴로 ‘그래 가서 티비 봐 내가 치울게’ 말해준다.
하지만 내가 티비를 볼 때면 내 손과 눈, 온몸과 마음까지 묶어버려 늘 허허로웠다.
며칠 전 9시 뉴스를 보던 중 티비가 검은 장막으로 가리더니 그 후로
다시 밝아지지 않았고 티비는 내 화장대를 떠났다.
내가 9시 뉴스를 보지 않아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부엌에 있는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해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방해받지 않으니 편하고 연속극에 목메지 않는 내가 좋다. 가끔 연속극 시간이 되면 어떻게 진행되나 싶어 다른 방에 가 티비를 볼까 하는 유혹이 없는 건 아니였으나 시간이 가고 다른 일에 치여 연속극 시간을 넘겨도 별로 아쉬운 생각이 없는 걸 보니 다행이다. 더 많은 시간이 가고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나이로 인해 귀조차 어둡고 사는 게 무료한 어느 날 그 때 티비를 켜야겠다 다 살아버린 무표정한 얼굴로 티비가
내 인생이 전부 인듯 평화로워 지는 날…. 티비가 있던 자리에 놓아주리라. 지금은 보지 않아도 무료하거나 심심할 겨를 없이 느리고 길게 이어지는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오늘도 일기를 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했다고 티비를 보지 않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