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2022년3월15일(화) <키워드뉴스> 1. 역사의 감옥 2.광화문의 시대? 용산의 시대?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
윤/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키워드 뉴스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
안녕하세요.
윤/
오늘의 키워드 알아보겠습니다. <효과음>
1. 역사의 감옥
윤/
감옥... 무슨 이야긴지 알겠다... 박진경 대령.
조/
감옥. 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이죠. 제주4·3 당시 “제주도민 30만 모두를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무차별적인 강경 진압을 지시했던 인물이죠. 박진경 대령. 70년이 지나서야 감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윤/
진짜 감옥은 아닙니다. 조형물.
조/
네. 역사의 감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철창 모양의 조형물입니다.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변에 있는 박진경 추도비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인데요. 마치 비석을 감옥에 가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를 비롯한 4·3 관련 단체들과 시민사회 단체들 16곳이 설치했습니다.
윤/
기습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예고 없이 갑자기 설치가 됐어요.
조/
네. 이 조형물을 설치한 날이 3월10일이었는데요. 그 날짜에 의미가 있습니다. 제주에서 3월10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날을 얘기하려면 9일 전에 있었던 3.1발포사건을 잠깐 말씀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1947년 3월1일 제주도 섬 전체에서 삼일절 기념집회가 열렸습니다. 특히 지금의 북초등학교인 북국민학교에서 대대적인 집회와 시위가 열렸구요. 기록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 2만5000명에서 3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해요. 그 당시 제주도민 숫자가 30만 정도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죠.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있으니까 그때 군과 경찰이 경비에 나섰구요.
윤/
그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하기 전이니까 미군이 한반도 남쪽을 점령했던 때였다.
조/
네. 그런데 그날 관덕정 인근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경찰이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냥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이 막 야유를 하면서 이 기마경찰을 쫓아갔다고 해요. 그러자 관덕정에 있는 경찰서에서 보초를 서던 경찰들이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걸로 오인하고 총을 쐈습니다. 그 과정에서 6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여기엔 젖먹이 어머니, 학생, 노인도 포함됐는데. 다들 집회를 구경하러 나왔던 관람군중인 걸로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윤/
경찰들이 과잉 진압을 한 것.
조/
네. 이분들이 정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잖아요. 사실 70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이런 정말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5년 11월 박근혜 정부 당시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는데요.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농민들도 이 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그때 시위행렬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에서 끝내 숨졌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었죠. 70년 전에도 제주도민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도민사회는 미군과 경찰을 상대로 공식적인 사과와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윤/
당연한 요구.
조/
그런데 당시 미군이 현지 조사까지 벌여놓고 조사 결과를 결국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과도 이뤄지지 않았구요. 그러니 도민사회에서 여기에 대한 분노가 더 커져서 총파업에 나서게 됩니다. 총파업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도 섬 전체에서 이뤄진 파업입니다. 제주도청이 그 첫 단추였구요. 그날이 바로 3월10일입니다. 제주도경찰사라는 기록에 따르면 4만명이 넘게 파업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은 여기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진압을 해나갑니다. 3.1기념대회 관계자와 파업에 동참한 회사 간부들을 대규모 검거합니다. 공권력에 의해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과도 않고 진상조사도 안 하고 무력으로 억눌러 그냥 지나가려 하니 도민사회가 느낀 분노는 어떻게 됐을까요. 제민일보4.3취재반은 <4.3은 말한다>에서 이를 두고 “불씨를 안은 채 파업사태가 해제”됐으며 “꿰매진 봉합”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윤/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억지로 봉합했다...
조/
네. 이런 분위기가 다음해 4월3일까지 이어진 거구요. 4·3과 관련해서 3.1발포사건은 잘 아시지만 3.10총파업에 대해선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설명이 좀 길어졌습니다. 다시 역사의 감옥 이야기로 돌아가서요. 단체들은 왜 이런 조형물을 설치했을까요. 4·3 때 이뤄진 학살과 공동체 피해에 대해선 대통령이, 국가가 사과를 하며 책임을 인정했잖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빠진 게 있습니다.
윤/
가해자 처벌. 4.3의 과제 중 하나죠.
조/
네. 지금 정부가 말하는 4·3에서 ‘죄’와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없는 형국이 됐습니다. 여기서 가해자는 당시 학살에 가담했던 모든 군과 경찰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아래 직급 말고. 책임자 지위에 있던 인물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학살을 지휘했던 인물들에게 책임을 묻고 죄를 물어야 한다는 거죠. 얼마 전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 당선인은 여기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습니다만.
윤/
최근 검찰이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들 특별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항고한 것도 그렇고 새로 들어설 정권에 대해 우려가 큰 분위기이긴 합니다만.
조/
이건 좀 두고봐야 할 문제이긴 합니다. 그리고 국가 폭력에 의해 시민들이 희생 당한 사건들이 우리나라 말고도 많이 있는데요. 다른 나라에선 국가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비교하면 좋을 거 같아서 몇 가지 해외 사례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지난달에 네덜란드 틸뷔르흐 대학에서 문화간 정치적 사과 연구팀이 연구 결과를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 사건을 두고 국가의 사과 형태를 비교 분석한 연구인데요. 이 연구팀은 한국의 제주4·3,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엘모소테 학살, 영국의 북아일랜드 학살 사건인 ‘피의 일요일’... 이 세 사례를 연구했습니다.
윤/
모두 정부군이 자행했던 학살.
조/
네. 간략히 설명하자면 엘모소테 학살은 지난 1981년 엘살바도르의 엘모소테 마을에서 벌어진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틀 동안 최소한 민간인 1000여명이 정부군에게 학살 당했습니다. ‘피의 일요일’은 지난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영국군이 비무장 아일랜드 시위대를 상대로 총격을 가해 14명이 숨진 사건입니다. 세 국가의 공통점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과 이후 양상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윤/
정부의 사과에 따른 후속 조치가 각 나라마다 다르다?
조/
정확히 말하면 한국만 다릅니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지난 2012년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이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학살사건 주범인 군부대를 지휘했던 지휘관들은 살인과 고문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또 영국의 경우 지난 2010년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가 사과를 했고 가해자 처벌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아일랜드 시위 진압에 참여했던 공수 부대원이 기소가 됐습니다.
윤/
한국만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조/
네. 이때 세미나에서도 연구팀이 주제발표를 마치며 그 점을 묻더라구요. 영국과 엘살바도르에선 학살 책임자에 대한 법적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데 왜 한국에선 그런 게 없느냐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정부가 학살 책임자에 대해 처벌하지 않으면 시민사회에서 이걸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국가가 인정까지 했던 범죄에 대해 우리가 가해자 처벌을 쉽게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박진경 추도비에 설치된 역사의 감옥을 그 연장선상에서 같이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윤/
정부가 과거사의 책임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조/
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폭력을 주도한 인물에 대해서 죄를 묻지 못할망정 그 인물의 공을 치하하면서 추도비를 세운다니... 앞서 말씀드린 연구팀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납득하기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특히 박진경의 경우는 국립서울현충원에도 묘비가 있습니다. 현충원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이여한 인물을 안장하는 곳입니다. 참고로 지난해 사망한 전두환씨 같은 경우는 여기에 묻히지 못했죠. 우리가 과거 국가 폭력의 책임자에 대한 죄를 묻지 못하고 있다면 그 역사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국가의 폭력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윤/
어쨌든 이 조형물이 도유지에 설치가 된 건데. 허가를 받지 못한 시설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조/
박진경 추도비가 설치된 한울누리공원을 관리하는 곳이 제주도보훈청인데요. 어제 입장을 밝혔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허가 없이 설치한 것이라서 원상복구 명령을 내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설치한 주체 측에서 원상복구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통해서 철거할 계획까지 있다고는 하는데요. 도민사회 여론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4·3기념사업위에선 “자진 철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키워드를 역사의 감옥 조형물에 붙여진 글귀로 마무리하고 싶은데요. “우리는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이 자의 추모비를 철창에 가둔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자에 대한 단죄이자 불의로 굴절된 역사의 청산이다.”
윤/
다음 키워드.
2. 광화문의 시대? 용산의 시대?
조/
광화문의 시대? 용산의 시대?,입니다.
윤/
?
조/
지난주 20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뽑힌 윤석열 당선인이 오는 5월10일부로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할 예정인데요.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져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두 곳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한 곳은 광화문에 있는 외교부 청사이고 또 한 곳은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라고 합니다.
윤/
그래서 키워드에서 광화문과 용산을.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에 집무실을 꾸리겠다고 공약으로 발표했었다. 장소가 바뀌었다?
조/
네. 말씀하신 것처럼 윤 당선인은 지난 1월에 공약으로 ‘청와대 시대를 마무리하고 국민과 동행하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내세웠는데요. 제왕적 대통령제도를 해소하는 취지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로 청와대에서 집무실을 빼겠다고 한 겁지나요. 지금 국정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 위주로 밀실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폐쇄적인 청와대가 아닌 국민과 소통하자는 의미에서 정부서울청사 얘기가 나온 겁니다.
윤/
근데 집무실 이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추진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
네. 2019년에 공식적으로 파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만약 지금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옮기면 집무실뿐만 아니라 영빈관과 본관, 헬기장 같은 시설들도 함께 옮겨야 하는데 광화문 쪽엔 그럴 만한 부지가 없다는 겁니다. 또 광화문 광장에선 여러 다양한 집회가 열리고 있잖아요. 만약 대통령 집무실이 옮겨지면 경호 문제 때문에 집회나 시위가 열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로부터 100미터 이내에는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윤/
광화문 광장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
조/
네. 일단 윤 당선인 측에서 정부서울청사로의 이전 계획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본관 건물이 넓어서 여유부지가 많지 않고 차도와 광장이 근처에 있어 경호 같은 문제 때문에 일단 빠졌습니다. 그리고 유력한 검토 후보지로 부상하고 있는 게 용산 국방부 청사입니다. 여긴 지하벙커도 있고 헬기장 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이전이 용이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보수진영은 ‘안보’ 이슈를 자신들에게 항상 끌어오려고 하잖습니까. 국방부 청사로 옮기게 되면 그런 이미지도 강화된다는 효과가 있겠죠.
윤/
어쨌든 집무실을 옮길 가능성은 높다. 굳이 옮겨야 하느냐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조/
네. 이게 제왕적 대통령, 폐쇄된 청와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데. 그냥 청와대 자체의 개방성을 높이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청와대 담을 좀 낮춘다든가, 주변 도로를 확장하거나 해서 국민들과 가까이 갈 수도 있는 건데요. 이전 정권을 교체한다는 상징성 하나만을 위해 무리하게 비효율적인 공약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폐쇄적인 청와대 시스템을 개혁한다는 데선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요.
윤/
(마무리)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까지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