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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05분

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12월 8일 (수) 남영호 침몰 생존자 이옥윤 구술 채록집 (기억문화 콘텐츠 랩 장미라 대표)

◇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윤상범> 예 남영호 사건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970년 12월 14일에 326분이 사망했던 끔찍한 사고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영호 침몰 당시 생존자 중에 한 분인 이옥윤 할머니의 구술 채록집이 발간이 됐다고 하는데 오늘 기억문화 콘텐츠 랩의 장미라 대표를 연결해서 구술 채록에서부터 책으로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지금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장미라> 네 안녕하세요

윤> 예 제가 기억문화 콘텐츠 랩이라고 소개를 해드렸는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를 간단하게 부탁드릴까요?

장> 네 저희는 제주를 기록하는 아카이빙 문화예술 기업이고요 작년 11월 제주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어서 제주의 자연이나 마을, 해녀 그리고 숨어 있는 역사 등을 발굴해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윤> 예 기록을 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장> 네

윤> 저희가 듣기로 대표님께선 제주 출신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장> 예 저는

윤> 네 제주에서 근데 또 사회적 기업을 하고 계신다고 하니까 궁금한 부분이 좀 많이 있는데요

장> 네

윤> 예 말씀해 주실까요 왜 사회적 기업을 제주에서 하셨는지요

장> 예 제가 한 8년 이제 벌써 한 지 9년이 다 돼 가는데 처음 그때 제주에 내려왔을 때 그때 해녀에 대한 관심이 제가 있어서 제주로 이주를 해서 왔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제 초반에 해녀분들을 만나서 기록하기 위한 그런 활동들을 했었고 그때 해녀분들이랑 또 개인적으로 제주도만 가지고 있는 그런 전통 무속 신앙 이런 데 좀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마을 본향당이나 이런 것들도 기록도 하고 주로 그런데 해녀 분들을 되게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그때 기록 작업을 하다가 그런데 제가 한 명의 개인 작가로서는 다양한 일들을 확장시켜 가기에는 현실적으로 좀 한계들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걸 그럼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이어서 하면 어떻겠느냐 그런 제안을 했었고 그걸 계기로 작년 11월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윤> 예 기록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사실 우리 제주에도 기록을 해서 남겨야 할 것 굉장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잘 안 돼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긴 하거든요 굉장히 중요한 작업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이번에 발간되는 책이 남영호 참사 생존자의 구술 채록집입니다 사실 이 남영호 참사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다시 한번 또 주목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굉장히 오래된 사건이기 때문에 어떻게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장> 네 사실은 저도 남영호 참사가 1970년도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었고 또 저는 또 원래 제주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아까 말씀드렸지만 제주도 처음 이주 초기에 해녀분들을 많이 그때 만났었다고 아까 말씀드렸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2014년, 2015년 제가 구좌읍 하도리에서 해녀분들을 만나서 생애를 기록하거나 사진으로 기록하는 그런 활동들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제 아주 가깝게 지냈던 삼촌 한 분이 본인의 결혼식 이야기를 하다가 제주말로 ‘게메 그날이었어’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말만 하시고 한참 동안 이제 본인의 결혼식 사진만 이렇게 들여다보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 눈빛이나 그 삼촌의 표정이 지금도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뭐지 이랬을 때 삼촌하고 더 이제 왜 그러시냐고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삼촌이 결혼했던 날이 이제 1970년 12월 15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날 이제 결혼식을 하면 제주도는 이제 며칠씩 피로연을 하잖아요 그래서 피로연에 온 사람들이 그날 남영호가 침몰됐다고 그분들이 와서 삼삼오오 모여서 다 그 얘기만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의 결혼식이 잔치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약간 초상집 같은 그런 분위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이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서 바로 옆 동네 종달리에는 누가 누가 죽었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이제 본인도 듣고 처음 알게 됐다고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그때는 이제 제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하도리에서는 어떤 분들이 희생됐는지 그런 얘기는 저도 듣지는 못했었는데 계속 제가 이 사건을 처음 그때 접하고 너무 이제 소름이 돋을 만큼 이제 너무 이제 어떻게 남영호 침몰 사건에 대해서 내가 지금껏 몰랐을까 그리고 약간 좀 그때 희생된 분들에 대한 뭔가 좀 죄송한 마음 그런 것도 좀 들기도 했었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작년에 우연히 여름쯤 8월쯤에 울산의 생존자 할머니가 살아계시다는 걸 알고 제가 만나러 갔었어요 작년에 근데 할머니랑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까 정말 정말 우연히도 할머니 또 고향이 하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또 할머니가 또 하도리에서 원래 또 해녀도 하셨다고 이제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사실 처음 할머니에 대한 정보를 전혀 이제 모르고 갔었는데 이제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정말 약간 소름 끼칠 만큼 정말 할머니를 만나야 될 뭔가 운명이었나 그리고 이제 여러 가지 얘기를 하다 보니 또 그 할머니가 이제 같이 원래 그날 같이 6살 딸이랑 자기 사촌이랑 같이 배를 탔었는데 같이 다 이제 결국은 다 희생이 됐지만 같이 탄 사촌 동생이라는 분도 제가 하도리에서 처음 기록 작업을 할 때 도와주셨던 분의 이모시더라고요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래서 뭔가 50년, 51년이 지나서 어떻게 만나게 됐지만 내가 이옥윤 할머니를 뭔가 운명적으로 만났어야 했나 그런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작업들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윤> 이옥윤 할머니는 혼자 살아남으셨던 거잖아요

장> 네

윤>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326분이나 희생된 참사였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이것도 제대로 좀 규명이 안 된 그런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에 참사 생존자가 12분밖에 안 됩니다 338분이 탑승을 했다가 326명이 사망을 했고 12분만 구조가 됐는데 지금 뭐 이제 50년도 넘었기 때문에 굉장히 오래된 일인데 그 할머니 생존자분이 있지 않습니까 이옥윤 할머니 이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장> 이옥윤 할머니는 남영호 침몰 당시에 구조된 12분의 생존자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구조된 분이에요 그래서 사건 당시 사건 발생 15시간 30분 만에 구조가 되었어요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구조가 되었기 때문에 침몰 순간부터 구조가 될 때까지 남영호 침몰 당시 상황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올해 이제 87이시고 현재는 이제 울산에서 살고 계시는데 이제 한때는 이제 하도리에서 해녀로서 이제 물질도 하셨고 그리고 이제 그런 것 때문에 아무래도 해녀로서의 경험 이런 경험들 때문에 배가 침몰할 때 안고 있던 6살 딸을 파도에 놓치자 딸을 찾기 위해서 바다에 새벽녘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바다에 들어가서 자맥질을 하면서 그 딸을 찾기 위해 거친 숨비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얘기를 할 때 저도 굉장히 사실 좀 많이 울었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는 사실 다른 자료 기존에 나와 있는 자료들도 많이 없긴 하지만 사실 다른 데서도 제가 보지 못한 그런 이야기들을 할머니가 굉장히,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계셔서 이건 정말 할머니의 모든 이야기 하나하나가 이후에 남영호 침몰 참사를 이후에 이제 저희가 이야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윤> 혹시 다른 분들은 만나보시지 못했습니까 생존자분들 중에

장> 제가 한 분을 더 만났었어요 그분은 오양희 할머니라고 그 할머니는 현재 서귀포에 살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할머니도 만났었어요 그래서 할머니 댁에도 찾아가서 이제 말씀을 나누긴 했는데 할머니는 더 이상 찾아오는걸 원치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시간도 그 오양희 할머니 같은 경우는 올해 이제 92 연세가 굉장히 많으신데 아직까지 좀 정정하긴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할머니는

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셨던 모양이로군요

장> 예 그래서 할머니는 이렇게 더 이상 찾아오는 걸 원치 않으신다고 그러셔서 그래서 이제 오양희 할머니는 저희가 좀 더 이상 찾아뵙기 힘들어서 이옥윤 할머니의 구술 채록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윤> 그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도 사실 제가 아까 세월호 잠시 언급을 했었습니다마는 이 사건도 기록을 좀 살펴보면 과적이 있었고 그렇죠 그다음에 사고가 난 뒤에 제대로 된 구조가 없었고 그다음에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입막음을 하려 했던 그런 정황들이 있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또 여태까지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기억을 다시 더듬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라는 짐작은 감히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이옥윤 할머니 일단 한 분을 구술채록 하셨습니다마는 다른 지역에 살고 계셔서 이 어려움도 좀 있었을 것 같고 시간도 꽤 많이 걸렸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장> 시간은 사실 이제 시간은 한 2년 정도 걸렸지만 실제로 이제 할머니를 만나는 건 이렇게 좀 쉽지는 않았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작년부터 이제 코로나 때문에 처음에 작년 할머니랑 처음 연락이 닿은 거는 작년 한 7월쯤 이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를 곧 봬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자주 통화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 이제 울산의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는 일이 있어가지고

윤> 예 시절이 또 어려움을 겪게 했군요

장> 예 그래서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이제 얘기를 하면서 그럼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가겠다 가겠다 이렇게 했던 게 작년 이제 11월에 그때 비행기 운항이 다시 재개해서 11월에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요

윤> 예 할머니께서는 지금도 생생하게 당시를 기억하시던가요?

장> 제가 정말 저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놀라운 거는 할머니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세요 그리고 또 할머니가 굉장히 좀 명민하신 분이셔 가지고 그때의 어떤 상황들을 너무너무 생생하게 기억하시고 그리고 할머니가 당시에 본인이 겪었던 일을 그때 이제 제가 갔을 때 보여주셨는데 본인이 겪었던 일을 글로 기록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윤> 아 그래요?

장> 네 그래서 저한테 그걸 보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물론 이제 굉장히 많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생각나는 그런 것들을 그 원고지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꾹꾹꾹 눌러서 그거를 이제 쓰고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저한테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읽어보라고 제가 그걸 보면서 참 너무 마음이 할머니는 이제 본인이 겪었던 이 일을 본인이 떠나기 전에 꼭 이걸 알리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들이 굉장히 강하시구나 그걸 많이 느꼈습니다

윤> 굉장히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시면서도 굉장히 가슴 아픈 얘기들 많이 들으셨겠네요 그러니까

장> 네 처음에는 사실 할머니가 이제 너무 담담하게 말씀을 하셔서 물론 이제 51년이라는 시간이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할머니가 어떻게 저렇게 담담하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지 그런 약간 좀 의구심 같은 게 들었어요 저는 제가 만약에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제가 버틸 수 있었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은 들었거든요 근데 어떻게 할머니는 그 50년 세월을 저렇게 버틸 수 있었지 할머니의 그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그 목소리와 태도가 오히려 저는 너무 좀 의아했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의 이야기를 뒤에 듣다가 보니까 할머니가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바다에서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더라고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너무나 이거를 뭐라고 가슴에서 이걸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어서 오히려 할머니는 더 담담하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식을 잃은 그런 슬픔을 이거를 말하기 시작하면 할머니가 좀 버티시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더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들도 해봤습니다

윤> 예 기록을 남기고 계셨다고 하시는 걸 보니까 이런 구술채록집이 책으로 나온다고 하니까 좀 반가워하시겠어요 할머니께서도

장> 네 할머니가 일단 무조건 저에게 너무 고맙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면서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거잖아요 할머니는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 일을 기억하고 찾아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코로나 같은 이런 시국에 또 와서 할머니를 만나겠다고 사실 가서 이제 비행기 편이 몇 편 없기 때문에 가서 또 금방 얘기를 듣고 또 빨리 와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할머니가 하시고 싶은 말씀은 너무 많으셨어요 하지만 제가 또 그런 시간들을 빼서 이렇게 오가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할머니는 늘 갈 때마다 너무 고맙다고 고맙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윤> 얘기를 더 많이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장> 할머님이 다음에는 오면 밤새서 본인이랑 얘기를 하고 듣고가 본인이 얘기를 할 테니까 얘기를 듣고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저가 오면 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되게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윤> 알겠습니다 사실 좀 이야기를 나누면서 좀 먹먹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좀 빨리 책을 좀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희가 이렇게 방송을 하고 있으니까 사실 제주도 사업인가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아니고 청주 문화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 진행된 사업이라면서요

장> 네 이게 제주도가 아닌 청주 문화도시 조성 사업의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 사업의 일환으로 책자 발간이나 일부의 그런 지원들을 받아서 사업을 진행했던 건데요 그래서 이제 이후에 이 결과물들은 이후 청주시에 건립될 시민기록관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니께도 이 내용을 말씀을 드렸는데 할머니는 한편으로는 굉장히 반가워하시면서도 이게 제주도가 아닌 타 시도에서 이제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다는 이런 작업들을 지원을 하고 있다라는 그런 내용 그런 사실에 많이 서운해하셨어요 사실 가족분들과 할머니는 왜 제주도에서 이런 사업들을 하지 않는지 많이 서운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윤> 저희도 그 말씀 들으니까 굉장히 좀 죄송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계속 좀 다뤄왔어야 되는 부분들인데 어쩌면 제주도에서 너무 잊고 싶었던 그런 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좀 해보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셨고 또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 청주시의 사업으로 진행은 됐지만 제주에서도 책을 구해볼 수 있을까요?

장> 지금은 아직까지는 저희가 이제 비매품으로 이거를 저희가 아직까지는 이걸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지금 계획은 사실은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저희가 이번 사업은 사실 아직 일부 할머니가 말씀하신 내용 중 아직 일부만 정리해서 저희가 자료집으로 만들었고 사실 할머니가 아직까지 말씀하시고 싶어 하는 내용에 아직 절반도 얘기를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저는 제가 할머니께도 말씀을 드렸어요 입원은 이후에 더 할머니의 말씀을 더 보완을 해서 책으로 출판을 하겠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이번 청주시 사업과는 무관하게 내년에 작업을 해서 초중순경 이제 이 이야기들을 묶어서 책으로 구술 자료집으로 책으로 출판을 할 계획들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저희가 나중에도 더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책이 나오고 나면 그때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고요 저희도 좀 할머니 한번 뵙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예 오늘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좀 마쳐야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모시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장> 네 감사합니다

윤> 예 기억 문화 콘텐츠 랩의 장미라 대표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