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2022년9월7일(수) <오늘의시선> 변화하는 명절문화 (김태연 제주여민회 이사)
◇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리뷰는 실제 방송 원고가 아닌 사전 원고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 방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입니다.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 안녕하세요.
윤 : 지난 방송 때는 가면 갈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속화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죠. 그래서인지 한 달이 더 빠르게 지나가버린 것 같습니다.
김 : 달마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거 같은 착각이 듭니다. 7월에는 시속 70km, 8월에는 시속 80km 이렇게요. ‘일각여삼추’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엔 ‘삼추여일각’의 시대 아닌가 싶습니다.
윤 : 미래에는 시간을 재는 단위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김 : 한 3000년쯤 되면, 예전에 지구인들은 하루가 24시간이었다던데? 이럴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때에, 명절이나 기념일이 딱 현실감각을 일깨워주죠.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윤 아나님은 이번 추석 연휴에 본가 다녀오시나요? 대체공휴일이 껴있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피 말리는 티켓팅, 예매 전쟁이던데요.
윤 : 태연 씨는 연휴에 본가 다녀오시나요?
김 : 저는 양가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반나절이면 다 다녀옵니다. 평소에도 자주 왕래하니 고향에 간다, 이런 기분은 들진 않는데요. 최근에 재미있는 TV 광고에 나온 대사 듣고 정말 빵 터졌거든요?
윤 : 어떤 대사였는데요?
김 : '올 추석 고향에 왔습니다 여기 마음의 고향으로'라는 대사예요. 요즘 세태를 잘 캐치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연휴 때 인천공항에 인파들도 어마어마하다는 보도도 자주 접했었는데, 다들 마음의 고향 찾으러 갔던 건가 봐요.
올 추석엔 여행 가능한 곳을 찾아 가실 분들 꽤 많을 것으로 보이고., 또 마음의 고향 제주를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이른바 ‘짤방’이라고 하나요? 화제를 모은 게시물이 한동안 잘 돌아다녔는데, 내용이 이렇더라고요. “진짜 조상 덕 보는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 안 가고 해외여행 나간다” 이 말에 저희 할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도 생각해요.
윤 : 그런 얘기가 있군요. 명절에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얘기 꺼내면 토론 분위기가 아주 뜨거워지겠는데요.
김 : 도발적인 말이긴 하지만, 이 참에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제 주변을 두고 본 경험적인 데이터이긴 하지만 추석은 몇 년 사이에 부쩍 안 지내거나, 아주 간소하게 지내는 추세로 점점 바뀌는 거 같더라고요. 세태를 반영하는 움직임일 수도 있고, 또 팬데믹 2년 겪으면서 왜 진작 이러지 못했나? 하는 각성의 결과겠단 생각도 들고요. 제 나이 또래보다도, 부모님 세대에서 더 활발하게 이 문제를 많이 상의하고 계시더라고요.
윤 : 의외인데요? 2030 나이 대에서 명절 문화 개선에 더 적극적일 줄 알았어요.
김 : 그런 가정도 있을 테고, 반대로 무관심한 가정도 있겠죠. 그래서 더 부모님 세대, 그러니까 지금의 5060 기성세대에서 나서서 이 문제를 조율하려고 한다는 인상이거든요. 요즘 말로는 사이에 끼어있다고 해서 ‘낀대’라는 표현도 쓰던데, 앞선 세대에게는 이런 제례 봉행이 당연하다고 학습 받았던 반면에 자녀 세대들은 관심이 아예 없기도 하고 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니까 어떻게든 이 시기에 위아래 세대들과 절충안을 찾겠다, 이런 의중이 있는가 봐요. 제례 문화를 합리화하려는 게 단지 몇 년 사이에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서 부쩍 더 당일제를 지내는 문화나, 합제를 하거나, 사당이나 절에 모신다거나, 봉사 대수를 조정한다거나, 또 아예 먼저 ‘내 제사는 하지 말고 형제들끼리 모여서 밥이나 한 끼 먹어라’ 당부를 하는 움직임이 요즘 더 많이 일어나는 거 같습니다.
윤 : 내 세대에서 어떻게든 조율을 하겠다, 이런 결심이 작용하는 맥락이 있군요.
김 :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제가 농반 진반으로 ‘제사상에 햄버거, 피자, 파스타 이런 거 올려도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을 했다가, 어른들이 버럭하시면서 ‘앞으로는 제사 안 하는 시대가 올 텐데 젊은 애가 시대에 역행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화들짝 놀란 적이 있어요. 저는 나름 절충안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꺼냈던 건데, 더 급진적으로 사고하고 계시더라고요. 어른들은 제사, 차례 지내는 거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놀라기도 했고 또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도 놀라기도 했어요.
윤 :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아무리 현대화, 합리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정말 제사나 차례가 없어질까요?
김 : 이 이야기는 제가 불과 반 년 전인 지난 설 때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가, 합리화를 추구하더라도 ‘제사 자체에 손대지 않는 게 맞다’ 이렇게 언급을 했는데 방송 나가고 나서 중년의 선생님들께 지적 여러 번 받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요. 가정 내에서 누가 그렇게 얘기하는지를 잘 따져보라는 지적이 있었고요. 그러니까 남성이냐, 여성이냐 따진다면 대개는 남성일 거라는 뜻이고요. 또 하나는 하고 있는 제사는 하되,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는 맥락이 있는 거다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이 자리를 빌려서 정정하겠습니다.
윤 : 어쨌든 없애야 한다, 이런 말로 들리는데요.
김 : 이런 이야기도 어쨌든 가족, 친척들끼리 과감하게 해보시면 좋겠어요. 전통이 낡기만 하다고 할 수는 없고 애초에 제사나 차례가 가진 의미가 있을 텐데, 점점 부담이 된다고 받아들여지고, 더는 못하겠다, 자녀들에게는 부담을 물려주지 않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이 부담이라고 하는 게 여러 가지 중첩되어 있는데요. 제례에 정성을 다하기 위해서 흔히 ‘상에 올릴 재료는 값을 깎지 않는다’고하잖아요. 좋은 것만 올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으니까, 제사 때도 만만치 않지만 이 대목이 몰리면 차례상 물가 엄청나기도 하고요.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지도 꽤 됐을 만큼, 가정의 구성원 중에서도 부담이 누군가에게 더 쏠리고 있기도 하죠. 이런 이야기를 좀 터놓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윤 : 그렇죠. 그렇지만 생각처럼 대화가 잘 풀릴까는 걱정입니다.
김 : 쉽지 않죠. 사학을 전공한 제 친구는 ‘진짜 양반들은 제사 이렇게 안 지낸다, 우리도 조선 말기에 족보 사온 거 아니냐’고 말했다가 할아버지가 진노하시는 바람에 명절에 쫓겨날 뻔 했다고 해요. 그 다음 일은 더 설명 드리지 않아도 그려지시죠?
때로는 극단적인 갈등 표출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눈치껏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더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윤 : 그래서 어떻게 말을 꺼낼까, 또 가족 중에 누가 말을 꺼내냐, 이런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김 : 올해는 이 방법 어떨까요? 다행하게도, 고맙게도(?) 최근에 성균관의 의례정립위원회에서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더라고요. 성균관에서 제례 문화에 관해서 인터뷰를 한 적은 그동안도 꽤 있었지만, 아예 이런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한 건 처음이라고 해요. 이 자료에서 밝힌 취지는 “이번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가정의례와 관련하여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차례를 지내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더라고요. 아무래도 변화하고 있는 세태에 적극적으로 지침을 제시한 것 같고요.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어요.
윤 : 몇 가지 간추려서 소개 좀 해주세요.
김 : 가장 눈길을 끈 첫 번째는, 전 안 부쳐도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문답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고요.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 밀과와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름을 이용하여 전을 부치는 명절이 아니라 가족과 뿌리를 생각하는 명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윤 : 뿌리를 생각하는 명절이라고 하면, 뿌리채소도 좀 올려야 하는지... 농담이고요. 명절하면 이 기름진 음식, 저절로 떠오르는데 원래는 올리는 게 예가 아니라는 말이네요?
김 : 그래도 왜 그랬던 걸까 추정을 해보자면, 보관이 용이하지 않았던 과거에 음식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기름을 이용한 음식을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젠 그렇지 않으니 성균관의 안내를 잘 따르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두 번째는 질문이 “고인이 살아 생전에 즐겨 드시던 밥과 김치, 토마토, 과자 등으로 차례상을 차려드리고 싶습니다”였는데, 어떨 거 같으세요?
윤 : 김치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토마토 같은 과일? 혹은 채소도 괜찮은 건가요?
김 : 성균관의 답으로는 괜찮다고 하네요.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를 보면 '살아 계실 때 먹지 않았던 물품으로는 제사 지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기록이 있다고 해요. 앞으로는 조상님 생전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던 음식은 없었는지 잘 떠올리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좋아하던 음식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올리셔도 좋겠고요.
윤 : 이렇게 바뀌다 보면 경제적 부담도 줄고, 또 준비하는 가족들의 부담도 줄어들겠네요.
김 : 네, 그 점을 강조를 잘 하셔서, 이번 명절을 분기점으로 많은 집이 서로에게 좋은 방안을 만들면 좋겠어요. 제가 이 표준안 접하면서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까, 그렇지 않아도 성균관에서 비슷한 제안은 언론을 통해서 많이 했더라고요? 제 눈에 들어온 대목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차례는 원래 간소한 게 맞고, 기제사는 품계에 따라서 가짓수가 달랐는데 근대화를 거치면서 모든 집이 영의정처럼 지내게 되었다는 언급이 있더라고요. 두 번째는 본연의 차례상으로 되돌아가려면 지금 쓰고 있는 큰 교자상이 아니라 작은 상으로 간소하게 치르는 방법을 제안했고요. 아마 이번 표준안도 인터뷰가 거듭되어도 논쟁이 계속되니 아예 표준안으로 만들어서 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윤 :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게 되니까 여기에 또 영향을 받으면서 모든 집의 영의정화가 된 거 같네요. 흥미로운 대목이에요.
김 : 방금 제가 이번 명절이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이 타이밍이 좋은 게, 코로나19 2년 겪으면서 네 번의 명절을 보내면서 문화가 많이 바뀌었어요. 명절에 꼭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니었구나, 꼭 모여야 하는 거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되기도 했고요. 가족이나 친척을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실제로 팬데믹 전과 후의 명절 양상을 연구한 논문이 있는데, 전 연령대에서 부모님집 방문은 크게 줄고, 집에서 휴식은 눈에 띄게 늘었더라고요. 가족모임 축소도 70퍼센트, 명절맞이 방식 간소화도 70퍼센트가 넘고요. 그 이후에 아마 많은 가정에서 간만에 대이동을 감수하시고, 대규모의 모임들도 할 것 같은데, 기회는 이때라는 걸 거듭 말씀드립니다.
윤 : 이 방송 듣고, 언짢아하실 분들도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도 한 번 귀 기울여주시면 좋겠네요.
김 : 네, 모처럼 맞이하는 명절 2년치 쌓아둔 덕담도 많이 나누시고, 달라지는 문화도 너무 서운해 하지만 마시고 다양한 세대, 또 다양한 입장인 가족들과도 많은 이야기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윤 : 네,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풍성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 네, 이번 명절은 덜 기름지게, 더 풍성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