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MBC

검색
라디오제주시대

라디오제주시대

18시 05분

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2022년2월9일(수) <오늘의 시선> 프레임 뒤에 사람 있어요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리뷰는 실제 방송 원고가 아닌 사전 원고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 방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윤 : 수요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

오늘은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김 : 오늘의 이야기는, 제가 제목을 붙여 봤는데요,

“프레임 뒤에 사람 있어요”입니다.

윤 : “프레임 뒤에 사람 있어요”... 의미심장한데요. 소개해 주시죠.

김 : 우리가 흔히 언론 등 매체를 통해서 제주사회 이슈를 접할 때. 특히 대규모 개발사업 같은 경우 찬반 갈등, 혹은 민관 갈등 이런 식으로 보도가 되고, 이해하는 경우가 흔한데요.

제가 그동안 여러 난개발 사업을 취재하면서 느낀 공통점들 중 하나가 바로 찬반 프레임 때문에 정작 중요한 가치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었어요.

지역민들 간의 갈등, 민과 관의 갈등 이런 거대한 프레임 때문에 오히려 정작 중요한 우리 지역민들의 삶 이야기는 뒷전이 되고요.

외부에서 봤을 땐, “저기 또 시끄럽게 반대집회 하네, 시위 하네” 이런 시각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마음 아프더라고요.

예를 들면 강정 해군기지와 진입도로 개설공사 관련 문제, 선흘2리 제주동물테마파크 문제, 화북 중계펌프장 문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문제 등등 제주의 난개발 이슈가 있는 문제들에 대부분 해당하는 것 같은데요.

오늘은 이중에서도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이 시행 중인 월정리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주민들이 사업을 반대하며 ‘민관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많은 언론에서 보도한 방식인데요. 이 프레임 뒤에는 월정리 주민들이 있고, 우리가 잘 몰랐던 오랜 세월의 고통이 있습니다.

윤 : ‘민관 갈등’이라는 프레임 뒤에 가려진 월정리 주민들의 고통. 하나씩 짚어보죠.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 하수처리가능 용량을 기존보다 두 배 가량 증설한다는 내용이죠?

김 : 네, 맞아요. 우선 사업 개요부터 잠시 설명 드리자면, 현재 동부하수처리장의 처리용량은 하루 1만2000㎥ 수준인데요. 처리가능용량을 2만4000㎥까지 곱절로 증설시키겠다는 것이 이번 사업의 골자고요.

이 사업이 처음 고시된 시점은 2017년 7월이에요. 그런데 당시 주민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면서 제대로 공사가 시행되지 못했고,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윤 : 2017년부터 시작해서 햇수로 6년차 접어드는 사업인데, 아직 공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고요. 주민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것이 공사 지연의 이유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말로 하면 주민 반대가 심해서, 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김 : 맞습니다. 다만 제가 굳이 ‘주민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있는데요. ‘주민 반대’라는 프레임에 정작 중요한 주민들의 이야기가 가려지고 있어서 그래요.

말씀주신 대로 이 사업에 주민 반대가 심한 것도 맞고, 이 때문에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민 반대’라는 사실 자체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왜 주민들이 이렇게 반대를 하는 걸까? 이미 있는 하수처리장인데, 좀 증설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나? 제주도 하수처리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월정 주민들이 좀 양보해주면 안되나? 이런 비판적인 질문도 좋고요. 나아가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는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발전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윤 : 어떤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이면의 것들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은데요. 이번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에 숨은 이면의 이야기에 앞서서,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프레임 얘기를 좀더 해보죠. 현재 이 사건이 주민 반대에 부딪혀 지연되고 있다는 프레임 외에, 또 어떤 프레임이 사건의 본질을 감추고 있다 보시나요?

김 : 작년 겨울부터 월정리 주민분들이 동부하수처리장에 들어서는 길목을 막아서고 공사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동부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찌꺼기, 일명 ‘슬러지’라고 하는데. 이 슬러지를 원래는 수시로 외부로 반출해서 처리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주민 분들이 막아섰기 때문에 그게 안 되고 있어요. 차량 진입이 불가능해서요. 이 때문에 지금 동부하수처리장 가보시면 슬러지가 계속 쌓이고 있고, 냄새가 엄청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서 등장한 프레임이 바로 ‘민관 갈등’인데요. 하수처리장 증설을 반대하며, 슬러지 반출을 못하게 막아서고 있는 주민들 vs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는 하수처리장 공무원들. 이런 구도로 외부에서 보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윤 : 궁극적으로는 증설사업 반대를 위함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슬러지가 쌓이며 악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건데요. 한편으로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어떤 프레임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 : 네, 사실이긴 합니다. 그렇긴 한데요.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슬러지 반출을 못하게 되면 하수처리장에서 일하시는 공무원 분들도 물론 고통스럽겠지만, 인근 주민들도 당연히 악취 피해를 겪게 돼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어요. 도대체 왜, 주민들은 본인들이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을 반대하는 걸까? 이 추운 겨울날 24시간 보초를 서면서까지 공사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이유는 뭐지? 라고요.

윤 : 정말 24시간 보초를 서나요? 주민 분들이?

김 : 네, 보초를 서는 분들 중에는 해녀 할머니들도 많고요. 70~80대 이상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날이 추워서 컨테이너 박스를 근처에 가져다 놓고, 불을 떼면서 24시간 보초를 서고 계세요.

그리고 하수처리장 앞에 가로등이 하나 있는데, 보초를 처음 서던 날엔 이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다음날부터는 그 가로등이 어떤 이유에선지 꺼졌다고, 그래서 그날은 어둠 속에서 보초를 서야 했다는 사연도 있었습니다.

윤 :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해지네요. 추운 겨울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사업 반대를 외치시는 이유, 우리가 몰랐던 이유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요.

김 :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을 수 있겠는데요. 첫째, 생계 위협. 둘째, 마을 지키기. 셋째, 제주도에 대한 불신. 이 세 가지가 ‘민관 갈등’이라는 프레임 뒤에 가려진 본질이라고 하겠습니다.

윤: 우선 첫째, ‘생계위협’ 이유부터 들어보죠. 하수처리장으로 인해 월정리 주민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이런 말인가요?

김 : 네, 월정리 사람들은 예부터 물질과 밭일 두 가지로 생계를 유지해왔다고 해요. 그런데 하수처리장이 생기면서 바다가 오염됐고, 이로 인해 물질이 점점 어려워지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해녀 분들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시더라고요.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똥물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물질을 못 하겠다’라고요. 물론 해양생물 수확량도 이전보다 확 줄었고요. 예를 들면 깨끗한 바닷물에만 사는 우뭇가사리가 과거엔 정말 많았는데, 해가 갈수록 수확량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합니다.

윤 : 물질이 어려워져서 생계를 위협받는 해녀분들의 사연,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밭일’이 어려워진 까닭은 뭐죠?

김 : 이 부분은 시간을 훨씬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야 이해할 수 있는데요. 동부하수처리장 인근에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자연유산.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 있고, 이 동굴들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시점이 2006년입니다. 그러면서 당시 제주도는 인근 밭을 주민들로부터 헐값에 사들이게 되는데요. 문화재와 자연유산 보호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현재 이 문화재 구역에서는 밭농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때 울며 겨자 먹기로 밭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소위 말해 공권력에 밭을 빼앗기다시피 내놓은 월정리 주민 분들은 이때부터 ‘밭일’이라는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윤 : 그렇다면 밭을 매각해야 했던 당시, 주민 반발은 없었나요?

김 : 주민 분들에게 그 부분을 여쭤보니, 물론 싫었지만. 그래도 참았다고 해요. 왜냐면 월정리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마을로 지정이 됐거든요. 세계자연유산 마을에 산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밭을 빼앗겨도 문화재 보호라는 공익을 위해, 자부심으로 견뎠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죠. 세계자연유산이자 국가지정문화재인 용천동물, 당처물동굴 바로 옆에 하수처리장이 있고, 이를 또 증설하겠다는 사업 내용을 더 이상 용답할 수 없다는 것이 주민 분들의 입장입니다.

윤 : 이는 사업을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 ‘마을 지키기’와도 연결이 되겠군요.

김 : 네, 맞아요. 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이 진행되면 당연히 지반이 흔들리는 대규모 공사가 시행될 테고. 이렇게 되면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 예상됩니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이를 위한 조처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공사를 시행하려 하고 있고요. 이 때문에 주민들은 사업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윤 : 세계자연유산 훼손을 우려하는 마음, 마을의 자연을 보전하려는 마음에서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 부분도 이해가 되네요. 그렇다면 마지막 이유, ‘제주도에 대한 불신’ 이야기를 들어보죠.

김 : 오랜 세월 켜켜히 쌓인 불신인데요.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 마을이라는 키워드로 월정리를 홍보해 왔고, 덕분에 엄청나게 큰 축제도 유치하게 됐거든요. 세계자연유산축전이라고 해서 정부가 주도하는 매우 큰 축제예요.

그런데 막상 다른 쪽에선 자연을 훼손시키는 하수처리장을 방치해왔고, 심지어 증설 공사를 시행하려는 점을 보면, 제주도정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주민분들 의견이고요.

더 큰 문제는 동부하수처리장 건설 과정과 증설 과정에서 월정리 민의 동의 절차가 공개적으로 없었다는 것이 문젭니다. 주민 동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물밑에서 사업을 진행해버린 제주도의 전적을 보면서 주민들은 제주도를 믿을 수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윤 : 이처럼 주민 분들은 강경한 사업 반대 입장을 밝히고 계신데. 현실적으로 증설사업 외 대안이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제주에서 발생하는 하수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이를 어디에선가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김 : 그 부분은 제주도가 고민해야 할 문제겠지만. 일단 주민 분들은 각 지역에서 나온 하수는 그 지역에서 처리하자 말하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하수처리 부담을 과하게 부담시키지 말고, 소규모로 각자 처리하자는 건데요.

이 주장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한국환경연구원이나 관련 기관에서 이런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고. 하수처리장 방류수를 재이용하는 독일이나 미국 사례도 존재합니다. 이런 선진사례를 조사해서 제주의 전체적인 하수처리와 상수이용 현황을 점검하고, 미래를 재설계하는 방식도 고려할 때가 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하수발생량이 늘어났다고 땜질식으로 그때마다 기존의 하수처리장을 증설하는 것에도 한계는 있을 테니까요.

윤 : 끝으로 취재를 하시면서 느꼈던 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해주시죠.

김 : 우리는 일상에서 정말 많은 사회문제를 접하게 되는데. 이런 지역 찬반갈등, 민관갈등과 같은 흑백논리의 프레임에 갇혀서. 정작 중요한 가치가 잘 알려지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더라고요. 물론 언론이 모든 사회현상과 도민을 대변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한데요.

이런 언론의 한계를 인지하고, 청취자 분들께서도 언론 기사 접하실 때는 ‘이 갈등’의 프레임 뒤에 숨은 이야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당 지역민들은 과연 왜 이런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위를 하고, 목소리를 내는 걸까. 이런 부분 한 번쯤 궁금해 하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 : 그렇군요. 오늘 소식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