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11월 4일(수) [오늘의시선] 제주의 대중음악(현택훈 시인)
지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으로 찾아옵니다. 오늘은 현택훈 시인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현 : 안녕하세요. 현택훈입니다.
지 : 오랜만에 뵙게 되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바쁘게 사는 것이 시 쓰기에 도움이 되나요? 아니면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시가 잘 써질까요?
현 : 아, 네, 아마도 적당히 바빠야 좋은 것 같습니다. 너무 한가하면 오히려 집중이 안 되는 면도 있고요. 또 너무 바쁘면 정말 시 쓸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지 : 네. 오늘은 어떤 얘기는 나눠볼까요?
현 : 오늘의 시선에서 주로 문학계 쪽 이야기를 해 왔는데, 이번엔 대중음악입니다. 그리고 ‘제주의 대중음악’이라는 말이 성립될까, 하는 점도 있거든요. 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요. 저도 음악을 좋아합니다. 시에 운율이 있듯 시에는 음악성이 있고요. 제 첫 번째 시집 제목이 ‘지구 레코드’이고 제가 음악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제주의 대중음악’에 대해 살펴보게 된 건 어떤 한 글귀 때문인데요. 제주의 대중음악을 거론하면서 ‘제주도는 대중음악의 불모지다’라는 말을 보고, 과연 제주도는 대중음악의 불모지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살펴보게 됐습니다. 근데,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제주도는 대중음악의 불모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의 불모지는 없는 것 같아요. 어디에나 악조건 속에서도 예술,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이번에 살펴보면서 새삼 들었습니다.
지 : 그럴 수 있겠네요. 우리가 쉽게 ‘무엇의 불모지’ 이런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 이제 함부로 그렇게 규정지어서는 안 되겠군요. 그래도 아무래도 이 대중음악, 그러니까 이 ‘가요’는 워낙에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무래도 제주 출신의 음악이나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이야기를 주를 이루겠군요.
현 :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주 출신의 가수,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노래, 최근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로컬 뮤지션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근대대중음악이 시작된 시기가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에도 제주도에 대한 노래가 만들어졌는데요. 아마도 일본의 억압에 짓눌린 사람들이 ‘제주’라는 가기 어려운 장소를 그리워하는 것을 통해 나라 잃은 슬픔을 노스탤지어로 위로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고향을 떠난 슬픔으로 위무하며 지역의 명소나 잘 알려지지 않은 지명의 사연이 노래로 만들어졌는데요. 1934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애향가’ 가사 공모전에 당선된 노래가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노래 <목포의 눈물>입니다. 그 영향으로 보이는데요. 1937년 발표된 노래 <서귀포 칠십리>.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노래는 장세정, 남인수 등이 불렀습니다. 오케이레코드사의 이철 사장과 함께 제주를 다녀간 조명암은 서귀포의 풍광을 노랫말로 만들었는데요.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노래 <서귀포 칠십리>는 일제강점기에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각광을 받았습니다. 남인수는 한국전쟁 당시 모슬포에 있던 제1훈련소에서 군예대 소속으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 : 아, 그렇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군요. 그럼 이 일제강점기에는 제주 출신 가수가 있었나요?
현 : 네. 있습니다. 바로 가수 백난아입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기억하실 텐데요. 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의 이 노래 백난아뿐만 아니라 여러 가수가 불러서 유명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94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 잃은 슬픔을 고향 잃은 슬픔으로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식민지 하의 노래가 곧 타향살이의 노래인 겁니다.
지 : 그러고 보니 해마다 한림 명월에서 백난아 가요제가 열리네요.
현 : 네. 가수 백난아는 1922년 제주도 한림읍 명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오금숙인데 선배가수 백년설에 의해 ‘백난아’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습니다. 1940년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을 하면서 대평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 데뷔했는데요. 그후 럭키레코드, 서러벌레코드 등에서 〈오동동 극단〉, 〈갈매기 쌍쌍〉, 〈망향초 사랑〉, 〈땅버들 물버들〉, 〈도라지 낭랑〉, 〈아리랑 낭랑〉, 〈찔레꽃〉, 〈흥아의 봄〉, 〈금박댕기〉, 〈낭랑 18세〉, 〈멕시코 나이트〉, 〈고랑포 아낙네〉, <황하다방>, <무명초 항구>, <간도선>, <고향길 부모길>, <고향초 사랑> 등을 취입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파라다이스 쇼단’에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했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군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애 원로가수가 된 이후에도 KBS ‘가요무대’에 다수 출연했습니다. <나그네 설움>,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작곡가 이재호와 결혼했습니다. 백난아가 부른 노래 <낭랑 18세>는 후에 서귀포 출신의 가수 한서경이 리메이크 싱글로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 : 저는 또 제주 출신 가수하면, 가수 혜은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혜은이를 빼놓을 수 없죠?
현 : 가수 혜은이는 ‘낙랑쇼’ 단장이자 변사이자 영어 교사였던 김성택의 장녀로 제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촌 동생은 음악 그룹 ‘서울 패밀리’의 보컬리스트 김승미입니다. 1975년 <당신을 모르실 거야>로 데뷔해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등이 연이어 히트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활동했으며, <제3한강교>를 통해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고요. TBC 여자인기가수상,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최고 인기가수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열정>, <감수광>, <뛰뛰빵빵>, <독백>, <비가>, <파란 나라> 등의 히트곡이 있습니다.
지 : 그렇다면 제주를 배경으로 한 노래들도 있잖아요. 들국화의 멤버였던 최성원의 노래 ‘제주도의 푸른 밤’도 생각이 나네요.
현 : 최성원 1988년 1집 음반에 수록된 노래 중 한 곡이 ‘제주도의 푸른 밤’인데요. 실제로 가수 최성원은 노랫말 따라 제주도로 이주해 살기도 합니다. 근데, 그 이전에 구자룡 작사, 구자형 작곡의 한영애의 노래 <제주도>가 저는 노랫말이 인상적인데요. 1986년 발매한 한영애 1집 수록곡 <제주도> 노랫말을 보면, “종려나무 가로수길 따라 걷다가/ 불어오는 바닷바람 흠뻑 취하면/ 나도 몰래 발걸음은 해변을 가네/ 왠지 모를 서러움이 고개를 들면/ 밤바다엔 고깃배들이 등불을 켰네” 노랫말이 제주도에 내재된 슬픔을 그리고 있는데요. 멜로디도 처연하고 조금 서럽게 들립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이 낭만적인 제주도를 그렸다면, 한영애의 <제주도>는 아름다운 풍경 이면의 숨은 슬픔을 그린 듯합니다.
지 : 그러면 제주 출신 가수는 또 누가 있나요?
현 : 가수 은희가 있습니다. 은희는 모슬포에서 태어나 제주여고를 다니다 서울예고로 전학해 가수의 꿈을 키웠는데요. 1971년 ‘라나에로스포’의 노래 <사랑해>로 데뷔한 은희는 그랜드레코드사를 통해 <꽃반지 끼고>를 발표하며 1970년대 통기타 문화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이 음반은 당시 7만 장 이상 팔리는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1972년 평양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이 함께 부른 노래가 ‘사랑해’였습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오" 그 노래요.^^ 그런데, 몇 년 전 남북정상회담 때는 제주소년 오연준의 목소리로 <고향의 봄>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인연이라면 인연입니다. 그리고 또, 신계행이라는 가수 혹시 아시나요? 제주여상을 졸업한 신계행은 1985년 데뷔했습니다. <안개 걷히는 날>, <가을사랑>, <사랑 그리고 이별> 등의 히트곡을 냈습니다. 통기타 문화와 언더그라운드 포크 음악의 흐름 위에서 어쿠스틱 포크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지 : 찾아보니 꽤 있네요. 그러고 보니 가수 진시몬도 제주 출신이죠?
현 : 네. 맞습니다. 제주의 대학생들 역시 1970년대, 1980년대 당시 가수 등용문이었던 대학가요제를 통해 가수로의 진출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를 대상을 받던 1988년 <무지개 마을을 찾아서>로 은상을 받은 김성철은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을 모색했지만 단발에 그쳤습니다. 진시몬은 제주대학교 재학 시절 1989년에 <캠퍼스에도 외로움이>로 강변가요제를 통해 데뷔했는데요. 이때 대상은 이상은의 노래 <담다디>였습니다^^ 진시몬은 <낯설음 아쉬움>, <바다를 사랑한 소년> 등 발라드 가수로 활동하다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김범룡을 만나 트로트로 전향해 <애수>, <둠바둠바>, <하얀 면사포>, <남자이니까>, <보약같은 친구> 등의 히트곡을 내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 : 네. 정말 제주를 대중음악의 불모지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향이 제주일 뿐이지 제주에서, 이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모습은 거의 최근에 일로 보여지는데요.
현 : 네. 로컬 시대를 맞이해서 제주도에서 인디음악 활동을 하는 뮤지션들이 등장을 했는데요. 1950년대, 1960년대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다방을 중심으로 한 음악 감상 문화는 대중음악에 대한 정서를 잘 보여주는 면입니다. 그리고 레코드가게들이 1980년대, 1990년대에 시내 곳곳에 있었고요. 1964년 제주시민회관이 건립되었지만, 여전히 제주는 대중음악의 물적 기반이 매우 약했던 건 사실입니다. 지리적인 위치와 중앙 중심의 문화 흐름에서 제주의 대중음악은 성립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아리랑레코드는 위치를 몇 번 바꾸긴 했지만 40년 동안 문을 열었던 레코드가게입니다. 서귀포시에는 예음사라는 레코드가게 있는데 지금은 주인 없이 공간만 유지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운 점입니다.
지 : 그러니까 제주도에도 이른바 인디음악이라 불리는 뮤지션들이 있는 거죠?
현 : 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디 음악이라 불리게 되는데 제주도 대중음악계에는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한 인디씬이 형성되었습니다. ‘재주소년’은 도내 대학교로 진학을 온 유상봉, 박경환이 결성한 모던포크 듀오인데요. 2003년 데뷔해 <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손잡고 허밍>, <이분단 셋째 줄>, <명륜동> 등의 노래로 감성적 포크의 마니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봄비가 내리는 제주시청 어느 모퉁이의 자취방에서…>를 들어보면 이들의 감성이 제주 청년의 모습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20년, 올해엔 <혜은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요. 가수 ‘혜은이’에 대한 헌사인데, 제주에 대한 애정을 거듭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인디음악의 강력한 장르인 모던 포크의 자장은 제주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데요, 1987년생인 강아솔은 2012년 핑크문 레이블에서 1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4년 전 5월 그때의 우리>는 차분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인디씬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년 뒤 2집 <정직한 마음>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강아솔은 2019년에 <우리의 만춘>이라는 음반에 참여해 음악과 지역의 책방이 연대하는 모델을 보여줬습니다. <그 겨울, 평대리>라는 노래로 지역의 지명을 더욱 세분화하는 점에 성공한 부진철은 ‘Boo’, ‘섬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제주의 감성을 노래해왔습니다.
지 : 사우스 카니발, 스테이플러 등 밴드들도 있잖아요.
현 : 네. 제주 탑동 해변공연장에서 여름마다 메탈리카 트리뷰트 공연이 열릴 정도로 제주는 록 마니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스테이플러’는 김신익(보컬), 유현상(기타), 김연희(키보드), 박수현(베이스), 최지호(드럼)로 이뤄진 5인조 모던 록 밴드입니다. 2017년 <어린 왕자>, <시린 계절> 등의 노래가 수록된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했습니다. 김신익은 솔로로도 활동을 하는데, ‘동춘하추’를 타이틀로 계절마다 노래 <눈 내리던 겨울은 아직 슬픔이 남아있어>, <또 다시 봄>, <아주 뜨거웠던 여름 우리 사랑>, <추색(秋色)>을 발표했습니다. 서정적이면서도 비트가 있는 음악을 보여 줍니다. 또 ‘어쩌다 밴드’는 김경수(보컬), 한정용(기타), 이승훈(기타), 이희정(베이스), 이진우(드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록 발라드의 노래를 부릅니다. <숨이 차올라>, <덤덤히>, <고백>, <흘러다니네> 등의 노래가 있습니다.
지 : 제가 알기로는 그 ‘장기하와 얼굴들’의 레이블을 만든 사람이 제주 출신의 고건혁 대표라고 알고 있는데요. 맞죠?
현 : 네. 맞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뿐만 아니라 ‘브로콜리 너마저’, ‘아마도이자람밴드’, ‘9와 숫자들’, ‘새소년’ ‘코스모스 사운드’ 등 유명한 인디밴드들이 거쳐 간 붕가붕가레코드에서 기획을 맡은 사람이 고건혁인데요. 고건혁은 고교 시절 ‘크라잉 넛’의 공연을 보고 한눈에 반해 기타를 잡았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음반 기획으로 방향을 바꿔 한국 인디음악씬을 주도했습니다. 한편, 그의 기획으로 제주에서는 ‘젯 페스트(제주 익스피리언스 투어 앤드 페스티벌)’가 열려 시내 작은 공간에서 ‘언니네 이발관’, ‘해리 빅 버튼’, ‘내귀에 도청장치’ 등이 공연한 적도 잇습니다. 이 공연은 숙박이나 캠핑과 결합한 상품으로 제주에서 시도해볼 만한 프로그램입니다. 2011년부터는 해마다 함덕 해수욕장에서 ‘스테핑 스톤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하는 제주인데요. 제주 출신 음악인으로는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와 음반기획자 부세현도 있습니다. 부세현은 ‘부스뮤직컴퍼니’를 만들어 제주의 정체성 있는 인디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그는 조상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주로 헤비메틀 밴드 음반의 사운드 엔지니어 조상현도 제주 출신입니다.
지 : 그렇군요. 그럼 이 제주의 지역성, 특수성, 이러한 정체성을 발휘하는 뮤지션들은 어떻게 활동을 하고 있을까요?
현 : 제주를 노래하는 뮤지션이라면, 우선 제주어 노래를 하는 가수로 양정원, ‘뚜럼 브라더스’ 박순동, ‘사우스 카니발’을 들 수 있습니다. 양정원은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하늘의 황금마차>, <어이그 저 귓것>, <뽕똘>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음악 활동을 해왔다. <삼춘>, <독광 주냉이추룩 살지맙써> 등의 제주어 노래가 있습니다. 첼리스트 지윤과 함께 ‘뚜럼 브라더스’로 활동하는 박순동은 제주 지역 방송 활동을 하면서 여러 장의 제주어 음반을 냈습니다. <제주어 배워보카>, <제주의 자연을 노래하다>, <마흔애도(제주의 섬을 노래하다)> 등의 음반을 통해 <웃당보민>, <빙떡>, <고치글라>, <돌담에도 트멍이 이서사>, <해녀삼춘 블루스>, <먹엄직이 살암직이>, <보말국>, <제비>, <제주도 락엔롤> 등의 노래로 제주어의 가치를 알렸습니다. 한편 박순동 작사, 작곡의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불러 제주어를 알린 경우도 있는데요. 손지연의 <감귤송>, 와비(비니모터)의 <쉰다리>, 조성일의 <꿩엿>, ‘사우스 카니발’의 <바당이 나꺼여>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사우스 카니발’은 라틴 음악으로 바탕으로 남국의 정서와 제주어 노랫말을 혼합해 제주어 로컬 밴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집 <사우스 카니발>, 2집 <동네심방> 등의 앨범을 통해 <몬딱 도르라>, <혼저 옵서예>, <어멍>, <노꼬메오름>, <Take Off> 등의 노래가 있습니다. 특히 ‘사우스 카니발’은 제주어 밴드로 월드 뮤직을 펼칠 수 있는 선례를 남긴 의의가 있습니다.
지 : 네. 오늘 정말 음악으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드네요. 어느 곳이든 찾아보면, 나름대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제주도 속담에 ‘동네심방 안 알아준다’는 말처럼 지역 사람의 소중함을 잊곤 하는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좋은 활동을 보여주는 제주의 뮤지션들의 노래를 더 많이 들어봐야겠습니다.
현 : 네. 맞습니다. 좀 있으면, 서귀포에 제주음악창작소가 곧 문을 열게 되는데요. 이 공간을 제대로 활용해서 제주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 좋은 공간으로 활용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 : 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현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