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 신청곡
막내딸의 지극히 평범한 소망
“나도 집안에서 하는 쉬운 일을 벗어나, 집밖에서 하는 어려운 일을 하고 싶다.”
며칠 전, 막내딸의 톡 방에서 읽은 문장이었습니다.
읽는 순간 왼쪽 갈비뼈 근처에서 서늘한 기운이 훅 하고 올라왔습니다.
어리석은 엄마는 딸이 졸업만 하면 걱정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어떤 일을 선택해도 기꺼이 밀어주고 응원해 주리라는 생각만 했었지요.
막내는 그렇게 남들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일도 맡겨만 주면 다 할 준비가 되었는데 그마저도 없는 현실이 견디기 힘든 모양입니다.
전공을 살려 나름 공모전에 응모하려고 밤새 책을 읽고 스토리텔링을 쓰며 자신만만하게 지내던 작년과는 사뭇 달라 보이긴 했지요. 그러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작년 3월, 한껏 기대했던 대학 졸업식이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고 졸업장만 받아오던 날, 섭섭하다 면서도 웃고 떠들며 씩씩했었는데 말이죠.
혹시나 하며 지인에게 계약직 일이라도 부탁해 볼까 하는 말에 아예 그런 부담스런 일자리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며 거부합니다.
요 며칠은 대학시절 연극부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제주 모 영상제작소에서 만드는 노인 안전 캠페인 홍보영상 촬영에 노인 대역으로 알바를 다닙니다. 눈보라 속을 뚫고 아침 일찍 대문을 나서는 막내를 보며 자신이 걷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엄마는 뒤에서 소리 없는 응원만 보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 유행병이 만연한 뒤엔 시장경제가 활발히 살아나고 호황을 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사태 뒤에도 그 논리가 적확하게 들어맞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그리하여 나라 안 수많은 아들딸들이 여기저기서 일하러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각자 소질과 능력에 맞는 직장을 마음 놓고 선택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이러한 우리 집 막내 현지가 오는 1월 8일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현지는 BTS 광팬입니다. 혹 이글이 소개된다면 방탄의 ‘봄날’을 축하음악으로 받고 싶답니다.
2021.1.4. 용담1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