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5월 11일(월) [로스쿨] 우리나라 최초의 임신중 업무에 대한 대법원의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 판결(김혜선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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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 매주 월요일에 만나는 시간. 생활밀착형 라디오 법률서비스 <로스쿨>!
김혜선 노무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 네. 안녕하세요. 김혜선 노무사입니다.
윤 :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김 : 지난 4월 29일이죠. 언론을 통해 이미 몇 차례 소개되었기 때문에 아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을 텐데요.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관계없이 여성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고 나아가 이미 건강이 손상된 태아가 출산으로 모체와 분리되었다 해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의 수급관계 그러니까 ‘업무상 재해’가 부정되지 않는다는 최초의 판례가 나왔습니다.
윤 : 우리나라 최초의 판례라고요. 그런데 이 사건이 제주지역 사건이었잖아요?
김 : 네. 맞습니다. 무려 10년이 된 사건인데요. 제주의료원 집단 산재사건입니다.
윤 : 저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시던 간호사분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유독 유산이나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이 높았던 문제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천막농성도 하면서 역학조사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김 : 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제주의료원에서 근무를 했던 간호사 중 임신을 했던 간호사는 15명이었는데요. 그 중 6명만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고요. 4명의 간호사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하고 5명의 간호사는 유산을 하게 됩니다.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이 일반인구에 비해 14.6배가 높았던 부분에서 문제를 감지한 노동자들은 간호사의 근로여건, 작업환경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2010년 제주도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런 과정 속에서 2011년 노사합의를 통해 서울대학교를 통해 역학조사를 실시하게 됩니다.
윤 : 그럼, 역학조사에서 확인된 결과는 무엇인가요?
김 : 역학조사에서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 신규약품이 도입되어 사용이 되었는데 몇몇 유해 약품의 사용량이 늘어났고 특히 중증질환자나 고령환자가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경우 간호사가 막자에 알약을 빻아서 복용하도록 도왔는데 이 과정에서 임신한 간호사들이 그대로 생식독성 의약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윤 : 생식독성이란 뭔가요?
김 : 생식독성이란 인체의 생식기능 및 생식능력에 대한 유해영향을 일으키거나 태아의 발생, 발육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성질을 의미하는데요. 당시 간호사들이 노출된 독성물질의 위험성은 매우 높은 것이었으나 이를 위한 의료원의 예방활동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전에 관련 성분과 취급에 대한 안전교육도 없었고요.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임산부에 영향을 미치는 의약품을 5개 등급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가장 독성이 심한 등급을 X등급으로 분류합니다. X등급은 인체와 동물 모두에게서 태아의 기형이 증명된 약물인데요.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분쇄하던 약품 중에는 X등급이 17종, 그 바로 전단계인 D등급이 37종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윤 :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역학조사에서 이렇게 확인되었는데 산업재해로 인정이 되기까지 10년이나 걸린 이유가 뭔가요?
김 : 우선 다행인 것은 제주의료원의 이런 문제제기 후인 2011년 간호사들의 약품분쇄작업이 폐지되었다는 것인데요. 이후 간호사들의 유산이나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사례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전의 사례가 유해약품이 태아에 사실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죠. 사실 그 외에도 병원 내 간호사의 인력부족 문제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 등도 상당한 직무스트레스에 해당합니다. 2012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신청을 하게 되죠. 2014년 근로복지공단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 중 유산을 한 5명에 대해서만 산업재해를 승인하고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에 대해서는 산업재해를 불승인하는 판단을 합니다.
윤 : 언듯 납득이 되지 않는데요? 동일한 사안으로 동일하게 신청을 했는데 유산을 한 경우는 산업재해가 인정이 되고 출산을 한 경우는 인정이 안 되었다는 말씀이신 거네요?
김 : 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이하 ‘산재법’)상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 질병, 장해, 사망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출산아 그러니까 간호사들의 태어난 자녀들은 산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을 했습니다.
윤 : 그럼 유산을 한 경우는요?
김 : 우리 법은 개별 법률에서 예외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지 않는 한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습니다. 즉, 산재법에서도 태아는 원칙적으로 모체와 ‘한 몸’ 즉 단일체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도 유산의 경우는 여성노동자 본인의 신체의 손상으로 보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윤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임신 중 동일한 원인으로 유산이 되거나 태아에게 질환이 발생한 것인데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이 너무 이상한데요. 법원은 어떻게 판단을 했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1심 재판부는 산업재해로 인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김 : 네. 1심 재판부는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을 당시에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고 발병 당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의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는 노동자 측 주장을 받아들여 산업재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반대의 판단을 했습니다.
윤 : 근거는 뭔가요?
김 : 2심 재판부의 판단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요. 첫 번째는 아무리 임신 중 작업환경의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는 자녀를 출산했어도 출산을 한 순간 해당 질병은 출산을 한 자녀 즉,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업무상 질병이라 할 수 없어 근로자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두 번째는 만약 출산아들의 선천성 질병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하더라도 별도의 인격체인 간호사들 즉 근로자들을 출산아들의 선천성 질병 관련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윤 : 대법원은 우선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즉, 2심 재판부의 입장과는 반대되는 입장 그러니까 산업재해가 인정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인데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김 : 우선 대법원은 산재법의 기본이념이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와 그 가족의 헌법 상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 있고 간접적으로 노동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또, 업무상 재해를 판단함에 있어 산재보험제도와 요양급여제도의 취지,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위해 모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신, 출산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전재 하에 산재법 해석상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 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 손상’의 정도에 따라 업무상 재해의 인정여부를 달리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근로복지공단이 구분해서 판단한 유산과 출산아의 선천적 질환을 구분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윤 : 마지막 부분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김 : 대법원은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손상을 모체 즉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면서 그 태아의 건강손상의 정도에 따라 업무상 재해의 인정여부를 구별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손상이라 볼 수 있는 유산의 경우와 일부 손상이라 볼 수 있는 선천성 질병, 장애아 출산을 구별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본 것이지요. 나아가 유산이 다른 태아의 건강손상보다 무조건 우선적 보호가 필요한 중한 결과라 볼 수도 없으며 여성근로자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측면에서 보면 후자(장애아 출산)가 훨씬 중한 결과를 야기할 것임이 분명하고 정신적 고통에는 개인차가 크지만 후자의 경우 출산 이후에 장기적, 지속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므로 정신적 고통 측면에서도 전자보다 후자가 덜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모성과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측면에서 업무상 재해의 인정여부를 달리하는 것은 부당하다 판단하였습니다.
윤 : 뭔가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면서도 굉장히 기분 좋은 판결이네요.
김 : 저도 판결문을 읽으면서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굉장히 당연한 내용인데도 한 단계 나아간 느낌도 들고요. 나아가 대법원은 이렇게 법을 해석함으로써 산업재해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지 않고 공적보험을 통해 분담하는 것이 산재보험제도 목적에 충실한 해석이라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윤 : 2심 판결에 두 번째 기각 사유에 대해서는 뭐라고 판단을 했나요?
김 : 산재법 상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해서 보험급여 수급과 관련한 기초적 법률관계가 성립한 이상 근로자가 그 후 근로자의 지위를 상실해도 보험관계의 수급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태아의 건강손상으로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여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성립된 것이라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고 있던 태아가 분리 즉, 출산하여 독립체인 출산아가 되었다고 해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출산 이후 요양급여 청구서를 누구의 명의로 작성하여 제출할 것인지는 법 기술적인 제도 운용의 문제일 뿐이지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 제공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는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윤 : 이것도 당연하고 합리적인 판단인 것 같네요.
김 : 그러면서 대법원은 다시 한 번 2심 판결에 대해 산재법 상 업무상 재해 개념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 여성 근로자의 임신 중 태아의 건강손상에 관해 여성 근로자의 요양급여 수급권을 인정하다가 출산 이후 모체와 태아가 분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출산아의 선천성 건강손상에 관해 수급권을 부정하는 것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는 산재법의 입법목적에도 위배된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34조 제2항, 제6항에 의한 생존권적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헌법 제32조 제4항에 의한 여자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차별금지, 헌법 제36조 제2항에 의한 모성보호의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해석이라고 하면서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기 위해 원심 법원으로 파기 환송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윤 : 정말 당연한 판단이라고 생각되는데요, 10년이라는 시간이나 걸렸어요.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해주실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김 : 이 판결은 모체에서 분리된 그러니까 출산아의 선천선 질병도 원고 그러니까 모체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본 최초의 사례로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대법원 판결은 끝까지 이 소송을 붙잡고 싸워주신 제주의료원 4명의 노동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 버텨주신 덕분에 이런 좋은 내용을 소개시켜드릴 수 있게되어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항소심에 계류 중일 때부터 태아의 산재를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산재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올라왔었으나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부 역시 태아의 산재를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사실 태아의 산재 문제는 여성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남성 노동자를 통해서 태아에게 선천성 질환으로 발현되는 문제들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런 부분들에 대한 문제들도 고려하면서 법,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윤 : 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