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2월 24일(월) [로스쿨] 국가배상 청구권과 소멸시효의 의미와 적용범위(최호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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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매주 월요일에 만나는 시간. 생활밀착형 라디오 법률서비스 <로스쿨>!
오늘은 최호웅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최> 네. 안녕하세요. 최호웅 변호사입니다.
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까요.
최> 오늘은 국가배상 청구권과 소멸시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하는데요.
윤> 소멸시효라고 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최> 네. 그렇습니다.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람은 법이 보호하지 않겠다고 해서 소멸시효 제도가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소멸시효 제도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윤> 소멸시효라는 것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종류가 다양하게 있다고 하던데 맞나요?
최>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고, 채권 및 소유권이외의 재산권의 소멸시효는 20년입니다. 우리가 누구한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면 대여금 채권이 발생하는데 돈을 빌려주고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하기 때문에 돌려달라는 청구를 해도 재판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공사대금 채권, 생산물 및 상품의 대가 채권은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고 숙박료, 음식료, 교육비 등은 1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윤> 서두에 국가배상청구권과 소멸시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하셨는데 국가배상청구를 하는 경우에도 소멸시효가 적용이 되는 것인가요.
최> 그렇습니다. “국가배상법”은 시효소멸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 법원 역시 국가권력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도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결해 왔습니다.
윤> 국가배상청구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에도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요.
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법원에서도 국가배상청구 사건에서 소멸시효가 적용되기는 하지만 인권을 유린한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시효 항변을 만연히 허용하면 정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하면서 일정한 경우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이라는 이유로 배척해 왔습니다.
윤>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이라는 이유로 배척한 것이군요. 일정한 경우는 어떠한 경우를 말하는 것인가요.
최> 법원이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는 유형으로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① 가해자가 피해자의권리 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했거나 피해자로 하여금 권리행사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경우, ② 객관적으로 피해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던 경우, ③ 일단 시효 완성 후에 가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여 피해자가 이를 신뢰한 경우, ④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피해자가 피해 배상을 받는 등 배상 거절을 인정하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입니다.
윤> 위 4가지 유형에 해당한다면 소멸시효가 설사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군요.
최> 그렇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간첩 조작 사건에서 ② 또는 ④ 유형을 이유로 시효 완성의 항변을 허용하지 않았는데요. 고문과 조작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국가배상을 행사할 수 있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보았고, 국민의 인권을 유린한 국가가 피해 배상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흘렀어도 국가는 시효 항변을 하지 못하고 피해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시해 온 것입니다.
윤> 그런데 대법원의 판단이 바뀌게 되었었다고요?
최> 네. 영화 ‘7번방의 기적’ 실제 주인공인 정원섭씨 사건을 통해서 법원 판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윤> ‘7번방의 기적’이라면 파출소장 딸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남자 이야기가 맞지요?
최>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1972년에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의 한 논둑에서 춘천 경찰서 소속 경찰 간부의 딸이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경찰은 가짜 범인으로 정원섭을 지목했습니다. 정원섭은 아이를 본 적 없다고 사실대로 대답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정원섭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증거를 정원섭에게 끼워 맞췄던 것입니다. 현장에서 혈흔과 음모가 발견됐지만 당시에는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정원섭은 고문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사흘 만에 허위 자백을 했고 결국 강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받게 됐습니다.
윤> 검사나 판사도 고문과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 자백을 알아채지 못했나 보군요.
최> 네. 검사는 범행 입증에 반대되는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한 참고인 3명을 위증죄로 구속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정원섭은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고 법원에서 초지일관 말했지만 법원도 정원섭의 호소를 묵살했습니다.
윤> 시간이 지나고 억울함이 풀어졌나요?
최> 정원섭은 감옥에 들어간 지 15년 2개월 7일 만인 1987년 12월 24일 모범수로 인정받아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이 되었는데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7년 11월이 되어서야 정원섭의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후 정원섭은 재심을 신청했고 2011년 10월 드디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윤> 15년이 넘는 세월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 결국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최> 네. 그후 형사보상금을 지급받기까지는 모든 것이 순탄했습니다. 형사보상금은 형사재판 절차에서 억울하게 구금 또는 형의 집행을 받거나 재판을 받느라 비용을 지출한 사람에 대해서 국가가 그 손해를 보상해 주는 제도를 말하는데요. 2012년 5월 18일 법원은 정원섭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9억 6000여만 원 보상을 결정했습니다. 형사보상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형을 산 사람에게 무죄판결과 구금 일수만 확인되면 국가가 당연히 지급하는 금액입니다. 이와 별개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배상받으려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따로 제기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국가배상청구입니다.
윤> 국가배상청구는 민사소송이고 당사자가 손해에 대해서 입증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맞나요?
최> 그렇습니다. 손해배상은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불법행위를 범해 생긴 손해에 대해 받는 배상이기 때문에 입증 과정이 좀 복잡합니다. 투옥되지 않았으면 내가 벌었을 수 있는 돈, 물리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대가 등을 직접 자료를 통해 입증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국가배상 청구는 자료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소송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윤> 그렇군요. 정원섭씨의 국가배상청구가 인정이 되지 않았나요?
최> 다행히 1심에서는 정원섭씨의 청구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정원섭의 가족 6명에게 총 26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주었는데요. 문제는 항소심 판결이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모두 기각한다.”라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형사보상 결정을 확정 받은 날짜는 2012년 5월 18일이었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날짜는 2012년 11월 28일이었는데 딱 ‘열흘’ 차이로 배상금을 받을 자격을 상실했다고 법원은 판단한 것입니다.
윤>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이라는 기준은 어디에 나와 있는 것인가요?
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법원에서 모두 인정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결문 어디에도 ‘왜 3년이 6개월로 줄어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국회에서 법을 바꾼 것도 아니었습니다. 난데없이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가 3년에서 6개월로 줄어든 것입니다.
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를 6개월로 줄이지는 않았을 텐데요.
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농단 재판 과정에서 전모가 드러났는데요.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해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을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추진하고자 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배상을 제한하여 국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청와대에 어필한 것입니다.
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있었던 일이었군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보도를 접했었는데 구체적으로 이렇게 억울한 사람들의 국가배상 청구를 막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최> 다행히도 박근혜 정권이 막을 내리자,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법원의 이 같은 시효 적용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규정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민법상 단기 소멸시효 3년보다 짧은 6개월을 국가배상 청구권 행사 기간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하면서 위헌 결정을 내려준 것입니다.
윤> 그렇다면 정원섭씨도 다시 재판을 해서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인가요.
최> 정말 안타깝게도 정원섭씨는 재심을 신청할 자격이 없습니다. 민법 조항의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한 당사자에게만 적용이 되기 때문에 정원섭씨처럼 위헌법률심판 청구를 하지 않고 재판이 확정되어 버린 분들 같은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윤> 이야기를 들을수록 정말 안타깝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최> 그렇습니다. 정원섭씨는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서 그 후 치매진단을 받고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정원섭씨의 가족들은 정원섭씨와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고도 반성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서운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 최근 뉴스를 보니 긴급조치 위반 손해배상 사건에서 소멸시효 6개월이 아닌 3년을 인정했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하던데?
최> 그렇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32부는 김아무개씨 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가 2억8천만 원을 김씨 쪽에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김씨는 대학생이던 1975년 영장 없이 체포 구금돼 그해 6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됐다고 하는데요.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간행물을 제작해 ‘유언비어를 날조했다’는 혐의를 적용받았고, 경찰의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듬해 5월 징역 10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고, 석방까지 329일 동안 구금이 됐었다고 하네요.
윤> 1심 재판부에서는 6개월 소멸시효를 적용했다고 하는데?
최> 그렇습니다. 1심 재판부는 김 씨가 위자료를 청구한 시점이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뒤집고 김 씨의 배상 청구는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과거사정리법에 규정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속해, 피해자가 무죄판결 확정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배상을 청구하면 소멸시효 기간을 지킨 것으로 볼 수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윤> 헌법재판소에서 6개월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는데도 하급심 법원에서 여전히 6개월 소멸시효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의아하네요.
최> 네. 아무래도 하급심 법원에서는 대법원 판례가 명시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긴급조치 피해 사건 등의 손해배상과 관련해 2013년 대법원 판례인 6개월 시효를 인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이번 항소심 판단으로 3년 시효 적용이 하급심에서도 확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윤> 제주도도 과거사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일 텐데요. 제주도에서도 소멸시효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나요.
최> 네. 제가 직접 담당했던 사건들이기 때문에 소개를 해드리고 당사자분들에게 사과도 드리고 싶습니다.
윤> 사과를 드린다니요. 어떤 사건을 맡으셨던 건가요?
최> 이 사건들은 제가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담당했던 것은 아니고요. 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 담당했던 사건들입니다. 제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제주방어사령부에서 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했었는데 그때 국가소송의 소송수행자로 지정되어 국가를 대변하는 변호사 역할을 했었습니다. 당시 제주 예비검속 희생자 및 유가족들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제가 오늘 언급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6개월 소멸시효 판례가 이때 정립이 되었습니다. 저는 국가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고 과거사 사건들 중 6개월 이후에 소송이 제기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항변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6개월 소멸시효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서 소송수행을 하고 있는 법무관들에게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면서 소멸시효 항변을 하라는 공문이 하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윤> 국가의 소송수행자로서 대법원 판례에 따라 6개월 소멸시효 주장을 하셨던 것이군요.
최> 네. 당시에 저도 그 대법원 판례를 꼼꼼하게 읽어봤었는데 왜 6개월이어야 하는지 명확한 언급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당시 제가 진행해야 했던 과거사 사건이 워낙 많았고 군대 업무를 하면서 소송 업무까지 하다보니까 깊게 생각하지는 못하고 대법원 판례대로 판결해 달라고 서면을 작성했던 것 같습니다.
윤>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최> 6개월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셨던 분들은 승소하셨고, 6개월이 지나서 소송을 제기하셨던 분들은 패소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패소하신 분들이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하셔서 구제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국가를 대리해서 소송수행을 했던 법무관으로서 패소하신 모든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및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윤> 네,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 나누겠습니다.
지금까지 최호웅 변호사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