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 신청곡
눈구경 갈챠
창에 비친 햇살이 눈부신 어느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은 후
남편이 하는 말 “눈 구경 갈챠” 이 말은 내가 이 남자를 알고 삼십 여년이 지나 시댁에서 사용하는 제주어에 익숙해지고야 편해진 언어다. 하긴 제주도가 섬이긴해도 사용하는 말도 산남과 산북이 다르고 마을마다 가정 마다 언어에도 문화가 있지만 ‘**갈챠’, ‘*해샤’…. 동서나 시누 시댁 어른들이 사용하는 제주어는 다 정겹게 들린다. 이 말을 우리 동네에서는 ‘**갈 티야’, '*해시냐’ 이렇게 늘려서 쓰는데 언어도 기후에 따라 온화한 동네 말은 엿처럼 늘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글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한글의 모태가 살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제주어가 유네스코 ‘소멸위기의언어로 등록된 것은 유네스코가 제주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무형의 문화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제주어는 제주사람들이 환경에 맞게 오래도록
사용해 온 언어이기에 제주어가 소멸된다면 제주사람들이 감정이나 정신이 퇴색될 것이며 제주는 속빈강정으로 남는 건 아닐까 심히 염려스럽다.
남편은 기분이 좋을 때면 자기 동네 사투리로 말을 걸어온다
‘눈 구경 갈챠’ 눈 구경 갈래? 당근이지.
그래서 나오는 길에 “붕어빵 먹고 싶어” 코맹맹이 소리를 냈더니 잉어 세 마리 내 손에 안겨준다. 이걸 파시는 아저씨의 말인 즉 다른 곳에서 파는 것보다 자기네 ‘황금잉어빵’이 더 맛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는데 아저씨의 자부심처럼 봉지에도 ‘황금잉어빵’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종이를 통해 전해지는 따스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칭 안전운전자라 칭하는(?) 내 보기엔 소심한 남편이 운전에 몸을 맡기고 천백도로로 가는 길. 양 옆으로 일 미터는 될 듯이 눈이 쌓이고 나무에는 어느 봄날 벚꽃이 핀 듯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다. 아 아- 탄성을 지르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차에서 내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딸에게 보내는 게 아닌가 역시‘딸 바보’다 요즘 ‘딸 바보’란 신조어가 생겼는데 이는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빠를 가리키는 말이다. 남편은 딸을 유난히 예뻐한다. 든든하게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내가 보아도 야무진 애다 제 앞길을 부모가 걱정 하지 않게 살아가는 건 물론 동생을 엄마인 나보다 더 챙기고 부모에게도 멘토 역활을 톡톡히 하기에 믿음을 잃지 않는다. 바로 딸에게서 온 문자. "아빠! 멋져요 점점 아빠 사진 찍는 실력이 좋아지고 있어요“
안전운전 하세요 아빠 파이팅!!!" 남편은 딸애의 아부성 문자에 입이 귀에 걸렸다.
천 백 도로에는 제주에 있는 차들이 다 나온 듯 주차장이 돼있다.
유난히 밝은 햇살이 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을 비추어 반짝이는 눈꽃에 눈이 부셨다.
거리로 나와 애월 부터 시작되는 해안도로로 들어서니 쪽빛 바닷물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바람도 잠시 숨을 죽이고 햇살이 웃으며 반겨준 세 시간의 드라이브는 감격의 물결이었다. 남편이 드라이브코스는 딱 여기다. 더 가면 서귀포도 넘어가지만 이 눈길을 넘어 갈 수 없는 소심한 운전자니까 내가 일찌감치 맘을 접는 게 속편하다.
여보,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말해주세요 ‘드라이브 갈챠’ 라고 친숙한 제주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