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5월 6일(수) [오늘의시선] 문학은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현상과 문제의식을 어떻게 형상화하는가?(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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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으로 찾아옵니다. 오늘은 현택훈 시인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현 : 안녕하세요. 현택훈입니다.
윤 : 네. 지난 번 총선을 앞두고 오늘의 시선 출연자들이 다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눈 후 처음 뵙네요, 잘 지내셨죠?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오셨나요.
현 : 네. 함께 모였던 시간 이전인 제 순서였을 때,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준비하려다가 준비하지 못해 다른 내용을 했었죠, 그때 만약에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하면 다음에 ‘페스트’를 읽고 오겠습니다, 라고 선언을 했는데요.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있는 게 사실이라서 서둘러 페스트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문학의 사회적 가치, 문학이 어떻게 사회적 문제의식을 통해 작품을 형상화하는지에 대한 지점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 코로나19의 영향 중에, 이렇게 책을 읽게 만드는 영향도 있는 거네요. 그렇죠. 루마니아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한 말이라고 하던데요. 작가는 잠수함의 토끼처럼 사회적인 문제에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한다, 잠수함에서 산소 이상이 있을 때 토끼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하니 토끼를 잠수함에 태우고 다녔던 것처럼 작가가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 거죠?
현 : 네. 맞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문화예술가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반응이 곧 예술 작품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4.3의 경우에도 현기영 소설가의 소설 ‘순이 삼촌’이 4.3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제주 연극의 경우에도 1980년 제주 최초의 문화운동체라 할 수 있는 극단 ‘수눌음’ 이 창단되어 삼별초의 전쟁을 제주민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작품 <항파두리> 등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한편 김경훈 시인은 제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 계속 시적 형상화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작가들은 문제의식을 갖고 세상을 보는데요. 그러한 모습들을, 특히 요즘 시기에 맞춰 살펴보려고 합니다.
윤 : 그러니까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사회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작품으로 형상화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것이라고 오늘의 주제를 정리할 수 있을까요?
현 : 네. 맞습니다. 먼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입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는 것으로 아는데요.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소설 ‘페스트’를 세상에 보인 건 1947년입니다. 때는 2차 세계대전 직후입니다.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인권을 말살하는 것인지 목격했습니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어 전사했고, 국적은 프랑스이지만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납니다. 그러한 혼란과 의미를 찾기 어려운 세대라는 인식은 소설 ‘이방인’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윤 : 페스트는 흔히 흑사병이라 불리는 공포의 전염병이잖아요. 14세기에 유행해서 유럽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었다는 무시무시한 병을 소설 제목으로 했네요.
현 : 네. 평범한 도시 오랑시에서 페스트가 다시 나타나면서 겪는 혼란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 소설을 재난영화의 효시로 보기도 합니다. 첫 장면에서 쥐가 거리에서 죽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처음에 코로나 19가 시작됐을 때 중국 우한폐렴이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듯 이것을 페스트로 볼 것인가, 다른 병으로 볼 건인가, 하는 어쩌면 쓸모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이어야 할 텐데요.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정치 논쟁을 한 것을 보면 씁쓸합니다. 이 소설에서도 일단 전염병이 시작되자 일단 페스트라 칭합니다. 흑사병에 대한 공포는 익히 알고 있어서 이것은 페스트, 확언하고 그 다음 대책을 모색하는 인물이 의사 리유입니다.
윤 : 그렇군요. 소설 얘기를 더 들려주시죠.
현 : 네. 전염병이 발발하자 오랑시는 폐쇄가 됩니다. 이때 취재를 위해 오랑시에 왔던 신문기자 랑베르는 입체적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처음에는 자신은 오랑시민이 아니고 감염 증상도 없으니 오랑에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어렵게 되자 억울해하는데요. 점점 리유의 연대 의식에 동화되어 나중에는 리유와 함께 전염병의 확산을 막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 해왔습니다. 마스크를 끼는 것도 우리라는 연대 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소설 속에 코타르라는 인물이 있는데요. 왜 이번 코로나19 때도 마스크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판매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듯 코타르도 혼란을 틈타 밀매를 해서 돈을 법니다. 또 확진자 판정을 받고도 아무렇게나 다녀버리는 사람들, 전염병이 신이 내린 형벌 운운하는 종교인, 그리고 확진자라고 해서 완전히 격리해 치료보다 격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런 인물들은 페스트의 확산을 막지 못하게 하는 인물들인 셈입니다.
윤 : 그렇다면 알베르 카뮈는 그냥 전염병으로 인한 혼란, 이런 이야기만으로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의 ‘페스트’가 내포한 상징성이 있을까요?
현 : 네. 부조리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폭력, 부조리. 그것을 페스트처럼 퍼지고 있다고 작가는 보고 있습니다. 마치 무증상 감염자처럼 우리는 누구나 전염병을 퍼트릴 수 있는 사람이듯, 폭력에 대한 방관, 부조리에 대한 방치 등이 악습으로 창궐해 세상의 혼란을 가져온다고 알베르 카뮈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카뮈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페스트로 본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타루는 보건대를 결성하고, 연대를 해서, 전염병을 이겨냅니다. 그러니까 문제의식을 가져야 연대할 수 있는 건데요. 우리 사회에서도 촛불시위를 통해 연대해 문제점을 고치려고 했던 일이 있는 것처럼요. 문제가 보였는데, 은근슬쩍 넘어가버리다가 나중에는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계속 지켜봐왔습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김보라 감독의 ‘벌새’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이 영화는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실공사라는 부조리가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그 사람을 향한 동경으로 자라는 청소년을 좌절에 빠지게 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입니다. 주인공 은희가 속한 속물적인 가족이 곧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윤 : 소설에서 어느새 영화 이야기로 넘어왔군요. 그럼 페스트 말고 우리 국내에서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이 많이 있었죠. 산업화 문제를 다룬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그렇고,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통해 문제를 끄집어내기도 했잖아요.
현 : 네. 맞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집 ‘농무’는 1973년에 발간된 시집인데요. 도시화와 산업화로 농촌이 붕괴 되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는 시집입니다. 시 ‘농무’의 한 부분을 보면,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꺽정이, 서림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임꺽정은 의적이 되는데요. 서림이는 임꺽정의 휘하에 있었지만 나중에 배신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기회주의자 때문에 부조리가 생깁니다. 얼마 전에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는데요. 거대 정당에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모습이 기회주의이고 부조리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윤 : 그럼, 제주도 문제로 더 안으로 들여다볼까요? 제주도의 작가 중에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다룬 작품들이 있겠죠.
현 : 네. 제주도 시인이라면 4.3시는 다 쓰게 되고, 강정 해군기지, 최근 제2공항 문제, 비자림로 등의 문제에서 여기 제주MBC에도 자주 출연하시는 김동현 평론가의 평론집 제목이 ‘욕망의 섬, 비통의 언어’인데요.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제주 섬에서의 문학이 비통의 언어로 나타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석범의 ‘화산도’, 시인 김시종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이 오래된 섬의 아픔을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조중연 소설가의 소설 ‘탐라의 사생활’이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가난한 제주 사람들을 구제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만덕과 권력 집단 상찬계와의 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권력을 지닌 자들이 그 권력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동일시됩니다. 소설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부조리에 굴복해야 하는, 힘없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제주도가 개발이라는 청사진으로 누군가를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또 누군가는 정치권력을 유지해 왔는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윤 : ‘탐라의 사생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다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는 것이겠죠. 이런 도전적인 책이 있었군요. 궁금해지네요.
현 : 김수열 시인도 예전에는 ‘수눌음’, ‘놀이패한라산’에서 여러 희곡 작품을 상연했는데요. 세화리 해녀 항쟁을 다룬 <녀풀이>, 고산리 이장형 조작간첩단 사건을 극화한 <저 창살에 햇살이>, 조선적이라는 이유로 제주에 올 수 없었던 연극인의 삶을 얘기한 <현해탄의 새>, 섯알오름 예비검속을 다룬 <백조일손>가수 최상돈의 노래 ‘애기동백꽃의 노래’가 시작된 <애기동백꽃의 노래> 등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시집 ‘물에서 온 편지’를 통해 4.3 당시 수장된 사람들과 세월호 참사를 연결해 아픔을 전한 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희곡작가로 한진오 작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지금까지 썼던 희곡 작품을 모은 ‘사라진 것들의 미래’라는 희곡집을 냈습니다. 한진오 작가는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 제주의 미래를 진단하는 작품들을 많이 써왔습니다. 최근에 한진오 작가는 비자림로에서 ‘낭싱그러가게’라는 퍼포먼스를 하던데요. 난개발에 저항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윤 : 현택훈 시인도 시를 쓰니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죠? 소설에 비해 약한 면이 있나요?
현 : 소설은 직접적으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사회성 짙게 쓸 수 있지만, 시는 현실에서 좀 벗어난 지점에서 노래하는 측면도 있어서 소설에 비해 문제의식을 다루는 모습이 약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는 상징성이 강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문제의식이 크게 드러나지 않더라고 그 이면에는 강한 문제의식을 보이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시는 대개 고정관념, 관습 이런 것을 깨려고 하는 문학 갈래이기도 합니다. 기형도의 시인의 시집‘입 속의 검은 잎’의 경우에 시 ‘안개’를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모처럼 안개가 걷힌 날에 보게 되는 불신에 대해서 기형도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윤 : 그래도 시는 함축적이라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기형도 시인의 다른 시를 보면 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데요.
현 : 네. 기형도 시인의 시 중에서 ‘우리 동네 목사님’을 보면 진실한 한 사람을 다수의 사람들이 내쫓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시에서 한 부분을 보면요.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라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 자본화된 교회 사람들이 소박하고 진실된 목회 활동을 하는 목사를 자신도 모르게 동조해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형도 시를 관통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문명 비판입니다. 예전에 김현 평론가는 기형도 시인의 시를 두고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이라는 평했습니다. 결국 시 역시 현실을 보고 있는 겁니다.
윤 : 오늘 알베르 카뮈부터 시작해서 신경림, 조중연, 김수열, 한진오, 기형도 등. 많은 작품들을 두루 살피면서 문학이 어떻게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지점을 살펴보았네요. 저도 요즘 코로나19 상황을 보면서 이러한 상황이 이번에 그칠 것이 아니라 다음에 다시 또 닥칠 수 있기에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그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 : 네. 시의 경우에 아름답게 표현만 하면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만약에 제주도를 노래할 때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만 노래하고 그 이면에 있는 제주의 아픈 역사나 개발의 문제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 좀 더 사회 문제를 살피면서 시 창작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윤 : 네. 앞으로의 시 작품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현택훈 시인과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