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8월18일 (수) <오늘의 시선> 도로교통법 개정안 '민식이법'이라 부르지 맙시다.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리뷰는 실제 방송 원고가 아닌 사전 원고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 방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입니다.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 안녕하세요.
윤 : 지난 3월부터 이동의 관점에서 우리 일상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지난달에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과 관련된 내용을 다뤘죠. 한 달 만에 만났으니 다시 좀 짚고 넘어갈까요?
김 : 네, 지난 방송 때는 우리가 당연하게 부르고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명칭부터 살펴보자고 말씀을 드렸었죠. 그러면서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의 최종 목표는 어린이 보호구역의 해지 혹은 폐기돼야 한다, 꼭 어린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 주변의 어린이 보호가 필요한 구역을 넘어서서 어린이가 어디서든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를 했고요. 그러면서 짧게 짚었던 게 ‘민식이법’이라는 명칭도 잠깐 다뤘었는데, 마침 지난 15일에 이른바 이 법안 개정의 계기가 된, 민식군 부모님을 명예훼손한 유튜버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윤 : 네, 지난 방송 때 흔히 칭하는 ‘민식이법’이라는 명칭부터 우리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죠. 이 뉴스를 접하고 나니까 더욱 적극적으로 재고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 네 지난 방송 때 또 다른 어린이 피해자들을 만들지 말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이 명칭이 오히려 피해자를 대상화시킨다는 점, 그러니까 대중들 사이에서 발화되는 과정에 이 ‘민식이법’이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자꾸 이렇게 ‘민식이법’으로 불리다 보면 법안이 상정하고 있는 본래 의미는 퇴색되어버릴 우려가 있으니 도로교통법 개정안으로 부르자고 했었죠. 어린이라는 주체, 어린이라는 관점 없이 이렇게만 불리다 보면 마치 민식이법은 운전자에게 부정적인 것으로만 비치게 될 우려가 크다는 것을 지적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대상화되어서 가해가 이뤄졌다는 뉴스를 접하니 더욱 착잡해지더라고요.
윤 : 법안에 피해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여론을 환기하고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좁히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 이렇게 확인하게 되는 건 부정적인 언급과 인식들이라니 씁쓸합니다.
김 :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어린이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운전자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인데, 시행 1년이 지났어도 워낙 속도를 내면서 운전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있다 보니 불편으로 인지되는 것이 현실이죠. 한 달 사이에 온라인 공간에서 반응 살폈더니 ‘희대의 악법’이라는 표현도 있더라고요. 왜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느냐는 반응인 건데, 심지어 이 ‘민식이법 놀이’라고 하는 것이 회자되면서 어린이들로 인해 오히려 순수한 운전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입장들이 힘을 얻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도 이 주제를 좀 더 다뤄보려고 해요.
윤 : 네, 지난해 7월에 ‘민식이법’ 법리 적용과 논란에 대해서 한문철 변호사와 대담 나눈 적도 있어서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도 이 ‘민식이법 놀이’라는 명칭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김 : 관련된 보도 기사를 쭉 찾아보니, 이 도로교통법 개정안, 즉 ‘민식이법’이 놀이화되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제가 보기에 지나치게, 과도할 정도로 우려를 표하는 기사들로 대부분 작성되었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당했다’, ‘운전자를 놀래켜서 용돈 번다, 도 넘은 아이들 놀이’ 같은 내용이었는데요. 물론 자료화면으로 쓰인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면서 저도 무척 놀라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기사들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은 떨쳐지지 않더라고요. 어린이들을 한데 뭉뚱그려서 악마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윤 :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니,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김 이사는 지난 방송부터 ‘민식이법’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라 부르자고 제안을 했으니 아마도 ‘민식이법 놀이’라고 하는 명칭도 비슷한 의견이실 테죠?
김 : 네, 과연 이 놀이라고 하는 명칭을 일반화해서 부르는 것이 여론을 형성한다는 언론에서 지향할 만한 행위인가? 하는데도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지난 6월에 정치하는엄마들에서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행위를 민식이법 놀이로 부르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전국 37곳 시도교육청 및 지방경찰청과 언론사 22곳에 공문을 보내 사과문 개제와 시정을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1. 지역 2. 연령대 3. 성별 4. 유행정도 등 근거 자료를 회신할 것을 요구했는데요. ‘민식이법’이라는 법명이 오히려 피해자 이름에 가해자성을 부여하고, ‘놀이’라는 표현으로 그 심각성을 축소시킨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 행위는 아동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적 표현을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윤 : 그런 인식들이 언론 보도에도 반영된 것이군요.
김 : 정치하는엄마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제보 및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로 조사를 했더니, 지난 5월 13일 한 유튜버가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 행위를 ‘민식이법 놀이’라며 공유한 영상을 한 언론사가 인용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6월에 이르기까지 이와 비슷한 논조의 기사가 38건이 조회됐고, 이를 비판한 기사는 2건뿐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유튜버의 언급을 인용한 기사를 시초로 ‘민식이법 놀이’라는 말이 퍼졌던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인용해서 쓴 기사들도 다수입니다. 언론을 통해서 더욱 여론이 부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거죠.
윤 : 과연 유행 정도라고 하는 것이 측정 가능한가요? 관련 통계들이 있는 건가요?
김 : 그래서 어린이들을 뭉뚱그려 악마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씀 드렸던 것도 이 이유에서인데요. 비판적 입장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런 식의 도 넘은 장난들은 도로교통법 개정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고, 물론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어린이들을 옹호한다고 오해하실 수 있지만 그것을 짚으려는 것이 아니라 도로교통법 개정안과의 인과성을 측정하기가 상당히 모호하고 어렵다는 것이에요. 그런데다가 개정안 이후에 실제로 이 놀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법안이 강화된 만큼 어린이들의 안전 의식을 높이는 교육이 더불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예요. 사단법인 인권언론센터는 논평에서 ‘민식이법 놀이는 실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이나, 사단법인 인권언론센터 모두 확인 절차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보도 기사를 작성한 것을 지적하고 있어요. 어린이들에 대한 혐오를 오히려 선동한다는 지적들도 있고요.
윤 : 지난 방송 때 어린이들의 안전한 공간을 빼앗은 것은 어른이고, 그렇기에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돌려줄 의무가 있는 것도 어른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오르네요.
김 : 네 그때 제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어린이는 몸집이 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른들은 몸집이 작아본 경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했었는데요. 실제로 어린이들의 시야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정말로 자동차가 오고가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설령 어린이들이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실제로 정말 악용하고 있다면, ‘악용을 해도 된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어린이들의 장난, 혹은 심하게 나아가서 이 놀이가 운전자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된다는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어른들이 과연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근본부터 따지기 시작하면 어린이를 보호해야만 하는 구역이 지정될 정도로 자동차 중심의 사고가 만연해지고, 이것마저도 어린이들의 목숨을 잃어가는 현상을 피할 수 없어지면서 개정안까지 나오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운전자 대 보행자, 심지어 운전자 대 어린이라는 구도로 기울어진 논쟁의 운동장에서 우리가 정말로 문제를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윤 : 역시 자동차 중심 사고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고 쓰시네요. 마지막 말씀이 인상 깊은데, 오늘 다루고 있는 이 일명 ‘민식이법 놀이’에서 그 구도가 확연이 나타나고 있어요. 운전자 대 보행자라는 구도는 사실 어른 대 어린이라는 구도이기도 하니까요.
김 : 이렇게 생각하니 어른으로 좀 더 부끄러워지네요. 뭐, 언론 보도에 나타난 형태만 보더라도 일방적인 비난조에 가까운 기사들도 눈에 띈단 말이에요. 어린이보호구역의 본래 의미와,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근본적인 취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손쉬운 방법으로 어린이들을 탓하기보다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죠. 어린이들에게도 안전한 통학길이고, 운전자들에게도 안전한 운행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윤 :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법보다 현상이 느리기도 하고, 인식이 법보다도 느릴 때가 있어요. 이 인식이 같이 가려면 뭐가 가장 시급할까요?
김 : 인식의 변화, 문화의 확산 전부 시급한 문제이죠.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보다가 감지한 것은, 역시 언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인데요. 아무래도 도로교통법 개정안에서 처벌 강화라는 부분이 핵심이라는 언론 보도가 자주 다뤄지다 보니까 이 부분들에 대한 우려가 불필요하게 가중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쿨존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처벌받는다는 공포심으로 운전자들을 사로잡아버린 면이 있는데요. 핵심은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할 경우 가중처벌’이라는 것을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고요. 더불어 개정안 시행 만 1년을 넘기면서 개선된 통계 자료들에 대한 홍보도 더욱 널리 퍼져야 할 것 같고, 보행자 중심의 정책이 자리 잡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도들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러 나라들에서 스쿨존 관련 법규나 제약이 굉장히 센 편으로 알고 있는데, 눈 여겨 볼만한 대목들 좀 소개해주시죠.
김 : 2019년도에 발행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에 따르면 미국은 주정부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안전한 통학로 사업이라고 해서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를 대상으로 보행·자전거 통학 비율을 늘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해요. 매년 평가를 실시해서 사고 취약점을 파악하고, 좀 더 안전한 길을 계속 찾아가는 거죠. 영국은 학교 주변 지역에 '교통정온화기법'을 적용해서 교통량 통제와 함께 속도를 규제하고 도로환경을 정비하는 사업을 실시하는데요. 심지어 공기가 깨끗한 곳까지 파악해서 물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일본은 1972년부터 어린이보호구역 제도를 도입했으니 우리나라보다 23년이나 빠른데요. 요지는 어린이 각 개인의 통학로를 파악해서 통학로의 위험 지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한다고 합니다. 세 나라 모두 공통점은 스쿨존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통학로를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어린이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죠.
윤 : 우리나라도 개정안이 잘 자리 잡고 나면, 통계상으로나 우리의 일상 반경에서 체감하는 것이든 어른이나 어린이들이나 누구든 걱정 없이 안전한 환경을 누릴 날이 오겠죠.
김 :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준을 어린이에게 맞추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안전한 공간, 안전한 환경의 기준을 어린이의 눈에 맞춘다면, 그것은 단지 어린이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좋은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겼으면 해요.
윤 : 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와 함께했습니다.
김 :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