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6월29일(화) <키워드뉴스> 무능력한 능력주의 (김재훈기자 제주투데이)
윤/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키워드 뉴스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주투데이 김재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안녕하세요.
윤/
오늘의 키워드 알아보겠습니다. <효과음>
1. 무능력한 능력주의
김/
무능력한 능력주의
윤/
능력주의... 요새 많은 말들이 나왔는데요.
김/
네. 능력주의란 무엇인가부터 얘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능력주의. 말 그대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보상을 많이 받는다는 건데요.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특화된 사회 이념의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서 쉽게 얘기하자면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서, 능력을 갖추면 자본을 남들보다 더 많이, 빠르게 축적할 기회를 준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경쟁 구도를 극단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이념인데요.
윤/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시스템이잖아요?
김/
그냥 익숙한 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는 ‘지나치게’ 익숙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도 더 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가사도 있잖아요? 이런 내용이죠.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아직 유효합니다. 결국 학교라는 공간이 학생들을 사회에 잘 어우러지도록 사회화 교육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능력주의적인 줄을 세우는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데요.
윤/
최근 모습 보면 여전해 보입니다.
김/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래도 예전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 바짝 해서 성과를 올리는 경우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교 때 이미 자신의 능력주의적인 위치를 알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의 능력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볼 수 있겠습니다.
윤/
능력주의... 최근 공정성과 함께 얘기가 되곤 하잖아요?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제도... 공정하긴 하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텐데요.
김/
환상이라는 지적이 따르죠.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었죠. 계층 이동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사법고시가 대표적입니다. 계층 이동 혹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로스쿨과 의과대학원의 사례를 보면 막대한 학비를 지출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 두 사례, 특히 사법고시를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줄어들게 됐습니다.
윤/
사법고시 폐지 반대 목소리도 나오긴 했습니다만... 로스쿨이 갖고 있는 긍정적 의미들도 있으니까...
김/
그렇습니다. 다시 능력주의 얘기로 들어가면요. 능력주의로 인한 문제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능력이라는 건 특별한 개성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용인하는 줄세우기용 능력이거든요. 주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능력을 말합니다. 일면 깔끔해 보여요. 시험 잘 치면 잘 살아갈 기회를 준다는 것... 하지만 이런 능력에도 자본의 사슬이 얽혀 있다는 거죠.
윤/
일단 사교육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 ‘대입능력주의’ 체제라 볼 수 있겠습니다. 대입시험을 얼마나 잘 쳤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능력이 결정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그러한 경향은 결국 학교서열제와 함께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각종 사회 부작용들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윤/
능력주의로 인한 사회 부작용...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아마 능력주의 담론에서 보자면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을 갖춘 이들을 ‘엘리트’라 부를 수 있을 텐데요. 일부 엘리트들의 무감각한 도덕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트에게 집중된 사회적 자산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의 패배주의 역시 문제가 됩니다.
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빈곤과 싸우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김/
여전히 하루 세 끼 챙겨먹는 것이 힘겨운 분들 많이 계십니다. 능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계층의 차이나 이렇게나 현격하게 나는데요. 이런 사회 문제를 지적하면 그러게 공부 잘하지 그랬어? 혹은 그러게 부모 잘 만나지 그랬어?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능력주의에 빠진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똑 같이 능력주의의 함정으로 빠뜨리는 말이 있죠. 건설현장 일이나, 리어카를 끌며 종이박스를 수거하시는 분들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인데요.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해서는 안되는 표현인데 사회적으로 많이 쓰던 표현인 것 같습니다.
김/
블루칼라. 육체 노동을 하시는 분들... 일용직. 모두 사회구성원이거든요? 그런데 능력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왤까요. 발언 능력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전달 능력도 많은 경우 돈으로 해결되거든요.
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걸까요?
김/
이와 같은 능력주의의 폐해로부터,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했습니다. 여성, 임산부, 장애인, 노년층 등을 위한 여러 가지 보호장치들이 있거든요. 취업 시에 가산점을 준다거나, 주택 청약 등 여러 가지 사회적 필요에 따라 보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거죠.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이게 정말 공정한 것이냐...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겁니다.
윤/
그런 문제 제기 누가? 왜?
김/
일단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가 있습니다. ‘백래시’라고 하는데요. 백래시는 사회·정치적 변화로 영향력이나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반격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보수 반동주의’와도 희미하게 연계됩니다. 옛 체제로 돌아가자는 발상인 거죠. 자신의 이득에 직결되지 않는 사회적 진보와 약자들을 위한 보호장치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글상태의 경쟁주의로 가자는 거죠.
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 모두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누구나 다 1등이 될 수는 없잖아요?
김/
능력주의는 어차피 소수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성과 줄세우기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능력주의는 가정 소득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에 올린 칼럼에서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동물의 종류가 다르듯 가정이 제각각인 아이들 사이에 경쟁이 정말로 공정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여러 연구들은 아이들의 노력과 실력이 부모나 가정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한다. 어렸을 때 가난해서 받는 심각한 스트레스는 뇌의 발달을 막으며, 임신한 엄마의 환경 요인이 아기가 태어난 후 건강과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윤/
빈부격차가 이미 개인의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
근데 그 외에도, 열등감으로 인해 쉽게 좌절하는 어린 학생들 많거든요. 교재 값... 사교육... 등등도 생각해봐야겠죠. 능력주의는 거꾸로 좌절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능력을 가질 능력이 없는 이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좌절주의인 셈이죠.
윤/
능력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을까요.
김/
일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국민의힘 대표 선출 과정에서 능력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각인시키면서, 기존 보수정당 후보들보다 더 보수적인 청년후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20대 청년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난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른바 이대남이라 불린 이들이죠.
윤/
아니 근데 이준석 대표는 소위 능력자잖아요?
김/
네, 다른 것 다 떠나서 하버드대학교 출신이니, 대학교 입학 능력, 즉 어느 대학교에 갔느냐가, 한 개인의 삶의 성과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에서는 이준석 대표를 ‘능력자’라 보는 시각이 따라오는 것도 제법 자연스러운 일일 것 같습니다. 이준석 대표가 취임한 뒤, 또 다른 ‘능력주의의 아이콘이’죠. 원희룡 지사를 만나기도 했는데요.
윤/
원 지사 역시 ‘능력주의’의 아이콘이라 부르는 데 반론은 딱히 없을 것 같긴 합니다.
김/
그렇죠. 한국사회에서 능력을 가늠하는 대입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니까요. 근데, 한편으로는 원희룡 지사의 대입시험 수석이미지...가 다소 고리타분하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그토록 오래 정치를 한 정치인 원희룡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대입 수석인 거거든요. 잘 몰라요. 대입 시험에서 수석한 건 아는데, 어떤 정책을 펼친 정치인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쉽게 나오질 않거든요.
윤/
능력주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 현재 20대 청년들의 관심사이긴 하지 않습니까?
김/
현재 보이고 있는 백래시 현상은... 보편적 복지와 함께 공정성 개념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얼마간 잦아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언론이 부러 키우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요.
윤/
원 지사의 얘기가 나온 김에... 여러 가지 말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사퇴 시기는 7월이 될 것으로 얘기가 돌고 있는데요. 그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 이제 곧 제주도청에서 인사를 하게 됩니다. 승진하게 되는 거죠. 코로나19 사태가 아무리 서민들 삶을 힘들게 만들어도 공무원은 승진합니다. 그런데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요직 자리가 공무원 승진 자리로 거론되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윤/
공무원 파견 요청 논란 말씀이시죠?
김/
그렇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주지부 제주문화예술재단지회(이하 제주문예재단 노조)는 제주도에 경영기획실장직에 공무원 파견을 요청한 이승택 이사장에게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들어갔는데요. 노조는 "개방형 공모를 위한 관련 규정 개정에만 무려 수개월을 허비하다가 모처럼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규정 개정 절차를 밟던 중에, 제주도 인사를 딱 5일 앞둔 시점에서 이사장이 급작스럽게 들고 나온 것이 공무원 파견 요청이었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 지사의 마지막 공무원 인사에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제주문예재단 노조는 "지난 28일 오후, 이승택 이사장이 제주도에 공무원 파견요청 사유로 ‘경영기획실장 장기 결원에 따른 인력 부재 해소 및 행정업무 효율화를 위한 파견 요청’이라고 제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무능력과 무원칙을 넘어, 자신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이사장의 후안무치에 깊은 분노를 느끼며 우리는 파견 요청을 철회할 것"을 재차 강력히 요구했습니다다.
윤/
노조 측에서 제기하는 건 이승택 이사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고 있잖아요?
김/
그렇습니다. 문예재단 노조는 경영기획실장의 ‘장기 결원’ 책임이 이승택 이사장에게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노조는 "경영기획실장 직위는 작년 8월 직원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이사장이 강행한 조직개편의 핵심이다. 사업부서는 이사장 직속으로 두고 기획홍보, 인사, 재무회계 등 경영 전반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경영기획실장이 갖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
(마무리)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주투데이 김재훈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