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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05분

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7월6일(화) 해직공무원의 17년만의 일터 복귀 (김영철 전국공무원노조 제주지역본부 초대 본부장)

◇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윤상범> 네 지난 2004년이었습니다. 공무원 총파업 당시 노동 3권을 보장을 외치면서 거리로 나섰다 해직 당한 제주시청 소속의 공무원이 해직된 지 17년 만에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김영철 전국공무원노조 제주지역본부 초대 본부장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오늘 연결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지금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영철> 네 안녕하십니까 네 (웃음)

윤> (웃음) 네 목소리가 굉장히 밝으십니다.

김> 아 예

윤> 아니 이게 글쎄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고 기억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시겠습니다마는 17년 만에 복직이 되신 거지 않습니까?

김> 예 그렇습니다.

윤> 그 소회를 한마디로 여쭙기는 굉장히 어렵겠습니다만 일단은 좀 여쭤봐야 될 것 같습니다.

김> 예 그 뭐 막 굉장히 긴 건데 아 저희가 기대하고 있는 그만큼 이제 완전 복직이 아니기 때문에 심정은 담담함뿐이고 다만 이제 그 고마운 분들에게 그동안에 저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끝까지 성원하고 지지해주고 지금까지 의리를 지켜준 우리 조합원 그 외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윤> 예 가족 얘기 안하시는데요? (웃음)

김> 가족...아 (웃음)

윤> 요즘 다들 글쎄요 그 본인도 그렇지만은 주변 분들이 굉장히 힘든 것이 해직의 현실 아니겠습니까?

김> 네 그렇습니다.

윤> 예 그 본부장님 이력을 보니까요? 1989년에 제주시청 소속으로 공직에 들어오셨네요.

김> 네 그렇습니다.

윤> 2003년에 공무원노조 제주본부 초대 본부장을 맡으셨는데 사실 굉장히 힘든 시기였었죠. 뭐 그때에는 공무원직장협의회가 먼저 개설이 됐다가 그 다음에 노조로 발전을 하게 된 건데 당시 해직 사유가 어떻게 됐었죠?

김> 당시 그 말씀을드리려면...

윤> 네 네 말씀해 주십시오.

김> 예 그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 그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국제노동기구로부터에 이제 많은 압박을 받았어요 그래서 만든 게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우선 만들어서 일단 분위기를 주자 이렇게 했거든요. 그런 이후에 공무원노조 노동조합법이 미흡하다는 그런 지적에 따라서 공무원노동조합 특별법, 특별법을 만들어서 노동조합으로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지적이 있었어요. 그거에 따라서 노무현 정부 당시에 노무현 정부에서 그 국회에서 공무원노동조합법이라는 것 말고 공무원조합법이라는 그런 걸로 이제 만들어서 눈가림 하자 이런 식으로 이제 얘기가 된 거죠. 저희들은 수용할 수도 없는 거고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고 오히려 이거는 노동조건 개선을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무늬만 노동조합이라고 이렇게 씌워놓고 전혀 오히려 활동을 할 수 없을 그런 이 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저희들도 전국적으로 전국적으로 이제 이거에 반대했죠 안 된다 이거는 앞으로 이제 그 노동조합 활동이라든지 어떤 공직사회의 공직 민주화를 위해서든지 공직사회 개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추진해 나갈려면 이거 갖고는 안 된다 그런 게 이제 공감이 되어서 반대 투쟁을 전국적으로 조직을 해서 실행을 하게 된 거죠.

윤> 예 근데 그때 제주도에서 앞장서시다가 해직이 되셨던 겁니까?

김> 그렇죠.

윤> 그러니까 이 청취자분들께 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 우리나라가 당시에 김영삼 정부 때였습니다. 96년에 OECD 가입을 하려고 했더니 공무원 노동조합 설립허가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노동조건들을 제시를 받았었단 말이죠. 그런데 정부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그 김대중 정부 때 와서 이 부분을 실행하려고 했는데 이것도 좀 완전치 못하다 보니까 그때 이제 또 노동조합을 결성하시면서 이제 투쟁을 하시다가 제주에서 또 해직이 되신 거고... 제가 이해 한게 맞습니까?

김> 예 맞습니다.

윤> 예 글쎄요 이 노동 3권을 그때 외치셨습니다마는 이 노동 3권을 공무원 그리고 또 뭐 다들 기억하시겠지마는 이제 전교조에서도 이 부분을 좀 많이 외쳤습니다마는 그것을 인정받는 시간이 굉장히 좀 오래 걸렸었고 그 과정 속에서 여러분들이 이제 해직을 당하는 그런 아픔도 겪으셨었죠 그리고 이후에 이제 2004년 공무원 총파업때 해직된 공무원분들이 꽤 많으셨는데 이번에 복직 다되신 거죠?

김> 그 당시 해직된 조합원들은 거의 이제 복직 거의 됐고 전국적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기간 동안에 그러니까 7월 13일까지는 복직을 일단 완료하고 그다음 다음 단계는 이 미흡 된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 개정 투쟁을 좀 해서 라도 보완을 시키는 걸로 하자 이렇게 얘기는 됐는데 그게 사실 쉽지는 않죠

윤> 그래서 아까 완전치 못하다는 말씀도 하셨던 것이고 그러면 제주 지역에서는 해직됐던 공무원이 김 전 본부장님 한 분이셨던 건가요?

김> 네 저 혼자였습니다. (웃음)

윤> (웃음) 왜 제주도에서 그렇게 제주도 말로 뺄라지게 앞에 나서서 하셨습니까? (웃음)

김> 제가 그 당시에 그렇게 했습니다. 뭐냐하면은 그 당시 분위기라는 게 있어요. 그런 시대 상황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 시대에 어떤 것이 중점이 되어서 전국적으로 바람이 부느냐 그런데 그 당시에는 공무원 노조라는 이 우리나라 해방 이후에 초유의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윤> 그렇죠.

김> 그런데 이제 그 공무원 노조 설립이 그 투쟁이 전국적으로 뭐 우리 뭐 문자로 표현한다면 요원의 불길처럼 이렇게 타오르는데 제주도가 이렇게 섬 지방으로 떨어져 있다고 그래서 제외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그런 게 있어요. 이건 뭐 지역감정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그 육지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저기 제주도 사람들 약간 그 뭐 좀 그런 부분에서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게 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주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제주도 사람들은 강하고 제주도 사람들은 절대 남한테 밀리지 않는 그런 우리 환경의 도시인데 어떻게 남들이 다 전국적으로 깃발을 들고 일어서는데 계속 나 혼자지만 내 목숨 하나 살려고 슬그머니 깃발을 내려서 이 참여를 안하는 나 혼자도 참여 안해서 나 혼자 해직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안 된다 이거는 왜냐하면 이 이후에 우리 후배 공무원들이 교육이나 출장이나 이런 그 육지에 있는 공무원들하고 이렇게 대할 때 그 당시 엄청난 투쟁이 있는데 '너희 멍청하게 제주도 사람들 그런 분위기도 모르고 역시 촌놈들이니까 틀린 거냐' 이런 창피 당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고 또한 제주도 사람들이 강하고 투쟁정신이 있고 4.3항쟁부터 시작해서 어떤 불의의 저항은 이러한 그런 그 특성을 가진 이런 제주도민들을 잘못 보지 마라 그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참여 안 하면 안 된다 그런게 있었죠. 그래서 패기가 젊었을 때는 또 그렇게 패기가 있었고

윤> 지금도 후회는 안 하십니까?

김> 후회 없습니다. 예 후회 안합니다.

윤> 예 제가 알기로는 사유가 당시 무단결근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그렇죠. 하루

윤> 파업 찬반투표를 위해서?

김> 예

윤> 예 이 질문을 드린 게 사실 공무원 조직이라는 것이 글쎄요 외부에서 보는 거 처럼 그렇게 만만치는 않은 곳이고 그다음에 좀 보수적인 성향들이 분명히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들 하는데 그 안에서 홀로 나서는게 얼마나 어려웠을까라는 짐작이 들어서... 사실 짐작도 좀 힘든 부분이라서 이런 부분을 한번 여쭤봤습니다. 자 복직은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해직된 기간이 경력으로 인정이 안 된다고 들어서

김> 네 그렇습니다.

윤> 그러면 지금 죄송하지만 지금 연세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김> 예 올해 60입니다.

윤> 그러면 그 해직되기 전 직위로 다시 들어오신 겁니까?

김> 아 그렇죠. 그 직위로 들어왔는데 제가 이제 금년 말에 이제 퇴임이거든요. 예 그래서 그 뭐 저는 뭐 직급을 바래서 다시 복직을 원했던 건 아니였고

윤> 그렇죠. 예

김> 아 애초에 그런거 욕심 부렸으면 여기에 나서 지도 않았죠 다만 다만 이제 그 경력 전 경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또 우선 제일 중요한 건 그 당시 저희들 범죄자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제 국가의 지나친 탄압에 의해서 징계도 받고 집행유예 등의 징역형도 받고 이렇게 했거든요 지금 저희들 명예회복을 한다는 건 그러한 징계가 취소되고 이런 것들이 다 취소된 상태에서 명예회복이 돼야 되는데 그게 안 됐어요.

윤> 그런 것들이 아까 말씀하셨던 지금 사실 이렇게 돌아오시게 된 것이 해직공무원복직법, 이 특별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돌아오시게 된 거 아니겠습니까?

김> 예 그렇습니다. 예

윤> 그 부분이 좀 해결이 안 됐다는 말씀이신 거죠?

김> 예 해결이 안 됐죠

윤> 지금 복직하시고 그러면 6개월 만에 다시 퇴직하시는 겁니까?

김> 그렇죠. 예

윤> 막상 돌아와 보시니까 어떤가요?

김> 네 뭐 들어와도 별 차이는 못 느꼈고 다만 이 이미 시간은 흘렀기 때문에 옛날에 알던 그 직원들은 전부 퇴직을 하거나 아니면 지금 그 승진해서 재 나이에 이렇게 되어 있거나 하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이 예 그 당시에 저희들의 자리에 다시 이렇게 와서 이 민원을 보고 하는 거 봤을 때 '아 역시 세월은 흘렀고 또 자리는 또 이렇게 돌고 도는 거구나' 그런 감회가 좀 있었어요.

윤> 당시 같이 계셨던 분들 지금 남아 계시다면 이제 뭐 퇴직을 앞둔 국장급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김> 예 그렇게 됐죠 우리 후배들도 국장 된 후배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윤> 다시 한 번 여쭤볼까요? 그 당시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다 국장되고 이제 좀 잘 돼서 이렇게 퇴직할 때가 됐는데 아직도 7급이신 거잖아요. 9급인가요? (웃음)

김> 이번에 그 저기 정부 협상 해서 근속승진으로 6급으로 이제 하긴 한다는데

윤> 아 6급입니까. (웃음)

김> (웃음) 예

윤> 섭섭 하지는 않으시고요?

김> 아이 뭐 그런 거 없어요. 제가 뭐 직급에 연연하거나 그런데 이제 자리에 연연할 건 이거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윤> 알겠습니다. 처음 노조 결성하시고 시작할 때 그리고 지금 이제 후배들이 노조 활동을 또 한참 하고 있는데 공무원 노조로써 비교를 해보신다면, 사실 제가 공무원노조의 노래를 하나 좀 찾아봤는데 '노동 3권 쟁취해서 공직사회를 개혁하자'라는 문구가 있고 '정권의 하수인은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김> 예 그렇습니다.

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떠신 것 같습니까?

김> 지금 현장을 떠나서 오랜 기간 떠났기 때문에 그 분위기는 모르겠지만 공직은 많이 변하진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저희들이 당초에 했던 군사 문화가 이제 있었거든요.

윤> 그렇죠.

김> 상명하복, 수직관계 이런 것을 협력 관계로 수평적인 관계로 이렇게 서로 이렇게 소통하면서 존중하면서 그래서 이 민원 극대 이렇게 하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이런 거를 끊고 이렇게 하자 이게 저희들의 취지였는데 아 공무원노조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서 그런 부분은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하지만 직장 분위기는 시대의 분위기니까 또 그런 분위기를 쫓아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

윤> 사실 오늘이 좀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한 것이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된 첫날이기도 합니다. 그니까 아시겠지만 그 소방공무원도 이제 노조 활동을 할 수가 있게 됐구요.

김> 진작에 했어야 되는 건데

윤> 그렇죠. 또 퇴직한 노동자들 해고된 노동자 그리고 퇴직 공무원, 퇴직 교원도 다 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예전보단 좀 그 조합 활동이라든가 뭐랄까 노동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는 좀 많이 좋아진 여건인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김> 많이 좋아지기는 했죠 그리고 저기 특히 소방공무원 같은 경우에는 자기를 희생해서 국민을 구하는 그런 직종이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더욱더 자기 뭉쳐서 자기들의 그 방어력을 좀 더 높이고자 자기네 권역을 높이고 그리고 그 힘으로 국민들을 열심히 방호하고 이렇게 자기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지원하고 이런 게 돼야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경찰공무원도 이제 앞으로 자치경찰제도 되겠지만 경찰공무원도 이런 그 조직을 단체를 통해서 더욱더 국내 서비스를 더 확대시키는 쪽으로 가야 되지않나, 외국은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윤> 그렇죠. 뭐 맨날 OECD 얘기합니다마는 다른 나라들은 좀 되고 있는 부분인데 ,사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으로 변경이 되면서 이것도 굉장히 좀 어려운 과정을 겪었습니다마는 이제는 뭐 그 안전장비를 자기 돈으로 산다 던가 아니면 시간 외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다든가 이런 일들은 좀 덜 해지겠죠. 아무튼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시간이지 어느덧 다 됐는데요. 저는 궁금한 것이 6개월 공직 생활 남으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김>어 뭘 어떱니까?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사는 거죠. 뒷방 늙은이 될 건 아니고 공무원노조 제주본부에서 추진하는 일들을 많이 자문하고 또 잘하는 부분은 또 칭찬도 하고 협력도 하고 어 그러면서 이제 지내야 하죠.

윤> 예순의 나이에도 아직 지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예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 복직하신 것을 지금 축하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김> 예 감사합니다.

윤> 예 앞으로도 좋은 곳에서 많이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 예 감사합니다.

윤> 예 공무원 노조 제주본부에 초대 본부장을 지냈던 김영철 전 본부장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