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6월 23일(수) <오늘의 시선> 현대인의 숙명 '통근', 길 위에 버려지는 시간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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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입니다.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 안녕하세요.
윤 : 자, 어느덧 네 번째 만남입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 준비해오셨나요?
김 : 지난 시간에는 팬데믹 이후에 개인화 되고 있는 자동차 중심 문화, 제주에서 자전거 타기, 걸을 수 있는 도시와 걸어서 좋은 도시까지 다뤄봤는데요. 오늘도 이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바로 현대인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통근’입니다.
윤 : 우리가 보통 ‘출근하기 싫다’, ‘퇴근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죠.
방금 현대인의 숙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통근이라고 하면 뭐, 안 하면 좋지만
안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김 : 우리가 도대체 왜 출퇴근을 해야만 하는지, 안 하고도 살 수는 없는지 임금노동의 형태에 대해서도 나눌 이야기가 많을 테지만 오늘은 정말 말 그대로 근무하기 위해 다니는 ‘통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윤아나님은 하루에 출퇴근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쓰세요?
윤 : 오고 가는 시간 합치면 적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막히는 시간도 고려하면요.
김 :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느냐도 많이 좌우되는 듯해요. 외곽지에서 도심으로 나오냐, 아니면 오히려 도심에서 외곽지로 나가느냐. 오늘의 시선 직전에 교통정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간별로 도민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통행하고 있는지에 따라서도 5분, 10분이 달라지는 거 같은데. 출퇴근 시간에 5분, 10분 매우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통근 형태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는 것인데요. 사람들이 주로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지, 근무지는 보통 어디에 분포하고 있는지, 버스의 어느 노선이 붐비는지, 자동차 통행은 어느 구간에서 꽉 막히는지 통근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현대인의 생활이 어떤지 살펴볼 수 있다는 거예요.
윤 : 그렇겠네요. 현대인의 생활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상일 수 있겠어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지내고 있으니까요.
김 : 태국에서는 하루에 소요되는 통근시간이 3시간이라고 하고, 영국에선 노동자가 정규노동일 19일 정도에 해당하는 139시간을 통근하는데 쓴다고 해요. 중국의 베이징은 교통 혼잡으로 악명이 아주 높죠. 통근이라고 하는 게 꼭 도시적 삶의 특성이 아니라 임금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기도 한데요. 그래서 통근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윤아나님은 출근길에 잊지 못할 추억 있으세요? 아무래도 시간이 생명인 일을 하고 계시니까요.
윤 : 김 이사도 잊지 못할 기억이 있으세요?
김 : 저는 다른 게 아니라 초년생 시절에, 칼퇴근을 거의 못 해보다가 어느 날 6시에 퇴근을 하고 나왔는데 차가 너무 붐벼서 깜짝 놀랬어요. 겨우겨우 집에 들어가느라고 진을 뺐는데요. 원래 다들 이 시간에 이렇게 집에 가고 있었단 말이야? 하면서 투덜댔던 기억이 있네요. 아직도 주위를 둘러보면 어차피 일찍 출발해봐야 막히니까 차라리 일을 더 하다 가겠다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현대인의 딜레마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윤 : 일찍 집에 가고 싶지만, 길에서 시간을 버리기는 싫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죠. 그래도 제주지역은 출퇴근에 쓰는 시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좀 나은 편
아닌가요? 서울만 해도 출퇴근 시간에 만원버스, 지옥철, 도로 위 교통 체증으로
‘숨막힌다’라고 표현하잖아요.
김 : 아무래도 양상이 다르겠죠. 서울이야 출퇴근에 대한 악명이 워낙 자자한 도시잖아요. 통계를 찾아보니까 2019년에 조사된 생활시간 통계에 따르면 전국 평균 1시간16분이라고 하고요. 서울지역은 1시간31분 소요된다고 해요. 익히 잘 아시겠지만, 1분 사이에도 오늘 하루 일정이 좌우될 수 있으니 정말 분단위, 초단위로 움직이잖아요. 퇴사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서 인상에 남는데, 퇴사하고 나서 좋은 점은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갈 일도 없지만 가더라도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게 좋다는 거예요.
윤 : 분단위, 초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지역적 특성이라기보다 현대적인 특성
같네요. 요즘에는 버스나 지하철이 어디에 있는지 몇분 후에 도착하는지 정확하게
뜨기도 하고요. 네비게이션도 교통 혼잡까지 계산해서 도착 예상시간을 거의
맞추더라고요. 그나저나 제주지역은 통근 시간에 대한 통계가 어떻던가요?
김 : 제주지역은 출퇴근하는데 하루 평균 1시간 2분을 쓰고 있어요. 5년 전 조사 결과인 57분보다 5분 늘었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48분에서 14분 증가한 것이죠. 많이들 체감하고 계실 거 같아요. 평균치이니 구간마다 더 소요되는 곳도 있을 테고요.
윤 : 아, 다른 지역이랑 차이가 많이 날 줄 알았는데 통계상으로는 의외로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데요?
김 :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도 많이들 체감하고 계시겠지만 몇 년 사이에 출퇴근 시간이 예전보단 늘어났어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인구수도 그 사이에 10만 명이 넘게 늘었고, 그에 비례해 차량 통행량도 많이 늘어났죠. 저도 시간 좀 줄여보려고 가능한 모든 경로를 다 시험해봤는데, 결국 걸리는 시간은 똑같은 거예요.
왜 그러냐면 제가 계산하는 모든 길에 다른 차들도 이미 나와 있고, 체증이 덜한 길로 가려면 거리가 좀 더 걸리는 걸 감수해야 하더라구요. 시간을 줄이느냐, 기름을 뿌리느냐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요즘 말로 ‘현실자각타임’이 확 와서 가장 편한 길로 다니고 있어요.
윤 : 저는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르는데, 첫 번째는 언제부터 이렇게
출퇴근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리고 두 번째는 팬데믹 이후에 재택근무들 많이
경험하고 있잖아요, 통근이라는 현상이 언젠가는 없어질까? 이런 물음이 생기네요.
김 : 네, 마침 준비해온 이야기랍니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통근자라고 하는 개념은 산업혁명 이후에 대두되었어요.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서구권에서는 하루에 겨우 50미터만 이동했다는 연구가 있어요.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영국은 19세기에 ‘보행자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인파들이 걸어서 공장까지 출퇴근하곤 했는데요. 20세기 초까지도 출퇴근 시간만 되면 인파 행렬이 줄을 지었다고 해요. 이 때문에 많은 도시 문제가 야기되고, 철도가 깔리면서 도심의 인구가 외곽지로 옮겨가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통근이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 정도가 행정적으로도 영토를 규정하는 단위였는데, 증기기관의 발달과 철로의 확산으로 근무지와 거주지의 분리가 생겨난 거예요. 영어로 통근을 뜻하는 commute라는 말이 일일권을 통합해 할인하는 열차 정기권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윤 : 오로지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 했던 시기에는 통근 풍경이 어땠을지도
궁금해지네요. 20세기 후반부는 주로 자동차를 이용해서 통근하는 풍경이
보편화되었고, 요즘엔 주변을 보니 주중에는 서울에 있다가 주말에는 제주에
와있거나 반대로 주중에는 제주에 있다가 주말에는 서울로 통근하는 경우들도
꽤 있더라고요.
김 : 제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부분이에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가 공간의 단위였는데, 이동성이 증가하면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통근이 가능한 거리가 되었잖아요. 수도권 지역에서는 직장은 서울 도심이고, 거주지는 경기도 위성도시인 경우도 많고요. 아까 윤아나님 말씀하셨듯이 아예 지역을 달리해서 출퇴근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동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 새삼 놀라곤 합니다.
윤 : 자, 아까 제주도민들이 하루에 통근에 쓰는 시간이 1시간 남짓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1년에 260시간 정도를 직장과 집을 오가면서 쓴다는 뜻일 텐데 이렇게 보니 적지 않아요. 신입사원들 연차가 보통 10일에서 15일 정도부터 주어지잖아요?
이거 연차를 더 줘야할 거 같은데요?
김 : 그러게요. 저도 동감합니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근무시간으로 매겨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무튼, 제가 첫 시간 때 자동차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졌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요즘엔 블루투스 마이크를 연결해서 노래방으로도 쓴다고. 어쩌면 통근의 고통을 어떻게든 모면해보려는 현대인의 몸부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럼 이쯤에서 다르게 통근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좋을 텐데요.
윤 :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지난번에 자전거 탄다고 하셨으니까 자전거를
타는 방법은 어떠세요? 오토바이도 있고요.
김 : 자동차를 이용하면 시간은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운전하는 동안은 다른 걸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효율이 떨어져요. 서울 가면 지하철에서 종이책이든 이북 리더기든 책을 읽거나 하는 분들이 눈에 많이 띄던데 물론 이것도 착석에 성공했을 때에 이야기지만요. 제가 할 일이 정말 많거나 뭘 좀 읽으면서 다녀야 할 때는 버스도 타보고 택시도 타곤 하는데요. 우선 제가 버스를 그냥 타기만 해도 십중팔구 멀미를 하더라고요. 기사님들께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배차 시간에 맞추려고 애 많이 쓰시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거기에 책까지 읽기가 괴롭고요.
택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어요. 자전거도 고려해보는데 산기슭에 있는 학교로 오가다 보니 이것도 쉽지는 않겠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다 포기하고 자동차를 선택하게 돼요. 대중교통 시설이 통근 수단을 분담하지 못하는 현실, 이용자의 외면, 결국에는 개인이 부담하게 되는 교통비용 등등 현대인의 이런 패턴이 자동차 중심 사회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겠다 싶어요.
윤 : 대중교통 만족도가 전국에서 1위라는 뉴스를 접하는데, 제 주변에서도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많아요.
김 : 2019 제주사회조사 및 사회지표에 따르면, 통근이나 통학을 하는 도민들의 교통수단 조사에서는 '승용차'가 59.3%이고, '대중교통 버스'를 이용한다는 도민은 16.7%에 불과해요. 2017년 대중교통 체제 개편 이후에 버스 타고 이동하기가 쉬워진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통근을 할 때 이용할 만큼 만족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네요. 다행히 제주도에서 7월부터 석 달간 ‘대중교통 도민 모니터링’을 실시해서 만족도를 제고한다고 하니 지켜보도록 하죠.
윤 : 어쨌거나 아직은 다른 통근수단을 고려할 때 대중교통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는 방법이 가장 수월할 것 같네요. 이동하는 방법을 다르게 하는 것 말고도
통근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데요.
김 : 아무래도 근무 형태와 결부되어있으니 출퇴근 시각을 조정하는 방법도 있죠.
어떤 회사는 러시아워를 피해서 10시부터 7시까지 정규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곳도 있고, 금요일에는 오전 근무만 한다던가, 월요일 오전에는 화상회의를 하고 점심 먹고 출근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변주를 주기도 하더라고요. 아까 윤아나님도 말씀하셨지만, 팬데믹 이후에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들이 많아졌잖아요. 이러면서 꼭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요. 앞으로 통근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도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윤 : 꼭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자기가 있는 곳 어디서든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요즘 노동 형태를 가리켜서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죠. 제주로 출근해서 바다가 잘
보이는 커피숍을 찾아다니면서 일을 하고, 필요할 때는 업무상 회의나 미팅하러 다시 서울로 가는 경우도 꽤 되더라고요.
팬데믹으로 공중시설 이용하는 게 주춤하긴 하지만, 그래도 통근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 : 처음에 비대면 온라인 회의하고 나면 평소보다 훨씬 피곤했는데, 익숙해졌는지 요즘엔 이동에 부담은 없어져서 훨씬 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팬데믹의 경험이 통근에 대한 개념을 조정하는 걸 앞당길지도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우리 사회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패턴도 그럴 것 같아요. 러시아워라는 게 모두가 그 시간에 움직이기 위해 길에 쏟아져 나오느라 생기는 거잖아요? 출퇴근 시간의 조정, 이동에 대한 부담 감소 이런 것들을 고민하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 패턴도 머리를 맞대서 조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걸 고민하기 시작해야 우리가 통근은 고통이다, 통근은 지옥이다, 이런 고정관념도 깨뜨릴 수 있고요.
윤 : 오늘 이야기 시작할 때 통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할 수 있는 얘기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통근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일상을 이렇게나 다면적으로 짚어볼 수 있었네요.
김 : 네, 저도 윤아나님 나눠주신 질문 덕분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윤: 그럼 다음 만남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