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4월 20일(화) [초대석]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 <제주4.3 여성운동가의 생애> 양경인 작가를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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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 발표됐습니다. '4.3의 진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전국 공모를 진행을 했는데, 최종 당선작으로 시 부분에는 김형로 시인의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 소설은 이성아 작가의 <그들은 모른다>, 그리고 논픽션은 양경인 작가의 <제주4.3여성운동가의 생애>가 선정됐습니다. 오늘은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양경인 작가를 연결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지금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양경인> 네. 안녕하세요?
윤> 예 먼저 축하의 말씀을 드려야할거 같은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양> 하하... 기쁩니다.
윤> 기쁘시죠. 굉장히 기쁘실거 같습니다. 그런데 4.3과 관련해서 작품을 내고 그다음에 상을 받았다는 자체에 대해서도 다른 작품보다 또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양> 네. 뭐 제가 4.3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일하게 된거는 20대부터 였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작업을 하고 일을 하지만은 그거를 발표를 그대로 할 수는 없었어요. 엄혹한 시절이 계속 됐고, 그리고 이제 여러 가지 4.3에 대한 여러 가지 이견들이 있어서 마음대로 발표를 못했었는데, 지금 어쨌든 제 작품이 선택되어 질수 있었던 이 사회의 분위기와 어쨌던 민주화의 힘, 이런거에 감사합니다.
윤> 그 사회에 분위기도 만들어왔던 분들이 다 계시기 때문에 지금 이런 글도 당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그 논픽션 부분이 신설된게 올해 3년째입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도 수상자가 나왔는데, 작품 제목을 제가 <제주4.3여성운동가의 생애>라고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어떤 내용을 쓰셨는지 청취자들께 간략하게라도 설명을 부탁드릴까요?
양> 네. 해방후에 제주도 여성운동이 굉장히 활기차게 전개가 됐었는데, 그 운동이 이제 4.3이 어쨌든 참혹한 학살속에서 전부 이제 산화되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도 그 활동을 하시다가 25년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 분을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한 5년동안 꾸준히 이제 할머니와 어쨌든 정도 쌓아가면서 이제 얘기를 이렇게 하게되니까 할머니의 그 깊은 얘기를 제가 끌어낼 수 있었던 그런 소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지만은 할머니께서는 이제 자기가 살아서는 발표하면 안된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본인이 죽으면 얘기를 하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서도 바로 발표를 못하다가, 이렇게 좋은 기회에 이제 늦게 발표를 하게 됐습니다.
윤> 예 아까 말씀하신 얘기가 이해가 되는 맥락이 있는데, 20대 때부터 이 채록을 하셨다는 말씀을 아까 하셨잖습니까?
양> 네.
윤> 그 당시가 그러면 1980년대가 되는 건가요? 혹시?
양> 네. 1980년대입니다. 정확히는 1986년도부터 시작했지 싶내요.
윤> 네. 86년도부터 4.3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가 정말 어려웠던 시기였었고, 그렇죠 할머니께서도 그런 현실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 부분은 본인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절대로 얘기하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을 하셨었군요?
양> 네. 그렇습니다.
윤> 이제는 할머님 성함을 밝히셔도 문제가 없는 시대가 된거 같습니다만은.
양> 네. 할머니 성함은 김진언 할머니 이십니다.
윤> 네. 근데 이제 여성운동이라고 아까 말씀하셨습니다만은 해방 전후에 우리나라에 모여서 여성운동과 관련해서 많은 흐름이 있었습니다만은 사실 사회주의 뭐 그 다음에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 흐름과는 혼재된 부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그 여성운동으로 보고서 접근을 하셨던거 같네요?
양> 네. 그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그 여성들의 어떤 권리향상이나 인간해방을 위한 움직임들은 쭉 있었어요. 있었는데 그게 좌익운동 말하자면 사회주의 운동 부분은 빼고 이제 운동사도 정리가 되고 그런 조명되시는 분들도 뭐 최정숙, 고수선 이런 분들이 굉장히 이제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그런분들은 조명이 되지만 더 가열하게 전개되었던 또한 흐름에 대해서는 역사에서도 누락이 되고 또 여성들의 그런 생애사 속에서도 다 빠져있거든요. 물론 그분들이 기록이 없습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증언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이제 그러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제 <제주신보>라는 1947년부터 1948년 초까지 발행된 그 신문에 보면은 그 이름들이 띄엄띄엄 나와요. 그래서 그런 이름들을 근거로 해가지고 제가 제주도에 있는 여성분들이 어떻게 움직이면서 새 세상을 맞을려고 했던가 그런 살펴봄 속에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윤> 신문에서 찾아 내신 겁니까? 그 할머니에 대한 기록을?
양> 아 할머니에 대한 거는요. 할머니는 그 아는 분이 있었어요. 그 아는 분이 있었는데 소문만으로 듣고 그래서 그 마을을 찾아간거죠. 근데 찾아갔을때도 저희들이 4.3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은 바로 묻지는 못하고 그냥 마을조사 한다고 그래서 마을에 내력이나 뭐 이런거 말씀해 주십사 하고 해서 그때는 1980년대에는 그런 식으로 현장을 들어갔어요. 그래서 마을조사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마을이 한번 뒤집어지고 난 그 일을 얘기하려면 저희들이 말을 안해도 그 증언자들이 4.3을 말씀하셔요. 그러면 그 말의 실마리를 잡고 질문이 들어가는거죠. 그런식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윤> 네. 그 당시에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셨던 계기가 혹시 그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은 주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심을 갖게 되신 겁니까?
양> 아 그것은 제 뿌리에 대한 제 뿌리찾기와 관련이 있는데요. 저희 어머님께서 4.3 고아세요. 12살에 고아가 되셨는데...
윤> 아...네
양> 네. 그래서 식구들이 전부 몰살이 되셔서 본인께서 이제 친정 제사를 집에서 하는데 그 제삿날만되면 어머님이 굉장히 예민해지셔요. 그게 출발이었고, 나중에 제가 이제 자료도 보고 이렇게 하면서 아직 너무나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놀랐고, 그리고 무엇보다 1차 자료가 있어야지만 이 4.3을 조명하겠구나 싶어서 기록은 거의 이제 그때 훼손이 되고 거의 빠지고 불타고 이랬기 때문에 증언 인터뷰, 증언 채록이 굉장히 귀한 1차 자료가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선배님들과 같이 이제 시작을 했습니다.
윤> 좀 갑자기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4.3유족들께서... 지금은 이제 어느 정도 말씀은 하십니다만은...
양> 네.
윤> 본인의 자녀들에게도 절대로 말을 안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좀 많이 계시거든요. 작가님께서는 어머님께 4.3과 관련된 얘기를 혹시 어렸을적부터 들으셨던겁니까? 아니면 나중에 알게 되셨나요?
양> 네 어려서부터 이제 제삿날이 오면은 할머니 돌아가신게 어떻게 돌아가셨나 했을 때 4.3때 돌아가셨다 그렇게 말하는데 저는 그때까지만해도 산사람에 의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줄 알았어요. 말하지만 공산당에 의해서 그렇게 얘기가 돼서 제 초등학교 5학년때 일기장에 보면. 우리 할머니는 공산당에 의해서 억울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반공 글짓기를 잘해서 할머니의 이런거를 회복해 드리겠다 이런 글귀가 있더라고요. 그렇게 했는데. 제가 20살이 넘어서 좀 더 자세히 물었을 때 어머님이 어렵게 돌아가시기는 군인한테 돌아가셨다, 군인의 총에 돌아가셨다 라는 말이 제가 4.3을 알아야 되겠다고 하는 시작이었어요. 어떻게 군인이 자기 나라 국민을 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제가 띄엄띄엄 그 얘기를 듣는 외할머니는 굉장히 인자하시고 동네에서 덕망이 높으신 분이셨거든요. 그래서 정말 그 김진언 할머니를 제가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저는 저희 외할머니를 보는듯 했어요. 아마 저희 외할머니도 이러시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친밀하게 이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던거 같아요.
윤> 할머니께 작가님의 가족사도 얘기를 하시면서 같이 이야기를 꺼내셨었군요.
양> 네.
윤> 아마 공감도 많이 하셨을거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그 작가님의 작품을 먼저 보고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만은 청취자들께서는 그 작품을 못보신채 지금 이야기를 듣고 계신거기 때문에 사실 저희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데 있어서 약간 그 내용상의 한계는 있습니다만은 심사평을 제가 한 줄을 소개해 드리자면은 "4.3당시 사회주의운동가로써 격변기 분단조국에 연표를 온몸으로 살아낸 김진언 할머니의 삶을 세상에 드러내 준 작품이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 심사평을 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우리가 참 조명하기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번에 조명을 하신 부분이기 때문에 좀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은 우리 제주의 근대 현대사가 얼마나 지금 아픈 상처로 얼룩져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작가님이 4.3과 관련된 활동을 아무래도 좀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양경인'이라는 이름도 필명이라고 들었는데 맞지요?
양> 네.
윤> 어떤 활동을 하셨었는지요?
양> 네. 제가 본명은 '양성자'인데요. 그 이제 제가 20년전에 제주를 떠났기 때문에 그 떠나면서는 양경인이라는 이름으로 원래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을 썻어요. 근데 이제 문학상을 응모하면서 저를 양성자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혹시 그 문학상 주변에 있으면은 뭔가 그 장애가 있겠다 싶어서 이제 그렇게 이름을 제가 이제 집에서 부르고 말하자면 서울에서 활동할 때 쓰던 이름으로 그렇게 응모를 했습니다.
윤> 그 제가 소개해 드리자면은 사실 4.3연구소 창립 맴버로 알고 있구요.
양> 네.
윤> 네. 그리고 재경 4.3청년유족회에서도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니까 혹시라도 이제 본인을 기억하는 분들이 수상자를 선정할 때 좀 고민이 많으실까봐.
양> 네.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그런, 근데 기우였더라구요. 그 뭐는 없는데 이제 그때 마음은 그랬습니다. 그리고 제가 4.3연구소에서 일을 했었고, 초기에 감사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어떤 것도 떠나서 그냥 그게 직관적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에 그렇게 했던거 같습니다.
윤> 작가님의 삶과 4.3은 정말 때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거 같습니다. 사실 저희가 모셔서 길게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시간관계상 어려운 점에 대해서는 양해의 말씀을 드리구요. 다시 기회가 되면은 나중에 한번 더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청취자분들께 이 작품에 대해서 한번 읽어보시길 좀 권해 드리고 싶고, 마지막으로 혹시 관련된 계획이 있으시다면 짧게 한 말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양> 네 뭐 계획은 이제 4.3특별법 개정이 통과가 됐잖아요? 그런데 이제 남아있는 문제들이 몇가지가 있어요. 그 문제를 저는 이제 서울에 살기 때문에 재경 청년유족들과 함께 풀어나가는거 하나하구요. 그리고 제주가 사실 4.3 때문에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제주는 더 큰 자연의 치유력을 갖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제주의 가치가 제주의 자연을 얼만큼 잘 보존하고 그거를 보물처럼 이렇게 생각할수있는가 라는 흐름에 저는 동참을 하고 싶은게 또 하나의 마음입니다.
윤> 제주를 떠나서도 제주와는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가셔야 될 운명이신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마무리하고요. 저희가 한번 기회를 봐서 다음에 한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양> 네. 감사합니다.
윤> 네. 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분 수상자 양경인 작가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