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2월 17일(수) [오늘의시선] 부캐 유행시대...문학에서 나타난 필명과 부캐의 활용과 의미(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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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입니다.
오늘은 현택훈 시인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현 : 안녕하세요. 현택훈입니다.
지 : 특집 방송이 이어지면서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현 : 네. 한 달 넘게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요즘 제 고민은 정말 잘 팔리는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그럴 능력은 되지 않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꿈을 꾸며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지 : 하하. 그렇군요. 그래도 인생 모르는 일인데, 어느 정도 기대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현 : 그런가요. 제가 지금까지 다섯 권의 책을 냈는데, 한 권만 최근에 3쇄를 찍었고, 다른 책들은 중쇄를 찍지 못했어요. 최근에 창비에서 나온 정현우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나온 지 보름 만에 4쇄를 찍었다고 하던데… 제게는 꿈같은 일이네요.
지 : 말 나온 김에 1쇄, 2쇄 하는데 보통 1쇄는 몇 부 정도 발간을 하나요?
현 : 아, 출판사나 작가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요. 보통 일반적으로 시집은 1쇄가 1,000부, 소설책은 1쇄가 3,000부 정도 찍습니다. 근데, 책이 잘 팔리게 되면 한 쇄 찍을 때 더 많은 수를 찍게 되고요. 한 예로, 몇 해 전부터 시집 부문에서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베스트셀러 시집 부문에 자신의 책이 있어서 그 시집이 얼마나 팔렸는지 출판사에 확인해보니 10,000부라고 했대요. 10,000부만 팔려도 순위권에 들어가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고,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시집은 판매 부수가 아주 많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 : 그렇군요. 앞에 얘기가 길어졌는데, 자, 그럼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오셨나요?
현 : 네. 제가 앞에서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래서 생각해 본 게 새로운 필명으로 책을 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요즘 부캐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문학에서는 다른 필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부캐일 수 있어서요. 주제가 가벼운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하면 작가의 가치관이나 사회적 현상, 마케팅 전략까지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갖고 와 봤습니다.
지 : 아, 부캐하면 개그맨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이 떠오르네요. 마미손이라는 가수도생각나구요. 일단 이렇게 부캐가 뜨는 까닭이 현 시인님이 보기에는 어떠한가요?
현 : 제가 뭐 사회학자는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미디어 사회에서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데요. 본캐로는 소비가 다 되어 새로운 캐릭터를 요구하기에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문학 역시 언어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일이니 작가 이름에서 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해요.
지 : 아마도 그렇겠죠. 마케팅 측면에서도 부캐를 활용하는 것도 같구요. 근데, 이 문학에도 부캐가 있다는 말은 잘 못 들어봤는데요.
현 : 네. 작가들이 어떤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리거나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내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좀 먼 얘기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홍길동전. 허균의 홍길동전은 조선시대의 계급사회를 비판하면서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내용으로 당시에는 굉장히 급진적인 책이 홍길동전입니다.
지 : 그렇겠네요. 근데, 이 책은 허균이 썼다는 걸로 널리 알려졌잖아요.
현 : 네. 근데, 의문인 점이 홍길동전이 조선시대에 등장한 시기에 허균이 죽고 난 이후입니다. 허균은 실제로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을 당하는데요. 홍길동전에는 허균 사후의 인물과 관청 이름 등이 등장하고, 허균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한글소설이 전무했다는 점. 허균 본인도 자신의 작품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허균의 작품이 아닐 거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지 :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홍길동전의 저자를 허균으로 믿게 되었을까요.
현 : 그것은 허균의 삶과 홍길동의 삶이 비슷해서 생긴 결과일 겁니다. 서자 출신으로 조선의 사회적 모순을 비판한 공통점으로 인해 홍길동전은 허균이 썼다고 하면 어울려 보였을 겁니다. 다른 누군가가 썼는데, 자신이 썼다고 하면 위험해지니 허균을 저자로 올려놓았다는 말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특별한 인물을 저자로 올려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이 홍길동전의 내용이 워낙에 문제적인 작품이라서 허균이 유언으로 사후에 세상에 내놓으라고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 : 네. 그런 의견도 있더라고요.
지 : 그럼 또 어떤 책이, 작가 이름을 달리한 경우가 있을까요?
현 :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는 평단에서 자신을 노쇠한 소설가라고 평을 하자 작심하고서 새로운 이름인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자기 앞의 생’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작품입니다.
지 : 네. 비판으로 인해 절치부심해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게 될 수도 있겠네요.
현 : 네. 로맹 가리는 당시 프랑스 문단을 야유하기 위해 이렇게 필명을 사용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인기가 많아 그 노래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하는 노래 ‘모모’가 이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하는 모모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네요.
지 : 아, 그 노래. 기억나요. 하하. 이렇게 필명을 쓴 경우에는 다 이유가 있겠네요.
현 : 네. 영국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는 영화화 될 정도로 유명한 소설 ‘폭풍의 언덕’의 작가인데요.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가 샬롯 브론테이고 역시 유명한 소설 ‘제인 에어’를 썼는데요. 언니는 커러 벨, 자신은 엘리스 벨이라는 필명으로 이 작품들을 발표했는데요. 당시에 여성 이름으로 발표를 하면 여자라는 이유로 업신여길까봐 남자 이름으로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필명을 사용한 경우는 꽤 있는데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받지 않으려고, 일본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도 여성인데 남자 이름으로 활동한 예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을 펼친 인물이고, 일본 화폐에도 실릴 정도로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설가라고 하네요. 또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는 가공의 인물 오노리노 부스토스 도메크를 만들어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처음 책이 나왔을 때는 신인 소설가의 데뷔작이라 여겼다고 하네요.
지 : 그럼, 주로 외국 작가들을 살펴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누가 있을까요?
현 :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문인들이 필명을 쓰는 경우가 흔한 현상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작가군이 넓게 형성되지 않아서 한두 사람이 문예지에 여러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익명이나 독자라고 하면서 글을 싣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지 : 익명으로도요? 그러면 훗날 정말 누구의 글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있겠는데요.
현 : 네. 실제 그런 일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국문학 연구가들이 누구의 글일 거라고 추정은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작품들이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그 당시에 문예지나 신문에 필명을 쓴 경우, 필명이 ‘여덟뫼’라고 되어 있는 이름이 있는데 팔봉 김기진인 걸 나중에 알 수 있었고, 장백산인은 이광수, 김소월도 소월이라 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는 호를 필명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 당시 작가들은 평균 두엇 이상의 필명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설 ‘임꺽정’을 쓴 소설가 홍명희는 ‘가인’ ‘가산’ ‘벽초’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요. ‘삼대’의 소설가 염상섭은 ‘상섭’ ‘제월’ ‘횡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우리에게 어린이날을 만든 이로 알려진 방정환은 검열을 피하거나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러 필명을 쓴 일화가 전해지는데요. 그 필명들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깔깔박사, 잔물, 북극성, 길동무, 몽중인, 은파리 등입니다.
지 :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필명을 썼는데, 그 필명들이 아무래도 어린이들이 독자이기에 웃음 나오게 한 것 같습니다. 깔깔박사, 하하.
현 : 네. 그 시기에 소설 ‘날개’, 시 ‘오감도’ 등으로 유명한 이상 시인은 본명이 김해경인데요. 이상은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이름의 한자를 다르게 써서 또 다른 자아를 보여주려고 했다는데요. 진정한 부캐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하.
지 : 하하하. 그러네요. 그럼 요즘 시대의 작가들의 필명을 살펴볼까요?
현 : 방정환처럼 어린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한 아동문학가가 요즘도 있는데요. 동시작가 김개미입니다. 김개미는 물론 본명은 따로 있는데,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별명이기도 했답니다.^^ 본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필명인 경우도 많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본명은 신응식입니다. 신경림이라는 이름이 왠지 더 시인 같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본명이 김영일인데요. 지하 활동을 하듯 시를 쓴다는 의미로 지하라고 지었다고 하네요. 박노해 시인 역시 본명은 박기평인데, 노동자 해방을 줄여서 노해라고 지었습니다. 이문열 소설가는 본명이 이열인데요. 글을 쓰겠다는 각오로 ‘문’자를 이름에 넣었다고 하고요. 황석영 소설가는 본명이 황수영인데요. 원래 이름이 단명할 사주라서 필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경리 소설가는 본명이 박금이인데 스승이었던 김동리 소설가가 필명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장이지 시인은 성찬경 시인으로부터 ‘이지’라는 이름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2017년에 제5회 4.3평화문학상을 발표하는데, 소설 부문 수상자 이름이 ‘현수영’이었습니다. 근데, 그는 원래 소설가 손원평이었습니다. 최근에 소설 ‘아몬드’를 히트 시킨 손원평은 유명 정치인의 가족이자 이미 영화감독과 소설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는 손원평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왔습니다.
지 : 그러니까 필명을 쓰는 까닭은 주로, 원래 이름이 평범해서 자신의 생각이 이름부터 드러나게 하거나,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짓거나, 이름에 자신의 문학적 가치관을 넣으려고 하거나, 선배 문인 중에 같은 같은 이름이 있어서 바꾸기도 하겠네요. 필요에 의해서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는 거로군요.
현 : 네. 소설가 박생강은 본명이 박진규인데, 데뷔도 박진규로 했는데, 이름이 너무 평범하다 생각해서 필명을 박생강이라 했구요. 소설가 심상대는 일부러 필명을 마르시아스 심으로 바꿔 신문에 칼럼을 보냈는데, 신문사에서 그냥 심상대라 싣기도 하고, 독자들이 이름을 어려워하자 다시 원래 이름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지 : 작가이다 보니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전략적으로 작가 이름을 만드는 것으로 보이네요. 필명을 쓰는 경우가 문학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현 : 네. 정말 중요한 것은 작품일 겁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겁니다. 현재의 삶이 지칠 때 새로운 이름으로 새 삶을 살고자하는 마음도 들 겁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마음으로 쓰고자 할 때, 장르를 바꿔 활동하고자 할 때 필명을 쓰는 것처럼 마음을 다잡게 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지: 그러게요. 이름이 주는 선입견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그럴 텐데요. 그 이름을 상쇄하는 활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들을까요. 감사합니다.
현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