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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05분

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12월 23일 (수) <오늘의 시선> 현택훈 시인이 추천하는 올해의 시집 베스트 3

2020년 12월 23일 수요일 <오늘의 시선>

◇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리뷰는 실제 방송 원고가 아닌 사전 원고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 방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으로 찾아옵니다. 오늘은 현택훈 시인과 함께 하는 시간인데, 지금 전화 연결이 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현 : 안녕하세요. 현택훈입니다.

윤 : 코로나로 인해 이렇게 전화로 만나게 되네요, 잘 지내셨나요?

현 :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학교들이 등교 정지돼 방과후수업도 종료가 됐습니다.

연말은 연말인데,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인데, 분위기 잘 나지 않고 있네요, 그래도 뭐 한 해 마무리는 해야 하니까 밀린 일들 정리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코너를 시작할 때, 코로나 초기에는 이렇게 코로나가 오래갈 줄은 몰랐는데요, 그때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그 소설이 유효하다는 게 슬픈 현실인 거 같습니다.

윤 : 그러게요.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의 시선, 현택훈 시인에게는 오늘이 올해 마지막 시간이네요. 그래서, 이런 주제를 정하신 거군요,

2020년 베스트 시집. 현택훈 시인이 추천하는 올해의 시집 베스트 쓰리.^^

예전에는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음악, 그해의 책 뭐 이런 걸 정하는 게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못 본 것 같긴 해요.

현 : 네. 예전에 연말이 되면 이런 순위 정하기 등을 놀이처럼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잘 안 하다가, 12월인데 주제를 뭘로 할까 고민했는데요, 주제 넘을 수도 있지만 제가 봤을 때, 올해의 시집, 뭐 이런 걸 정해봤습니다.

이렇게 정하는 것은 잡지들이 많이 사라지면서 요즘은 잘 못 본 것 같아요. 몇 년 전에만 해도 블로거들이 이런 것을 정하는 것을 많이 했었는데, SNS 문화도 많이 달려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시절이 뒤숭숭하고, 좀 그렇지만, 2020년에 발간된 시집 중에서 제가 택한 가장 좋았던 시집 3권을 골라봤습니다.

윤 :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인 생각으로 정하신 거잖아요. 그렇게 정하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현 : 네. 제가 뭐 2020년에 나온 시집을 다 살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좋은 시집들이 더 많을 텐데요. 제 눈에 들어온 시집 중에서 베스트 쓰리만 정해봤습니다. 듣는 분들이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요.^^

윤: 그럼 첫 번째 시집부터 소개해 주실까요.

현: 네, 첫 번째 시집은 김소형 시인의 시집 ‘좋은 곳에 갈 거예요’입니다.

아침달에서 나온 책인데요. 최근 아침달 시선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디로 등단했는지를 프로필에 표기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등단 제도의 폐해가 있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문학계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 말씀 드릴 때도 그러한 부분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선입견 없이 시를 보려고 하는 점이 보기 좋아요.

윤 : 시가 고정관념, 선입견 이런 걸 부정하는 경우가 많죠?

현 : 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집 ‘좋은 곳에 갈 거예요’의 김소형 시인은 1984년생이고, 첫 시집은 문지에서 읽기 난감한 제목의 시집을 첫 시집으로 냈는데요. 제목부터 새롭습니다. 제목이 ‘ㅅㅜㅍ’. 모아서 읽으면 숲이긴 한데, 숲이라는 낱말을 해체한 느낌이 나는 시집이 첫 번째 시집이었고, 이 시집 ‘좋은 곳에 갈 거예요’가 두 번째 시집입니다.

첫 번째 시집에서는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연인과의 표현이라면, 이별할 때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루만 더 같이 머물러 있고 싶다고, 그래서 늙고 싶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였는데요.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심보선 시인이라고 있는데요. ‘슬픔이 없는 15초’라는 시가 있습니다. ‘슬픔이 없는 15초’ 그러면 15초 외에는 다 슬픔이라는 거라서, 거꾸로 생각해서 묘한 표현이 나오는 것처럼 김소형 시인의 시가 이런 묘한 표현들이 눈에 뜹니다.

윤 :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습니다”... 이런 말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이 이 말을 호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드네요.

김소형 시인은 어떤 시를 주로 쓰나요?

현 : 김언 시인이 김소형 시인의 시에 대해서 말한 걸 보면 김소형의 시를 좀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소형의 시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 같다. 귓가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소리가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조금 과장하자면 가장 먼 은하의 개미가 내는 소리처럼 희미하고 희박하게 들린다. 소리는 소린데, 너무 작아서 귀로 듣기보다 눈으로 담아야 하는 소리. 눈을 크게 뜨고 상상해야 겨우 감지되는 소리. 가령 “소리 내며 따라오는 눈송이”, “벌레의 울음소리로 엮은 양탄자”, “심해까지 울리던 종소리” 같은 기묘한 소리의 풍경.“

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비유하지 않고, 빙빙 돌아서 비유한다는 것인데요. 그렇게 멀리 돌아서 표현을 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윤 : 시는 귓가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느낌일 것 같은데, 아주 먼 우주에서 희미하게 희박하게 들리는 소리의 시라고 하니 더 궁금해지네요.

현 : 네. 김소형의 시 ‘아무 것도 없는 빈방에’라는 시에서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그와 음악을 듣지 않고 글을 쓰는 내가 한 곳에 있다. 같은 얼굴, 같은 눈매, 같은 입술을 하고 / 이 풍경은 사실 음악이 보는 풍경.”

네. 이런 부분인데요. 그러니까 김소형 시인은 시의 시선은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고 이 시에서 음악으로 바꾸는 것처럼 다른 곳에서 출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엔 보이진 않지만 음악의 눈에는 보이는 것.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윤 : 좀 어렵네요. 잘 와 닿질 않아요.^^

아무 것도 없는 빈방인데 그곳에 무엇이 있다고 보는 거 같기도 하구요. 그러고 보면, 바이러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요즘 위드 코로나라는 말처럼 함께 존재하고 있네요.

현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좋은 곳에 갈 거예요’는 중의적인 뜻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위로할 때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할 때도 있는데요. 좋은 곳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시집이 좋았던 점은 다른 시각을 바라보려는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윤 : 그러면 이번엔 두 번째로 정한 시집은 뭔가요?

현 : 네. 류성훈 시인의 시집 ‘보이저 1호에게’입니다.

며칠 전 동지 저녁에도 우주쇼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우주는 미지의 세계이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합니다. 보이저 1호는 1977년 발사되어 토성을 지나 지금은 태양계를 벗어난 무인 우주선인데요. 인간이 보낸 물체 중에서 가장 멀리 간 우주선이라고 합니다.

그, 현실이 어려울수록 판타지를 더욱 그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류성훈 시인도 남루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주 이야기로 그 아픔을 위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집에서 시 ‘봄밤’을 보면, “누구나 봄밤 하나씩은 갖고 있었지만 / 봄은 아무도 데리고 있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아마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봄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는 시인 것 같습니다.

윤 : 보이저 1호... 그러고 보니, ‘창백한 푸른 점’이 보이저 1호가 보내온 사진인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칼 세이건이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를 촬영하게 한 그 사진이 떠오르네요.

현 : 네. 맞습니다. 1981년생인 류성훈 시인은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데뷔작 제목이 ‘월면 채굴기’입니다. “창밖 저탄 더미, 캐낸 달빛이 / 벌써 내게 문병 오고 있었다”라는 표현을 보면, 달빛이 내게 문병 온다고 표현하는데, 우주를 그냥 바라보는 대상을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이 좋아요. 대상을 객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화하기.

보이저 1호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미 임무를 완료했는데요. 장비 사이에 전력을 서로 공급을 해주면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천체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우주는 낭만적일 수 있지만, 우주를 관측의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궤도를 돌아야 하는 것으로 본 점이, 시의 대상을 삶과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시가 편지로 읽히는 걸 좋아합니다. 어떤 평론가는 그걸 ‘통신의 은유’라고 하던데요. 결국 우리가 소통을 하기 위해 표현을 하는 것이니 누군가는 이 시를 읽어주겠지, 하는 기대로 시를 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보이저 1호는 인류에게서 가장 먼 곳에 갔고, 그 먼 곳까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감각할 수 있는 통신 그것이 편지일 겁니다.

윤 :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 시를 읽으며 마음은 가까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도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시집이 남았네요.

현 : 네 세 번째 시집은 김복희 시인의 시집 ‘희망은 사랑을 한다’입니다.

1986년생인 김복희 시인은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새 인간’에서도 재치 넘치는 시들이 많았는데요. 두 번째 시집인 ‘희망은 사랑을 한다’에서도 언어에 대한 낯선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들이 많습니다.

시 ‘귀신 하기’를 보면 우리가 왜, 어떤 것에 많이 좋아하면 낱말 뒤에 귀신을 붙이잖아요. 수학을 좋아하면 수학귀신, 사과를 좋아하면 사과귀신... 이런 식으로... 이런 것에서 착안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해서 귀신이 되어버린다는, 왜 귀신이라는 낱말이 붙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시도 있고요.

시 ‘지수’를 보면, 옆집에 사는 지수를 보고 싶어해요. 그런데 옆집에 사는 지수를 보는 걸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옆집 사는 사람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이런 표현이 낯선 이미지입니다. 그 시의 일부분을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나의 간절한 소원은 우연히 옆집 지수를 보는 것 / 그게 지수라는 것도 모르고 본 다음에 / 아주아주 나중에 지수였구나 지수 맞았구나 나는 / 지수구나 하는 것”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윤 : 낯설게 하기, 낯선 이미지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거군요. 그래서 시가 처음 읽었을 때 확 와 닿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네요. 워낙에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다보니, 익숙한 삶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거겠죠.

현 : 네. 시에서 낯설게 하기가 큰 역할을 합니다. 원래 볼 수 없는 것인데, 볼 수 있게 표현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생경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시가 독자와 더 멀어져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독자들은 너무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이미지에 만족합니다.

이 시집 제목이 ‘희망은 사랑을 한다’인데, 희망이 사랑이 한다? 의인화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사람처럼 사랑을 하는 존재가 되었으니 새로워진 겁니다.

이 시집 제목은 수록작 중에서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에 있는 시행을 제목으로 삼았는데요. 이 부분입니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 희망은 아주 약한 사람처럼 / 더 많이 사랑을 하고 ...... / 너의 이름은 희망 / 희망이 하는 일을 잘 모르지만 / 나는 희망을 친구라고 소개한다 ......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좋도록...... 새들이 날아와 치우도록 / 하늘을 날아다니는 곡식이 되게”......

요즘 코로나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우리가 희망을 말하는데, 이 희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시는 결국 관념적인 생각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시라고 하면, 이 희망을 모습을 김복희 시인은 생각해보는 겁니다. 희망이 샤워볼일 수도 있고, 빗자루일 수도 있고, 유리창일 수도 있는 겁니다.

윤 : 오늘 시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니, 쓰고싶긴하지만 저는 시 쓰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현 : 아, 아나운서 중에도 시인이 있습니다. 이상협 시인이라고.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내는 직업인데, 시인 역시 화자를 통해 목소리를 내니까 아나운서와 시인,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윤 : 네. 오늘 세 권의 시집을 살펴봤네요.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새해에는 ‘희망은 사랑을 한다’ 시집 제목처럼 희망을 사랑해서, 그 희망과의 사랑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현 : 네. 시는 일상의 언어를 다듬어 시어가 되는데요. 코로나로 인해 일상의 평범함을 그리워하는 요즘입니다. 이러다 코로나에 대한 시만 나오면 안 되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여러 가지 시가 많이 나오는 시기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윤: 네. 그럼 현택훈 시인과는 내년에 다시 만나게 되겠네요.

그때는 전화가 아니라 스튜디오에 직접 뵙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들을까요. 감사합니다.

현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