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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화) [키워드뉴스] 선언과 헛구호 사이(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
지/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키워드 뉴스 시간입니다.
오늘은 제주투데이 조수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안녕하세요.
지/오늘의 키워드 알아보겠습니다.
1. 선언과 헛구호 사이.
조/선언과 헛구호 사이,입니다.
지/최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송악산에서 한 선언?
조/네. 지난 일요일이었죠. 25일 원희룡 지사가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선착장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같은 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송악선언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오늘은 그 선언의 의미와 한계점 등을 짚어보려 합니다. 이 선언은 꽤 갑작스럽게 마련됐습니다. 기자들에게도 정확한 시간과 장소가 알려진 게 바로 전날이었거든요. 또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중대 발표라는 것 외엔 알려진 게 없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발표하려나 궁금해하며 갔었습니다.
지/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엔 다소 못 미쳤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조/지금 제주도 곳곳에 난개발에 반대하며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지역 주민들이라면 특히 더 이날 기자회견 내용에 관심이 쏠려있었는데요. 이제야 비로소 갈등을 끝낼 수 있는 발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죠. 그저껜 아침 일찍부터 기자회견이 열렸던 선착장 인근에 송악산 개발에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과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원희룡 지사의 발언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었습니다만 기자회견이 끝나자 다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선언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자면요. ‘청정제주 송악선언’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남아있는 난개발 우려에 대해 오늘로써 마침표를 찍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요 골자는 외국인의 대규모 투자 사업과 제주의 자연환경을 해치는 개발사업을 막겠다는 선언입니다.
지/이날 선언에 ‘송악’을 붙인 이유는.
조/원 지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인데다 유원지 개발사업이 난개발과 외국인 투자를 둘러싼 오랜 논란을 상징하는 장소라고 설명했습니다. 제주의 환경 보전 요구가 가장 뜨겁게 문제되는 송악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지/난개발과 외국인 투자... 외국인 자본이 제주도에 대거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고 상하수도 시설 같은 생활 인프라가 포화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인식이죠.
조/네. 제주도는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투자자에게 각종 혜택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했었습니다. 특히 지난 2010년엔 투자이민제 도입 등 외국 자본, 특히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투자이민제는 일정 금액 이상을 제주도 부동산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 비자를 내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제주도 내 어디든 5억원이 넘는 땅을 사면 거주가 가능하고 5년 이상 이 땅을 계속 갖고 있으면 영주권이 주어집니다. 다만 현재는 대상 지역이 관광지와 관광단지로 제한됐습니다.
지/투자 유치 노력으로 제주도 내 외국인이 보유한 토지 면적이 크게 증가했죠.
조/국토교통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제주도 전체 면적의 1.2%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이르는 넓이입니다. 그런데 제주의 경우 토지를 보유한 외국인 중 42.5%가 중국 국적입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토지를 보유한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게 미국이거든요. 미국 국적자가 52.2%인 것과 비교했을 때 유독 중국 국적자가 제주도의 토지를 많이 사들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코로나19 상황 이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주도는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는 무사증 제도도 시행했었구요. 중국 국적 여행자들이 찾기 좋은 조건들을 갖고 있었죠.
조/네. 그래서 중국인 관광객이 오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숙박시설, 여행업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주도의 경제엔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원 지사가 송악선언을 발표했던 송악산 일대 역시 중국 기업인 신해원 유한회사가 뉴오션타운이라는 유원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곳인데요. 대정읍 상모리 일대 19만 1950㎡ 부지에 3219억원을 들여 461실 규모의 호텔과 조각공원, 문화센터를 짓는 사업입니다. 지난 4월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부동의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자동폐기 됐습니다.
지/제주도의회 상임위에서 환경영향평가서를 부동의한 첫 사례라서 이슈가 됐습니다.
조/네. 앞으로 승인까지 남은 절차는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해 도의회에서 동의안이 가결되면 도시계획심의를 거쳐 승인과 고시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원 지사가 서두에 “자연 경관을 해치는 개발은 더욱 엄격하게 금지하겠다”며 “송악산을 지켜내겠다”고 강조해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정확히 경관 사유화와 문화재 보호 방안, 환경 훼손 최소화 등을 고려해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건데요. 송악산 일대가 아시다시피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진지동굴과 4·3 당시 학살터 등 역사문화적인 가치와 함께 지형이 화산체로 이뤄져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개발이 아닌 보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곳입니다.
지/이날 원 지사가 중문 주상절리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조/네. 중문 주상절리는 부영그룹 측이 1380실 규모의 부영호텔을 짓겠다는 곳인데요. 호텔이 들어서면 민간기업이 공공자산인 경관을 사유화한다며 지역사회에서 거세게 반발했던 사업입니다. 제주도가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 변경 협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건축 허가 신청에 대해 반려했습니다. 그러자 부영그룹 측이 반려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며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국 이 사업은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졌구요.
지/다른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언급.
조/중국 기업이 제주시 오라2동 일대에 사업비 5조2180억원을 들여 복합테마관광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오라관광단지. 대규모 투자의 경우 자본의 신뢰도와 사업 내용의 충실성을 엄격히 심사하겠다. 오라관광단지는 현재 제시된 사업 내용과 투자로는 제주도의 엄격한 개발사업 심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최종 승인은 힘들 거라는 점을 둘러 말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 조천읍 선흘리 일대 대규모 사파리형 동물원과 숙박시설 등이 들어서는 제주동물테마파크와 관련해선 “제주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것은 개발사업의 기본 전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제기된 생태계 교란과 인수공통감염병 우려를 고려해 매우 신중하게 살펴야 할 문제”라고 말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송악산 뉴오션타운이나 오라관광단지, 중문 주상절리 개발 등과 비교해 다소 여지를 남겼다는 지적입니다. 또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해 수 차례 공사가 중지된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의 경우 “법정보호종 보호와 환경저감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말해 그대로 진행할 방침을 내비쳤습니다.
지/지역사회의 반응은.
조/우선 이날 선언에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제도 같은 게 담기지 않아서 자칫 헛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원 지사는 “오늘은 원칙을 선언하는 것이고 그와 관련한 도민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내겠다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향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하나하나의 사업에 대해 최종 결정을 발표할 수 없는 것은 적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오늘 선언과 상응하게 조치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지/사업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승인 여부를 확정하는 발언이 소송 여지가 있다는 말.
조/네. 이날 원 지사는 유독 유추해 보라는 말을 여러 번 썼는데요. 도민들의 우려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선언했지만 모호한 입장에 시민들은 우려가 여전하다고 말합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질의응답 순서에서 한 주민은 “오늘 선언문을 들어보니 이곳의 아픔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고 원 지사가 본인 치적 얘기만 하고 있다”며 “선거 때마다 이곳을 지역주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전 대통령도 약속을 안 지키는데 어떻게 믿느냐”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또 아침부터 모여있었던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회와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자회견 직후 성명서를 내고 “원 지사의 발언이 송악산 개발의 종지부를 찍고 제주의 미래가 되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유원지 지정을 해제하고 송악산 일대를 공유지화해야 하며 세계자연유산 등재도 당장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지/공개 사과도 요구했죠.
조/네. “지금까지 반대 대책위는 꾸준히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함께 얘기하자고 했지만 단 한 차례도 원희룡 도지사는 응하지 않았다”며 “만일 원희룡 도지사가 진심으로 송악산 개발을 막기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추진된 개발사업들로 상처받고 갈라진 지역 주민들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먼저 해야한다”고 규탄했습니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역시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과 중문 주상절리 부영호텔 사업 중단에 숟가락을 얹으려면 적어도 애초에 경관 사유화 등을 막지 못한 제주도정의 책임을 통감하고 공론화를 거친 도민의 뜻을 거슬러 결정한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에 대해 도민에게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원 지사가 사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죠.
조/네. 청정과 공존이라는 제주도의 미래 비전이 무색하게 섬 곳곳에서 개발사업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이날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도민에게 사과가 먼저 이뤄져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원 지사는 지금 추진되는 개발사업은 모두 전임 도정에서 허가가 났거나 승인이 났던 사업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도지사로 있으면서 시작한 개발사업은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난개발 논란이 일고 있는 사업에 대해 본인은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원 지사는 오히려 본인이 도지사에 재임한 2014년부터 중산간 지역에서의 개발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투자이민제의 대상 지역을 관광지와 관광단지로 제한하는 등 난개발을 차단하는 데 노력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지난 지방선거에서 원희룡 지사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설거지론이 있었는데요. 본인 역시 이전 적폐세력의 잔치 뒤 남은 설거지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었죠.
조/원 지사 입장에서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긴 합니다. 전임 도정에서 이미 추진하고 있던 개발사업을 갑자기 중단하기엔 민형사상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이밖에 지난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진행한 국감에서 고제량 람사르습지지역위원회 위원장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자신에게 제주도와 제주시로부터 사퇴를 종용하는 압력이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이 도마에 올랐었는데요.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의 한 주민 역시 선언문 내용이 지금까지 반복해온 원론적인 말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이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라며 “동물테마파크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지난주 국감장에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이와 관련한 질의를 했었죠.
조/네. 원 지사는 지난주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동물테마파크 사업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재평가 대상이 아닌 변경 협의 대상이라는 유권해석을 받았다며 재실시는 불가하다고 답했는데요. 반대위 측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법에 예측하지 못한 사정이 발생해 주변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도지사의 권한으로 재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원 지사가 이 조항을 모르거나 알았다면 거짓 답변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제2공항과 관련한 내용이 빠진 데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습니다.
조/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제2공항은 국토교통부와 제주도의회, 제주도 간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인 사안”이라며 “3자 간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오늘 환경 보전 선언 선상엔 담지 않았다”고 설명했는데요. 이에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어제 논평을 내고 “원 지사가 발표한 ‘청정제주 송악선언’과 관광객 수용력을 늘이는 제2공항 건설 추진은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 부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최소한 의견 수렴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 대해 어떤 후속 조치를 할 것인지 입장을 표명했어야 했다”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제2공항 사업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도민 의견수렴 절차에 적극 협력하고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지지 선언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지/반면 송악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조/네. 환경단체인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어제 논평을 내고 제주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그동안 난개발로 홍역을 치러온 제주도에 있어서 나름의 청신호임에 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원 지사는 이번 선언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내용과 방안을 도민사회에 설명하고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의 선언이 헛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노력이 하루빨리 나와야 하겠습니다.
지/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