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보기 (2019년3월28일~ 2023년7월10일)
5월 26일(수)[오늘의시선] '걸을 수 있는 도시' vs '걸어서 좋은 도시'(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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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 매주 수요일 이 시간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눈으로 제주의 가치를 더하는 <오늘의 시선>입니다.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 안녕하세요.
윤 : 한달 만입니다. 어떻게 보내셨어요?
김 : 1년 가운데 날씨가 가장 좋다는 5월인데, 그와 다르게 어수선한 한 달 보냈어요. 어서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잦아들기를 바랍니다.
윤 : 5월 유독 확진자가 많이 늘어서 다들 노심초사하며 보냈을 것 같네요. 자, 오늘은 어떤 주제 준비해오셨어요?
김 : 오늘의 시선 합류하고 첫 주제는 팬데믹으로 인한 개인화된 이동과 자동차 중심 사회를 살펴봤고, 두 번째 주제로는 제주에서 자전거 타기에 관한 내용을 말씀드렸죠. 오늘은 ‘걸을 수 있는 도시’와 ‘걸어서 좋은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해요.
윤 : 걸을 수 있는 도시와 걸어서 좋은 도시라, 같은 개념 아닌가요?
김: 언뜻 비슷하게 들리지만, 내포하고 있는 전제가 다르답니다. 특히 제주지역은 이 관점에서 어떤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윤아나님은 보통 얼마나 걸어 다니세요? 하루에 몇 보, 혹은 일주일에 얼마만큼으로 따져본다면요?
윤 : 글쎄요, 일상에서 계단 오르내리고 차 타러 갈 때나 밥 먹으러 갈 때 정도 걸으면 움직임이 많지는 않을 것 같네요?
김: 요즘은 만보기가 없어도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에 통계가 잡히니까 일상 속 움직임을 감지하기 훨씬 쉬워졌는데, 의식하고 걷지 않으면 의외로 하루 활동량이 많지 않죠. 자동차 주로 이용한다면 많이 걸어봐야 6000보 안팎 될까요? 저도 일부러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애쓰는 편인데요. 질병관리청에서 통계를 내기 위해 만든 개념이 있어요. 최근 1주일 동안 걷기를 하루 30분 이상, 주 5일 이상 실천하는 개념을 가리켜 ‘걷기실천’이라고 불러요.
윤 : 의식해서 걸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오늘부터는 좀 의식해서 걸어봐야겠네요. 통계로 보면 제주는 걷기실천율이 얼마나 되나요?
김: 2020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은 37.4%이고요. 제주는 평균치보다 낮은 35.1% 질병관리청 지역사회건강조사 (참고: https://chs.kdca.go.kr/chs/stats/statsMain.do)입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서는 꼴찌는 아니지만 이게 이례적인 일이에요. 지난 10년 동안 거의 항상 꼴찌였거든요. 제가 봤을 때 제주지역의 걷기실천율이 향상됐다기보다는, 제주는 큰 변동은 없는 편인데 팬데믹 이후에 다른 지역의 걷기실천율이 감소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윤 : 제주지역 걷기실천율이 이렇게 낮다니 의외인데요?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걷기에 좋은 지역 아닌가요? 일부러 제주에 걸으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고요. 올레길도 있고, 숲길도 있고요. 각종 도보 여행 코스가 잘 짜여 있잖아요.
김: 네, 제주올레가 생기고 나서 걷기의 섬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지역주민들의 걷기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는 것이 제가 공부하면서 풀어보려는 의문점이기도 한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걸을 수 있는 도시’와 ‘걸어서 좋은 도시’도 이 부분에서 살펴볼 개념이에요.
윤 : 그렇군요.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걷기실천율에서 상정하고 있는 하루 30분 이상이라고 할 때, 거리로는 약 2km 정도인데 우리가 일상에서 이만큼도 걷지 않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김 : 그렇죠.. 질문을 이렇게 던져보겠습니다. 하루에 이만큼도 걷지 않는 것일까요? 걷지 못하는 것일까요? 윤아나님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세요?
윤 : 글쎄요, 둘 다 아닐까요? 걷지 않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고.
김 : 네, 제 가정은 걷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걷지 않으려는 이유로 이어지면서 결국엔 둘 다가 아닐까 해요.
윤 : 걷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오늘 다루는 ‘걸을 수 있는 도시’와 연결이 되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시나요?
김 : 먼저 어디서 어떤 때에 걷느냐예요. 우리가 흔히 읍면으로 구분한, 농어촌 지역은 활동반경이 넓잖아요. 밭에 갔다가 혹은 바다에 나갔다가 집에도 들렀다가 창고에도 갔다가 마을회관도 다니곤 하는데, 걷는 것보단 오토바이를 이용한다든지 짐 때문에 트럭을 몰고 다닌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으시죠. 걷기실천율도 255개 시, 군, 구로 살펴보면 군이나 구 지역에선 10퍼센트에서 60퍼센트까지 편차가 많이 벌어지거든요. 이동을 위해 걷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윤 : 도심지도 걷기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가요?
김 : 네, 2010년대 이후 특히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자동차가 늘어나 버렸죠. 동네를 산책하려고 나왔는데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공사하고 있다면 썩 유쾌한 산책길이 아니게 되어 버리구요. 또 자동차가 늘어난 데 비해서 주차장은 넉넉하지 않으니 골목마다 이면 주차가 흔한 일이고, 심지어 인도마저 점령해버린 경우 자주 보시잖아요? 보행자가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니 걸어 다니는 걸 포기해버리는 거죠.
윤 : 특히 아이 키우는 분들은 더 어려움을 호소하시더라구요.
김 : 그렇죠. 유아차를 몰고 다니거나 혹은 동반해서 걸어가려면 오가는 차에게 몇 번이나 길을 비켜줘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구요. 제주도교육청에서 2017, 2018년에 등하교길은 걸어 다니자는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자동차를 타고 등하교하는 것이 일상에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스쿨존 관련 법규가 생긴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고요. 비단 어린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차가 다니는 속도에 즉각 반응하기 어려운 어르신들 사고는 뉴스에 자주 보도되기도 하잖아요.
윤 : 요즘 들어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골목에 일방통행을 하게 하거나, 별도로 보행로 선을 그어놓는 사례들이 눈에 띄던데요.
김 : 그나마 스쿨존 관련 법규도 생겨났고, 걸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나 이것을 만들려는 움직임들이 늘어나고는 있어요. 미국의 도시 계획가인 제프 스펙은 ‘워커빌리티’(walkability), 그러니까 걸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미국의 도시 계획의 전환을 모색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요. 여태껏 도시에서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교통체증이 심해지면 도로를 넓히고 혼잡비를 부과하거나, 자동차 소음이 심각하면 방음벽을 설치하고, 야간범죄율이 높아지면 가로등을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하는 식이었지만 ‘워커빌리티’를 적용해 도시 안에서 교통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삶의 질과 직결된다고 주장해요. 무려 10단계에 걸쳐서 워커빌리티를 설명하는데, 한국사회에 모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관점에서 우리의 보행 환경, 교통 문제를 돌이켜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윤 : 그럼 제주에 사는 입장에서 어떤 것들이 이 워커빌리티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세요?
김 : 그러려면 우리가 왜 걷게 되는지부터 짚어보면 좋을 텐데요. 걷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어요. 첫 번째, 이동을 위해서. 두 번째는 여가를 위해서. 이동을 위해서 걷게 될 때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을 켜듯이 최단의 경로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추구하게 되죠. 여가를 위해서 걸을 땐 올레길을 걷는다거나, 공원에 산책을 나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꼭 최적의 경로가 아니더라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되죠. 워커빌리티를 개선하는 방법도 두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필요해요.
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김 : 보행자를 위해 시야가 충분히 확보된 시설물 설치, 평평한 보도블럭, 잘 구획되고 분리된 보행자 도로, 일방통행으로 덜 번잡한 골목길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걸어서 좋은 곳이 꼭 잘 걸을 수 있는 곳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대로 잘 걸을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걸어서 좋은 곳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제프 스펙이 제안하는 워커빌리티의 한 단계 중에는 나무 심기가 있어요. 가로수가 많아야 도심의 기온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늘이 있으면 걸어서 이동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잖아요. 물론 심미적 효과도 있죠. 걷기 편해서만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재미도 있어야 하니까요.
윤 : 걷는 즐거움 중요한 지적이에요. 걷는 게 단지 몸을 움직이고 열량을 소모하는 것만이 아니라 걸으면서 겪는 즐거움이 있죠. 벚꽃이 한창일 때는 연삼로나 전농로 일부러 걸으러 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혹은 여름이면 해변가를 산책하러 가기도 하고요.
김 : 아무리 쾌적하게 걸을 수 있더라도 혼자 외떨어져 걸으며 아무런 경험도 할 수 없다면 걷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죠. 특히 자동차를 탔을 때는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죠. 산책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과 마주쳐서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동네 과일가게에 오늘은 무엇을 할인하는지도 알 수 있고, 골목 끝에 새로 생긴 커피숍도 한 번 들어가 볼 수도 있구요. 날씨가 어떤지, 이맘때는 어느 나무에 꽃이 피는지도 걸어 다니면서 눈길을 주게 되죠. 이런 것들이 즐비할 때 우리가 걸어서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구요.
윤 : 골목 이야기가 나와서, 골목상권 살리기 위해서 넓고 큰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자주 나와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히려 걸어 다니는 것이 더 골목상권에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김 :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주제이지만, 오늘 나누는 이야기 안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요즘 손가락만 몇 번 까딱이면 집 앞으로 뭐든지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 굳이 대형마트까지 가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사람에게 소개받고 얼굴을 맞대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더라구요. 리뷰와 별점으로 물건의 품질을 가늠할 수도 있지만, 결국 샀을 때 만족하게 되는 건 길을 걷다가 별생각 없이 눈에 띄어서 샀거나, 가게 주인에게 충분한 설명을 듣고 살 때더라구요.
윤 : 그런 면에서 제주는 걸을 수 있는 도시의 여건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걸어서 조은 도시로서는 점수가 나은 편인 거죠?
김 : 현대인들이 주로 많이 걷는 곳이 어디인가요? 바로 대형쇼핑몰이나 테마파크 같은 곳이죠. 365일 쾌적한 온도와 습도,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고 주차도 쉽게 할 수 있지만 경험을 주는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많은 관광객이 그리고 도민들도 제주를 걷기의 섬이라고 여기는 건 사방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바다, 360여 개의 오름과 곶자왈, 밭담 같은 자연경관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윤 : 자연경관 덕분에 걷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데, 도심에서도 걸어서 좋으려면 뭐부터 개선해나가면 좋을까요?
김 : 이런 인식부터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제주지역에는 고층빌딩이 숲처럼 들어서있다거나, 대단지아파트가 다른 시, 도에 비해 도심지를 점령해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는 걸어 다니는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그러려면 제가 줄기차게 말씀드리는 ‘자동차 중심 문화’가 아닌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그저 ‘운전자’로 퉁쳐지지만, 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은 아이일 수도 있고 청소년일 수도 있고 어르신일 수도 있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반려인일 수도 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결국에는 도심을 걷는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윤 : 네, 차차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눠가도록 하죠. 오늘 나눈 대화만으로도 앞으로는 걸어 다닐 때 다른 풍경들이 보일 것 같네요.
김 : 그런 즐거움이 늘어나서 제주의 걷기실천율에도 반영되기를 바랄게요.
윤: 그럼 다음 만남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주여민회 김태연 이사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