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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제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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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금 18시 05분 방송
장르
보도·시사 프로그램
등급
All
제작
윤상범
구성
김영나
진행
윤상범

4월 2일(금) [특집대담] 제주4.3 73주년 특별법 개정과 향후과제...그리고 전현직 유족회장들의 못다한 이야기(양윤경,송승문 전 유족회장/오임종 유족회장)

2021년 04월 07일 12시 08분 39초 3년 전 | 수정시각 : 2021년 04월 07일 12시 10분 42초 | 조회수 :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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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전문보기 자료에 대한 저작권은 제주MBC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할 경우,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1부>

윤상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내일은 4월 3일, 73주년을 맞는 4.3추념일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43은 예년과는 굉장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다른 기분으로 맞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 제주의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는 의미로 '돔박꽃이 활짝 피었수다'가 추념식 타이틀로 정해졌죠? 자 그래서 저희도 오늘 특별한 세 분을 한 자리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사실 이렇게 세 분을 모시고 인터뷰를 해보는것은 처음이라 감개무량한 기분이기도 한데 4.3유족회 전임회장이신 양윤경 송승문 회장님, 그리고 현 회장이신 오임종 회장님 이렇게 세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분 지금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양윤경,송승문,오임종> 안녕하십니까?

윤> 아니 제가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진행을 했는데 세 분을 모시고... 이렇게 밝은 얼굴로 인터뷰 해 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다들 요즘 굉장히 기분 좋으시죠? 워낙에 좋은 소식이 있기 때문에 한 분씩 소회를 여쭤보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험한 시기를 투쟁 속에서 지내오셨던 분도 계시고 또 현실적으로 이번에 4.3전부 개정안이 통과되는데 같이 하셨던 분도 계시기 때문에 한 분씩 여쭤볼게요. 먼저 양윤경 전 회장님께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양> 아 이번 73주년은 우리 도민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겁니다. 야 정말 다르구나 지금까지 추념식을 진행해보면 분위기가 침통하고 침울하고 뭐 이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43특별법이 21년 만에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또 여야 합의로... 의미가 있죠. 통과되고 나서 처음 하는 추념식이기 때문에 우리 도민들, 또 유족들, 시민사회단체 모든 분들이 협력해서 만들어낸 법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 추념식은 유족 분들에게는 뭔가 희망을 줄 수 있고, 또 안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행사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돼서...이번 참에 모두가 73주년에 마음을 다 모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어집니다.

윤> 사실 양윤경 전 회장님께서 재임하시던 시절에는 추념식에서 대통령도 만나기 어려웠던 그런 엄혹한 시기였었죠?

양> 제가 3월 3일 날 취임을 해서 3월 17일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 참석 요청을 했던 기자회견 생각이 나거든요. 도의회 도민의방에서 했는데, 유족회만 한게 아니고 경우회 회장단 그리고 제주도연합 청년의 회장단이 같이 한 것이거든요.

윤> 제주도에서 마음은 이렇게 모아졌는데...

양> 그런데 결국은 안 오시더라고요. 그런데 총리가 오셨는데 총리가 와서 기념사 말씀 중에 우리 추념식과 무관한, 엉뚱한 얘기를 해서 제가 화가 난 기억도 납니다.

윤> 추념사도 사실 다른때와 좀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마는 감회가 아마 좀 새로워질 것 같습니다. 자 그 다음에 우리 송승문 회장께서는 바로 전임 회장이신데 저희랑 인터뷰하실 때마다 항상 서울과 계시거나... 굉장히 많이 뛰셨습니다. 전부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그 소회도 아마 좀 남다르시겠죠.

송> 2년 동안에 동서남북 사방 팔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여야 국회의원, 당대표, 원내대표, 또 삭발식까지 하면서 노제를 지내고 그 엄동설한에 피켓 시위까지 하면서 얘기했습니다마는 21년 동안의 43특별법 개정안이 이번에 21대 국회에서 통과되고 또한 70여 년 동안에 한 맺힌 삶을 살아오신 우리 고령의 부모 형제님들이 만족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일단 그분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에 특별법 통과되면서 연좌제의 굴레를 벗어나고 빨갱이, 폭도, 각시, 며느리 멍에를 벗고 남은 여생을 우리 후손들이, 자식들이 편하게 모셔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돌아가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윤> 회장님 그러고 보니까 머리카락을 자르신 것 같습니다.

송> 1차로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윤> 왜냐하면 해결되기 전까지 머리카락 자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송> 2019년 9월 20일 조천체육관에서 지사님, 의장님, 교육감님, 국회의원, 도의원, 유족들 한 천여 명이 모인 행사해서 저는 43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 그것도 왜 그러한 말씀을 했냐면 모 당대표께서 머리 삭발식을 하는 걸 보면서 저는 역으로 한번 가보자 그래서 마침 43 특별법이 통과돼서 3월 3일 날 3시에 머리카락을 1차 잘랐습니다.

윤>1차로 잘랐다는 얘기는 2차로 한 번 더 하실 거라는 말이죠?

송> 아직 용역이 있기 때문에 6월 23일 날 끝납니다. 그때는 2차로 단정하게... 아직 그때까지 길러야 될 부분이기 때문에 2차 자르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윤> 아니 옆에서 양 회장님이 계속 웃으시는데 사실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왜냐하면 머리카락 안 자르겠다는 것은 단호한 결의의 표현이였는데 이제는 자를 수 있는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

양> 나는 진짜로 안 자를까 했는데 진짜로 안자르시더라고요 (웃음)

윤> 그리고 우리 현 회장님께도 좀 여쭤보도록 하죠. 회장님 임기에 아주 뜻 깊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아 이거 내 임기에 이게 해결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오> 예 처음에는 기대를 안 했습니다. 사실 송 회장님 머리를 기르면서까지 투쟁해도 안 됐는데 과연 될까 이번에 제가 막 맡고 나서는 바로 이번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전에 들어가지, 대통령 선거 후보들 정해가지 과연 올해 될까. 그래서 작년 12월 말이 하한선이다 그때 아니면 안 될 것이 아닌 가 했는데 다행히 2월 26일 날 이렇게 통과가 돼서 진짜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이때가 진짜 이거 통과되기까지는 우리 양윤경 회장님때 발의를 해서 20대 국회에서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21대 국회에서도 오영훈의원이 또 재 발의를 하셨는데 그리고 천일 만에 우리 영령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진짜 3개월 동안 제가 당선되고 나서 3개월 동안 이거에 매달린 보람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우리 송승문 회장님 머리카락을 제가 잘라드리겠습니다 했었는데. 아니다 이번 용역이 끝나고 이번 개정안이 마련되고 난 다음에 자르겠다고 해서 지금 잘라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 용역 결과가 맘에 안 들면 안자르실거죠? .

송> 그렇죠 (웃음)

윤> 잠시 후에 그 용역 얘기도 좀 해봐야 되긴 할 것 같은데 사실은 저희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했습니다마는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은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죠. 오임종 회장님이랑 저희가 지금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도 사실 제가 기억이 납니다. 작년 12월에 올해 안에는 좀 어떻게 좀 해결해보자 그게 작년이었죠. 그런데 결국 안 되면 내년 넘어가면 힘들다 힘들다 했었는데 그래도 국민들께서도 관심을 굉장히 많이 가져주셨고 또 국회에서도 예전과는 좀 다르게 합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에 이번에는 통과가 될 수 있었던 정말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아 참 송승문 회장님 임기 중에도 재심 재판과 관련해서 굉장히 기쁜 일도 있었고 그때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셨었잖아요?

송> 재심과정은 아시겠습니다마는 생존 수형인이 12월 달에 7명, 2019년도에는 18명해서 그때 당시 도민연대 대표자님께서 엄청나게 고생을 하면서 공소기각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우리 행불인 분들도 재심을 신청해서 지난번에 법정에 저도 참석을 했습니다만 346명에 대해 검사님께서 행방불명 불법적인 군사재판 자료가 충분치 못하니까 무죄 판결을 해주십시오. 이런 말을 듣고 제가 마음속으로 역시 사법부가 살아있구나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판사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하라고 해서 제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어저께 어머님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내일은 아버님 재판 날입니다.’ 했더니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개 놈 만도 못한 놈들.’ 딱 한마디 했습니다. 두 번째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라고 해서 할머님이 생존해 계실 적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4.3 때 눈은 떠 있어도, 봐서는 안 될 잔인한 학살이의 현장, 귀는 뚫려있어도 들어서는 안 될 쌍욕 쌍말 이런말.... 그런 말들을 주변에 알리고자 입은 말할 수 있지만 벙어리 입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말씀을 그 자리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저도 좀 마음이 울적해서 인터뷰하면서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마는 이런 부분들이 우리 유족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니고 4.3에 관심이 있는 선구자 역할을 했던 분들, 또 도민사회 4.3을 긍정적으로 이렇게 평가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 행정, 언론계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이번에 재심이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모든 분들이 사실 관심을 가져주셨죠.

송>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마는 가슴에 와 닿는 게... 무슨 말을 했냐하면 ‘자 우리 영령님들 이제야 감옥에서 나왔다. 73년 만에 감옥에서 나왔다. 이제 진짜 영령님 앞에 인사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말... 그 연좌제 고통을 그렇게 견디면서도 얼마나 고대했던가. 여기 유족님들 보면서 대단하다 느꼈습니다.

윤> 저도 기억이 남는 게 ‘나는 죄 없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기다린 시간이 70년이 넘는 시간이었던 거잖아요. 사실 후세대들은 그 세월을 짐작밖에 할 수 없지만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살아오셨을지 그리고 이제 돌아가신 분들의 누명이라도 벗겨들릴 수 있는 순간이 왔다는 거에 대해서 얼마나 유족들의 마음이 좋으실지 참 저도 눈물이 좀 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실 세 분께... 아 두 분께 계속 여쭤봤던 게 세상이 좀 바뀐 게 느껴지십니까? 라는 질문을 인터뷰 때마다 드렸었는데 이 질문은 제가 양 회장님께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렇게 바뀌기 전이기 때문에 지금 나오는 판결들 혹은 이제 뭐 법이 개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좀 바뀌었다고 느껴지십니까?

양> 확 바뀌었죠. 우리 유족들 입장에서 보게 되면 과연 이게 가능할까 물음표가 붙어 있었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결국엔 이렇게 됐잖아요. 그것은 아까 두 분 회장님 얘기 있었지만 이와 관련돼서 당사자 분들의 고통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동안 참고 살아왔던 그 고통은 뭐 이번에 재판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많이 풀렸겠지만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이번에 다행히도 재심과정에서 우리 이웃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신 재판부, 정말 송승문 회장님이 얘기했지만 정의가 살아있다는걸 보여주는 결과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되고 이제 앞으로 해야 될 일들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들 이렇게 유족회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뭐 시민사회단체 각계 각층의 힘을 모아서어 이제 남은 과제들도 하나씩, 하나씩 잘 슬기롭게 해결해 해나가야 된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래도 몇 분 살아계시지 않지만 이분들이 생존에 계실 때 이런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늦었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되고 영령님들도, 돌아가신 분들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래서 이번 73주년은 이런 저런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윤> 양회장님이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게 참 좋습니다. 아, 이번에 추념식, 내일 추념식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린다면서요. 오임종 회장님?

오> 예 한 시간 터울로 열리는데요 우리 희생자 분들의 한 많은 서대문형무소... 바로 거기서 그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는데 이번에는 광화문 광장 공사 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대문형무소 정문에서 열리게 되는데 열한 시에 열리게 됩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는데 여기에 보면은 지금 예정돼 있는 건 국방부 장관이라든가 처음이죠. 많은 분들이 참석하고 정부관계자들도 참석을 하고, 특히 43의 은인인 추미애 대표는 추도사를 하도록 돼 있어서 의미 있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윤> 추미애 의원이 사실은 초선 때 발의를 하셨던가요? 그 당시에 정치권에서 말을 꺼낸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인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해줬습니다.

오> 이번에 특별법 통과도, 그 수형인 문제...재판 관련 말씀해주셨습니다마는 하필 그 당시에 법무장관으로 그렇게 계셔주셔서, 특별재심이라는 안을 제시해 주셔서 이번 일괄 재심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분은 특별법 통과에 큰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윤> 예 이렇게 쭉 얘기를 하다 보니까요? 세 분께 한분씩 여쭤볼께요. 궁금합니다. 내가 임기를 거치는 동안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게 좀 기억에 남는지...그러니까 지금 이 시기가 되니까 나는 이때가 지금 떠오른다 라고 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양 회장님께서는?

양> 저는... 아마 제 기억으로 2011년, 12년도에 홍성수 회장 당시에 정기총회에서 43특별법 개정돼서 배보상해야 된다는 의견을 제가 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에 걸쳐서 냈는데 그때 진행이 전혀 안 됐지만 사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에는 이게 꽉 차 있었다. 그래서 회장이 되면서 선거 때부터 공약을 내고 이렇게 진행이 되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게 되니까 그 옛날 기억들이 떠오르고... 특히 한번 생각해보세요. 공항 유해 발굴 기억나시지 않습니까? 현장 상황을 봤을 때 그... 그 한 구덩이에 겹겹이 쌓인 시신들을 봤을 때 머리가 하얘졌거든요. 사실 그 기억 제가 잊을 수가 없고 저는 또 이제 70주년을 제가 치르는 과정에서 어떤 걸 느꼈냐면 그동안 추념식은 어떻게 보면 내빈 중심의 행사했다. 내가 이거는 안 되겠다. 반드시 유족 중심의 70주년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저희 의견들을 관계 부서를 통해서 전달을 했는데 결국 저희 의견들을 전폭적으로 수용해줘서 진짜 유족을 위한 제대로 된 행사를 했다. 거기에 이제 문 대통령도 이제 오셔서 아주 유족들에게 가슴에 와 닿는 위로 말씀도 해주지 않았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운좋게 혼자 한 게 아니고 기념사업회를 꾸리고 범국민을 꾸려서 제주가 전국적으로 함께 있다는 게 참 의미가 있지 않나. 그리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전 때까지 69주년 때까지 그 우리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못 불렀잖아요. 그때 불렀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안치한 가수를 서울 가서 만나서 사용 허가를 받고 합창단은 우리가 창단해서 그때 함께 불렀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윤> 그 노래 하나조차 제대로 못 부르게 했었습니다.

양>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바뀌었잖아요. 사회자님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좀 바뀌었어요.

윤> 우리 송 회장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어떤걸까요?

송> 아까 얘기했습니다마는 제가 행불인(가족)이기 때문에 전국 순례를.... 서대문은 뭐 제가

몇 번을 안 가 봤습니다마는 목포라든가 대전이라든가 전주라든가...

윤> 정말 많이 다니셨죠.

송> 여러 곳을 다니면서 특히나 대전 골령군에는 유해발굴 당시 현장을 목격했고 또 그 유해를 그때 당시에 뭐 돈도 없기 때문에 간단한 함을 가지고 이렇게 안치 시키는 이런 과정... 두 번째는 특별법에 있어서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기 위해 우리가 유족들이 올라갔습니다. 전체는 못가고 몇분하고 이렇게 갔는데 일곱 시쯤에 국회 앞에 갔더니 어떤 아저씨 혼자 어깨띠하고 모자하고 플랜카드 내걸고 4.3 특별법을 통과를 시켜주십시오. 이거를 보면서 과연 저분은 어디 분인가? 제주분인가? 아니면 육지분인가? 아 그래서 이제 그분하고 미팅을 했더니 한경면분인데 살기는 인천에서 삽디다. 그분이 이름을 밝혀주지 않고 그분이 한 달 동안, 약 25일 동안입니다. 그분이 혼자 이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깊었던 걸로 저는 기억하고

윤> 회장님 그 얘기하셨던 게 제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날을 맞이하게 된 거구요... 어 이것 좀 막걸리라도 갖다 놓고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웃음) 다 좋아서.... 저희가 1부는 여기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2부에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사실 숙제가 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세 분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도록 하죠.


<2부>

윤> 자 1부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를 한번 나눠봤습니다. 이 얘기만으로도 밤샐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요. 저희가 그 미래도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어서 이번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가 되면서 많은 분들이 환호하시고 기뻐하셨지마는 사실은 굉장히 쟁점이 돼서 오랫동안 시간을 끌어왔던 부분이 배보상 문제였거든요. 이게 아무래도 유족회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오임종 회장님께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 굉장히 어려웠었죠?

오> 예 아까도 1부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배보상 부분이 제일 어려웠었습니다. 기재부 설득이... 기재부는 워낙 안 된다, 배보상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기재부에 이거 꼭 해달라고 처음에 안을 제시했을 때 , 그냥 지원한다 뭐 지원을 무슨 지원을 한다고 간단히 이렇게 밖에 오질 않아서, 안 된다 계속 설득을 해서 결국은 그 위자료란 명목으로 해서 반영해서 법까지 통과됐는데요. 위자료는 법적 용어는 배보상이란 개념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대전위원회라든가 섯알오름 백조일손 재판에서도 기록을 보면 위자료로 이렇게 지급을 하도록 계속 명시되어 있어서 그걸 활용해서 이번에 받았는데 이번에 그 법이 통과되고 지금 용역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이 용역에 우리 과거사 재판 관련 지급 했던 그런 사례들도 있고 모든 걸 종합을 해서 정부의 노력을 다 하도록 우리 유족들의 마음을 담아서 전달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건 용역이 끝나면 법을 개정하도록 돼 있는데 그 법에 의해서 내년에 올해 예산을 확보하고 내년에 지급하게 되겠는데 과거사 관련 재판 결과에 벗어나지 않게 꼭 지급되도록 노력해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또 우리 유족들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을 해서 진짜 억울하게 살아온 우리 유족들에게 골고루 정부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열심히 유족회의 차원에서 역할을 해나가겠습니다.

윤> 예 사실 이 위자료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배상이나 보상이냐를 갖고 주로 얘기를 했었지 위자료까지는 얘기가 안 나왔었는데 아이디어를 짜내고 짜내다 보니까 결국 여기까지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뭐 정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오> 그렇지만 통과되고 나서 3일 날 국무회의가 있었지 않습니까? 이 법이 국무회의 통과될 당시에는 대통령님께서 정확하게 배보상이라고 했습니다. 위자료란 말을 안쓰고 배보상을 지급해야 된다... 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선배님들께 좀 여쭤보도록 하죠. 전임 회장님들께 혹시 배보상 대신 위자료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좀 궁금하긴 하거든요. 양회장님?

양> 아마 우리 오 임종 회장님과 송승문 회장님이 그 문제 가지고 저한테 많이 섭섭해하고 있습니다.

윤> 아 그래요?

양> 개인적으로도 만났고 회의 진행할 때도 제가 그 얘기를... 위자료란 표현은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의견을 냈기 때문에 마음속세 섭섭해 있는 걸 제가 알지만 그래도 유족 회의 과정에서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에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이 다 되었는데 소속된 회원은 결정된 것에 따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결정되어 따르고 있다는 말씀을 좀 드리고 아 저는 왜 그렇게 반대했냐면 43특별법 우리가 저 법안을 만들 때 당시에 그 유명한 분들 모셔서 법률지원단을 구성해서 만들었지 않겠습니까? 만들 때도 아까 사회자님 말씀하셨듯이 배상으로 가야 된다 보상이다 엄청 논란이 있었거든요. 근데 보상으로 하면서 이걸 배상으로 본다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윤> 예 저도 기억합니다.

양> 그리고 43영령들 입장에서 볼 때 위로금으로 했을 때 과연 영령들이 이걸 이해할까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돼서 저는 뭐 그런 입장을 냈었다는 말씀을 좀 드리고 지금도 이제 법이 통과가 된 이후에 사실 우려하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제주도에 유능하신 우리 변호사분께서도 말씀이 계시고 또 역대 회장들도 하실 말씀이 계시고...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앞으로 용역과정에 아까 대통령께서도 국무회의에서 얘기했다는 얘기는 그만큼 문제가 있다라는 것을 인정한 격이 된다. 그러면 용역과정에 그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가지고 우려했던 것들을 해소시킬 수 있어야. 유족들이 앞으로 진행되는 여러 가지 내용에 대해서 협력하고 동참하지 그렇지 않으면 상당한 반발을 살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 오임종 회장이 중심이 되서 우리 역대회장도 힘을 모아가지고 용역 과정에 최대한 그런 문제를 해소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야 되겠다는 판단이 되고 저희도 끝까지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윤> 배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받아들여야 된다. 라는 의견도 있었고 또 하나가 아마 제 기억에 그게 있는 거 같아요. 이번 정부 안에서 해결을 못하면 앞으로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라는 위기의식들이 많으셨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합니다.

양> 실질적으로 그런 얘기를 했었죠.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뭐 어떤 위치에 있는 분들이 이번에 만약에 이렇게 해서 특별법이 통과 안 되면 앞으로 영원히 안 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엄포로 보거든요. 그걸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 세상이 계속 바뀌어가는 세상인데 왜 그게 안 됩니까 근데 그거를 난 동의할 수 없다 이렇게 봤던 거죠

윤> 알겠습니다. 우리 송회장님께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어요?

송> 그때 당시에 제가 유족회장땝니다.

양> 그때 저한테 섭섭했었죠? (웃음)

송> 운영위원회에서 공식회의를 소집 하고 첫째 임원회에 보고를 드리고 이거는 임원회에 보고할 사항이 아니라 운영회를 거쳐야 되겠다. 그래서 운영위 소집을 해서 그때 저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에 아까 우리 전 양 회장님과 사회자 멘트가 있었습니다마는 이번 기회를 만약에 놓칠 경우에는 앞으로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를 수 있다. 그러면 고령의 유족들 생각을 해보면은 아까 오임종 회장님께서도 말씀이 있었지만 위자료에 배보상이란 법이 들어왔습니다. 법적으로는 어떻게 논의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번에 이 타임을 놓쳤을 경우에 차기에는 어느 당이 집권이 될 수도 모르는 입장이구요. 두 번째는 그나마 여당의 대표도, 제주의 국회의원님도 돌아다니면서 기재부를 찾아다니면서까지 노력의, 그 절충의 댓가가 이 정도기 때문에 우리가 대승적으로 받아들이자 이것을 거역을해서 만약에 노코멘트를 하고 못하겠다고 했을 경우에는 집권여당의 대표나 제주도 국회의원들이 소외감을 느껴서 앞으로 소극적으로 대처를 할 수 있을 거 아니냐. 뭐 이런 측면에서 운영위에 대해 보고를 드렸더니 대다수가 동의를 해주셔서 이번에 위자료로 갔습니다마는 단, 제주도사회에서도 위자료라고 하니 뭐 위로하는 금액이냐 이렇게 논의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일단은 이번에 3개월 동안 용역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그 속안에 단서조항이든 배보상이 분명히 들어가면 좋지 않겠냐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윤> 참 얼마나 치열한 논의를 해 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바에 대해서 또 서로 다 동의는 하세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셨지마는 지금 현실적으로 여기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선택을 하는 것이 지금의 결과라는 생각은 하구요. 지금 계속해서 우리 양회장님께서 두 분한테 섭섭하시냐고 물어봤어요. 두 분 혹시 지금도 섭섭하십니까? (웃음)

양> 당연히 저는 같이 이 법을 처음부터 추진했던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도와줄 거고 당의 뭐 이렇게 하겠지 했을 겁니다.

윤> 예 근데 약간 원칙적으로 얘기하시니까.

양> 제가 아주 세게 또 거기에 대해서 이게 뭐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어 그럼 공적인 얘기니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송> 찬성이 있으면 반대가 나오는게 당연하죠

오> 어떻든 지금 배보상 관련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제가 이번 추념식이 끝나면 운영위를 빨리 소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배보상 용역에 따른 우리 유족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을 해서 아까 우려 했던 것들을 다 정부 당국에 전달할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용역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대로 전달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윤> 예 사실 용역을 남한테만 맡겨놓는 것이 아니고 계속 관심을 가져와야지 원하는 방향 쪽으로 갈 수 있는거잖아요?

양> 제가 한 말씀 드릴께요 용역 과정에서 유족회 의견을 담아내야 되는데 배보상으로 가야 되는 것을 위로금으로 갈 때 그 어려움을 생각해서 이거를 해소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거죠. 그러니까 지금 바로 운영위원회 소집하고 뭐 이렇게 준비하는 모양인데 의견들을 최대한 집약시키고 의견을 들어서 빨리 정부의 절충안을 내야 된다. 용역이 3월 10일부턴가 진행하고 있죠?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다 된 다음에 하려면 힘들 수 있다 초반에 의견을 강력하게 내야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 알겠습니다. 치열한 토론은 있었지만 서로의 섭섭한 감정은 없다로 정리를 하겠습니다.(웃음)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를 해 나가야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두 분께서는 유족회 어른이시잖아요. 역할을 해주셔야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또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면 현 회장께 조언도 해주셔야 되고 또 (현회장께서)조언도 요청을 하셔야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대화가 있길 저희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제가 얼마 전에 들었던 얘기가 오회장님께서 정부로부터 위자료를 받게 되면 기금을 조성하시겠다. 라는 말씀을 하셔서 또 많은 분들이 굉장히 기뻐하신 걸로 들었습니다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오> 특별법이 개정이 되고 이제 마지막 작업들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제 새로 출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70여 년 전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님들을 어떻게 제대로 해원 하는게 맞는가. 제대로 해결하는 방법은 진짜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 그분들이 진짜 우리들이 미래의 밑거름이 되게 해야 되겠다. 그 방법으로 유족들이 해야 되겠다. 그래서 무언가를 고민해 왔는데 이번에 정부에서 배보상을 받게 되면 이 기금을 활용해서 평화인권기구를 만들고, 그걸 활용해서 평화상도 만들고 진짜 4.3때 많은 인재들이 다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인재육성 사업도하고 후대를 위한 교육사업도하고 또 더 나아가서 이번에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아서 배보상을 받게 되는데 국민들을 위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사업들도 하면서 국민과 함께 하는, 그리고 세계 과거사 해결에 진짜 모범이 되는 사례로 만들어서 여기에 맞춰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을 했고 이게 지금 많은 유족들이 문의도 오고 유족이 아닌 분들도 정착되면 동참하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윤> 단순히 4.3의 명예회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사회적 역할까지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신 것 같네요.

오>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 아니 후배들이 이렇게 생각을 해서 결정을 하셨다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양> 우리 선배들은 여전히 큰 결단을 내려주신 걸로 평가를 하고...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벌써 참여의사를 밝힌 분도 있다고 하는데 이게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가능한 많은 유족 분들이 함께 할 수 있어야 이게 당초 우리가 생각했던 바를 이룰 수 있는 거거든요.

윤> 자발적으로 해야 되는 거죠.

양> 그래서 유족회에서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서 큰 틀을 이렇게 정해놓고 동참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유족회 간부라든지 집행부 에서 노력을 하게 되면 많은 성과가 있을 걸로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 저도 지난번 과거사 재판을 받았던 분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배보상을 받아서 그때 돈을 받을 때는 좋았는데 써버리니까 이건 뭔가... 나중에는 세월이 흐르니까 ‘아 이건 아니다. 잘못됐다.’ 이런 말씀을 한 유족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그 과거사 관련도 그렇고 그래서 아 이건 아니다. 자 뭔가 영령님들을 위해서 제대로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윤> 세계사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는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해주셨는데 저는 그 말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까 말씀하셨지만 사실 자발적으로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이건 뭐 일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자발적으로 앞으로도 논의 과정에서 좋은 얘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되구요. 세 분 모신 김에 이 부분을 좀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숙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셨잖아요. 4.3이 특별법 전부 개정안 통과된 걸로 다 끝나는 것은 아니고 아직 정명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백비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앞으로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그것이 세 분의 앞으로의 활동에도 다 연관돼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세 분께 한 번 여쭤보고 싶네요. 이번에는 송 회장님부터 좀 여쭤보도록 할까요?

송> 좀 4.3의 완전한 해결을 뒷받침은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가 되고 6개월 동안 용역이 끝나서 6월 23일 날 시행령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 바탕으로 인해서 4.3이 정말로 완전한 해결의 뒷받침이 이어질 걸로 보고 또 아까 멘트도 있었습니다마는 4.3의 정명... 아직 뭐 이름이 없습니다. 공원 내에 백비도 있습니다만 항쟁, 반란, 사건 등등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번에도 여러 차례 모이는 게 개인적이든 공식적이든 80주년 추념식 때는 정명을 갖고 한번 추념식을 해보자 첫째 목표고 두 번째는 제가 오라리 마을 사건, 연미 마을입니다마는 그때 당시에 우리나라 정부 수립 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미국이 개입이 됐기 때문에 우리 양 회장 당시에 탄원서도 올리고 설명도 하고 이렇게 해서 이제 했습니다마는 앞으로 미국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는 부분. 이거는 아직 연구소에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추념식이 끝나고 앞으로 정명에 대한 논의, 미국의 사과받는, 책임 추궁하는 이런 부분도 우리 유족회와 43 관련 단체들이 서로가 지혜를 모아서 이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윤> 예 80주년이면 칠 년 남왔습니다.

양> 송 회장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아 저도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고 사실은 2017년도에 우리 유족회 내부적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정명 문제 가지고 토론의 결과가 뭐냐 하면 아직은 조금 빠르다. 그 나왔던 얘기들은 뭐 항쟁 ,통일운동 뭐 이렇게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빨리 가다보면 에러가 생길 수 있다. 약간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논의하자 라는 게 유족의 최종 결과입니다. 80주년이면... 이게 69주년 때 얘기했던 거니까 11년 만이면 가능하지 않겠냐. 그 시기에 맞춰서 한 번 그거 꼭 했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 아까 미국의 책임도 정말 같은 생각이거든요. 제가 2016년도 17년도에 워싱턴 뉴욕 에 다니면서 국제 컨퍼런스에 방문해서 의견서 전달하고 또 지금까지 살아계신 분을 모시고 가서 증언회 열고 더 중요한 것은 미국 백악관 앞에서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 묻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게 결국은 최종적으로 지난해 유엔에 가서 큰 역할을 하셨던 것까지 연결이 되는데 이런 일들을 우리가 이제 앞으로 더 특별법 개정 이후에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 알겠습니다. 두 분 말씀 들으니까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렇다고 안 보이는 건 아닙니다. 이걸 현 회장님한테 숙제주시는 것 아닙니까? (웃음)

오> 그 특별법에도 이번에 추가진상조사 부분에 들어가 있습니다. 위원회가 구성이 되게 돼 있는데 위원회 구성되고 조사는 평화재단에서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이번에도 정부 당국이 건의를 했습니다. 국무총리에게 가서 건의를 했는데 빨리 예산을 확보해서 금년부터라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특별법 바로 되면 빨리 할 수 있도록 위원회를 빨리 개최해 달라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진상조사가 이제 방향은 미진한 부분에 추가 진상조사 되겠지마는 정명에 대한 진상조사도 이루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걸 토대로 해서 정명 작업도 확실히... 왜 그러냐면 정명을 채우는 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과거사 해결의 방향을 보면, 유엔인권 이사회에서 권장하는 걸 보면 정의를, 실태를 조사하고, 배보상을 하고, 거기에 대한 정명을 하고 나서 이제 재발방지를 해야 된다. 재발방지를 하기 위해서는 바로 역사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 재발 방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역사를 바로 세워서 역사책에도 제대로 기록하고 후대교육을 하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특별법에 들어있는 진상조사를 그런 쪽에 더 집중을 하고 아까 우리 송회장님 말씀하신 80주년 때는 정명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보통 역사 정리를 하는 거 보면 백년이 걸린다 그러죠? 참여했던 세대가 없어진 다음에 역사정리가 된다. 그래서 백년 얘기하는데 80주년이죠. 그러면 우리 4.3은 세계사에 남는... 빨리 정리되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칠 년 후면 정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제가 임기 맡고 있는 동안 올해, 내년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윤> 아 지금 선거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약을 내세우신 것 같은 느낌입니다.(웃음) 백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80년이면 세계사에 남을 만한 빠른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라고 하지만 우리 인류의 역사를 길게 봤을 때 얘기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사실 굉장히 긴 시간 이잖아요. 하루라도 빨리 정명이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큰 기쁨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고 개인적으로 세 분께 좀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세 분이 생각하시는 정명은 어떤 건지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지금 개인적인 의견을 여쭤본다고 말씀드립니다.

양> 개인적 의견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운동이었다 통일운동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 송회장님께서는?

송> 저는 항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 이건 좀 다르네요?

오> 43을 그 시기별로 보면 우리가 처음에는 대한민국의 독립이 되고 나서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되고 나서 삼일절 행사까지 진짜 통일운동으로 순수 이거 딱 이 분단된 나라가 아닌 통일된 나라를 요구하고 계속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탄압이 시작되면서 4.3이 일어나는데 4.3은 항쟁으로... ‘탄압이면 항쟁이다’란 모토로 나타납니다. 해서 이 시기마다 틀립니다. 그 다음에 또 길어지면 그 다음은 좌익우익 대립으로까지 가는, 이런 현상이 있는데 저는 그 4.3을 3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봤을 때는 진짜 통일운동과 제주도 분들의 항쟁이라고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제가 일부러 개인적인 의견을 여쭤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의미를 훼손하시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백비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 또 유족 분들 그리고 제주도 내에서도 이 의미를 어떻게 담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앞으로도 토론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마련해 나가야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결정해서 마지막에 그 정명을 세울 수 있다면 가장 큰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유족회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세 분이시기 때문에 제가 말씀을 드려봤어요.

양> 근데 하나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하나 빠진 것 같아요.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이번 특별법 12조에 보면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거든요. 가족관계등록부작성과 관련된 건데 이게 시급합니다. 이게 절차적으로 과정을 거쳐서 빨리....내 부모가 돌아가서 희생자고 내가 유족인데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이 많아요. 가까운 친족의 자녀로 있는 분들을 빨리 구제해줘야 되거든요. 정부 당국이라든지 관계 부서에서는 이게 빨리 결정될 수 있도록 서둘러서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를 첨언합니다.

윤> 알겠습니다. 자 오늘 세 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오임종 회장께서는 아까 말씀하시면서 이제 앞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앞으로 가야 될 길이 없어지면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두 분께, 선배 두 분께서요 딱 10초 20초씩만 후배한테 조언 하나씩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마무리하죠.

양> 네 하여튼 우리 오임종 회장님께서 열정을 가지고 유족회를 이끌어주시고 4.3특별법 개정이라는 큰 숙제도 이제 결론을 내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걸맞게 유족회가 도민이 바라는 유족회로 거듭해낼 수 있어야 되고 우리 유족 분들은 도민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는 이런 위치로 돌아가야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 알겠습니다. 송회장님께서도 한 말씀 짧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송> 우리 오임종 회장님께서 또 언론을 통해서 보기도 했습니다마는 배보상위자료가 지급이 된다 라고 하면 전 금액을 헌금하겠다는 내용을 듣고 저도 좀 감동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회장님께서 그런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정말 점차적으로 이렇게 정리를 해주시고 앞으로 그런 부분들이 지역사회에 큰 역할이 될 걸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배 보상을 받고 허무맹랑하게 헛되게 쓸 필요가 없잖은가. 보람이 있는 이런 일에 앞장서서 꼭 목표를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윤> 자 오늘 기쁜 마음으로 세 분과 이야기를 나눠서 저희도 정말 좋았습니다. 나중에 용역까지 끝나고 방향성이 다 잡히면 다시 한 번 모시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4.3유족회 전임회장이신 양윤경 송승문 회장님 그리고 현 회장이신 오인종 회장님 이렇게 세 분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세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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